중학생 딸 아이 키운 경험 바탕
‘칼리의 프랑스학교 이야기’ 펴내
프랑스 교육은 아이들 흥미 중시
“집에서까지 공부하면 안 된다”
한국의 끊임없는 경쟁식 교육
친구들 사이의 우정만 깨트려
학생들에게 지식 숙성할 시간 줘야
출판사 ‘생각정원’ 제공“참고서를 당장 불태워 버리세요.”
프랑스에 거주하는 목수정 작가(사진)가 지난 6월 펴낸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딸 칼리(중학교 2학년)의 초등학생 시절, 그는 한국의 ‘동아 수련장’ 같은 책을 기대하고 서점에 들렀다가 수학 참고서를 샀다. 두께가 얇고 내용도 왠지 엉성해 보여 제대로 골랐는지 궁금해 조언을 구했더니 담임교사 프랑수아즈가 눈을 크게 뜨고 한 말이란다.
아이 참고서를 심사숙고해 선택하는 건 한국에서는 학부모의 당연한 의무(?)다. ‘어떤 참고서 아이에게 사줬더니 효과 컸다’라는 입소문이라도 나면 엄마의 어깨는 으쓱해진다. 한데 왜 프랑스 선생님은 야단을 쳤을까?
“그런 걸 먼저 하면 신선한 느낌으로 학교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발가벗겨 놓은 것처럼 호기심이 충만한 상태에서 수업을 해야지, 미리 알고 오면 집중 못하고 방해만 된다. 흥미가 떨어진다는 게 담임 선생님의 말이었다.”
지난 7월23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목 작가의 설명이었다. 그는 딸의 여름방학을 맞아 현재 한국에 왔다.
“프랑스에서 제일 중시하는 건 학생들의 흥미다. 또 하나는 학교에서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거다. 집에서까지 공부를 하면 학습이 지겹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사교육이 거론된다. 한국 사교육 업체의 순발력?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진보 교육감들이 논술형 시험인 인터내셔널바칼로레아(IB)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자 일부 사교육 업체는 IB 대비반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IB마저도 사교육으로 해결하려는 게 한국이다.
프랑스에는 사설 학원이 없다. 목 작가는 “프랑스 교육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교사가 정한다. 따라서 사교육 업체가 개별 교사의 수업 내용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생각정원’ 제공
■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교사가 정해
예를 들어 프랑스어 교사(국어 교사)는 학생들을 데리고 1년에 10번 정도 공연장을 찾는다. 연극을 위주로 오페라 등을 보는데 시라노, 몰리에르,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감상한다. 물론 아이들은 미리 희곡을 읽고 간다. 이는 교사가 자율적으로 준비하므로 사교육 업체가 ‘족집게 노릇’을 할 수 없다.
단, 프랑스에도 가정교사는 있다. 프랑스 중학생의 10% 정도가 가정교사한테 배운 경험이 있다. 한데 수업 시간은 1주일에 1시간~1시간30분 정도, 1년 평균 40시간 정도다. 목 작가는 “예를 들어 클라리넷 레슨을 한다면 1주일에 30분이 전부다. 클라리넷 개인교습은 시립음악원에서 받는데 1년에 150유로(20만원) 정도 수업료를 낸다”며 “수업료는 학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서 달라진다. 가구 소득 등급은 7단계로 숫자가 낮을수록 고소득층이다. 저소득층일수록 수업료를 적게 낸다. 우리집은 딱 중간인 4등급이다.”
프랑스 교육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바칼로레아다. 1808년 나폴레옹 시대에 시작했으니 200년이 넘었다. 철저한 논술형 시험으로 특히 철학 시험이 유명하다. 철학 시험에 등장하는 질문은 ‘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 행동일 수 있는가?’,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등이다.
“프랑스 학교는 수학 시험도 서술형이다. 딸의 수학 숙제를 봤는데 숫자가 한 개도 없는 경우가 있다. 말로 풀어 쓴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동위각 관련 문제는 숫자를 구하는 게 아니라 왜 두 각도가 같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거다.”
현재 한국의 진보교육감들이 주입식·암기식 교육에서 탈피하고자 논술형 시험 도입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공정성?객관성 관련 학부모들의 반발을 의식해 머뭇거리고 있다. 바칼로레아는 논술형 시험으로 사람이 채점한다.
목 작가에 따르면 프랑스 학부모들은 논술형 시험 점수에 대해서 이의 제기가 거의 없다. 역사가 200년이 돼 일단 교사든 학부모든 익숙하다. 바칼로레아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데 합격률이 88%다. 학생들은 6개 대학까지 지원할 수 있다.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대학의 서열화가 심하지 않다.
이런 상황 외에도 프랑스는 논술형 시험의 공정성?객관성을 위해 상당한 준비를 한다. 그는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국립영화학교 페미스 입학시험 사례를 들었다. 이 학교는 전 세계에서 매년 2000명의 지원자가 몰리는데 목 작가는 지인 덕분에 채점 과정을 지켜봤다고 했다.
페미스 입학시험은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래된 영화의 처음, 중간, 마지막 대목을 5분씩 수험생에게 보여주고 분석하는 식이다. 채점관은 영화평론가, 영화 전문 기자, 영화감독, 영화과 교수 등 40명으로 1주일 동안 채점관 1명당 50명의 답안지를 평가한다. 그리고 다음 일주일 동안 또 다른 50개의 답안지를 같은 방식으로 채점한다. 한 수험생의 답안지를 2명이 평가한 뒤, 점수를 합산해 평균을 낸다.
■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이때 한 수험생에 대한 채점관 2명의 점수가 3점 이상 차이가 나면 학교장이 채점관을 불러 의견을 듣는다. 그리고 한 사람이 점수를 조정하든가, 학교장이 중재하는 절차를 밟는다. 한데 이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목 작가는 “채점관들의 점수가 2점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가 드물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채점관 초빙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프랑스 교육도 진통을 겪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2007~2012) 때 교사 8만명을 감축했고, 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바칼로레아에 합격하면 원하는 학생들은 거의 100% 대학에 갔었으나 올해는 22%의 학생들이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인터뷰 말미에 목 작가에게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나는 한국에서 객관식 시험만 봤다. 나중에야 그 폐해를 알았다. 한데 이것보다 더 괴로웠던 건 경쟁을 자꾸 시키는 거다. 경쟁이 너무나 심하니까 친구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질투하고 음해한다. 프랑스에서는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경쟁을 안 하니까 친구들이 잘 할 때 박수 쳐 줄 수 있다. 프랑스에 경쟁이 있다면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한국 교육의 또 다른 문제점은 무엇인가 물었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너무 안 준다. 밀가루 반죽을 한 뒤 효모를 섞어서 치대고 그대로 놔둬야 부풀어 올라 맛있게 된다. 자기가 배운 것을 스스로 발효시키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 그 시간을 안 준다.”
‘프랑스 교육이 한국을 본받아야 하는 점’으로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은 학생들이 직접 교실을 청소한다. (프랑스에서 교실 청소는 청소부가 한다) 내가 어지럽힌 공간은 내가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누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는 걸 배우는 거다. 나는 청소 노동도 중요한 교육이라 생각한다.”
한겨레
‘칼리의 프랑스학교 이야기’ 펴내
프랑스 교육은 아이들 흥미 중시
“집에서까지 공부하면 안 된다”
한국의 끊임없는 경쟁식 교육
친구들 사이의 우정만 깨트려
학생들에게 지식 숙성할 시간 줘야
출판사 ‘생각정원’ 제공“참고서를 당장 불태워 버리세요.”
프랑스에 거주하는 목수정 작가(사진)가 지난 6월 펴낸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딸 칼리(중학교 2학년)의 초등학생 시절, 그는 한국의 ‘동아 수련장’ 같은 책을 기대하고 서점에 들렀다가 수학 참고서를 샀다. 두께가 얇고 내용도 왠지 엉성해 보여 제대로 골랐는지 궁금해 조언을 구했더니 담임교사 프랑수아즈가 눈을 크게 뜨고 한 말이란다.
아이 참고서를 심사숙고해 선택하는 건 한국에서는 학부모의 당연한 의무(?)다. ‘어떤 참고서 아이에게 사줬더니 효과 컸다’라는 입소문이라도 나면 엄마의 어깨는 으쓱해진다. 한데 왜 프랑스 선생님은 야단을 쳤을까?
“그런 걸 먼저 하면 신선한 느낌으로 학교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발가벗겨 놓은 것처럼 호기심이 충만한 상태에서 수업을 해야지, 미리 알고 오면 집중 못하고 방해만 된다. 흥미가 떨어진다는 게 담임 선생님의 말이었다.”
지난 7월23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목 작가의 설명이었다. 그는 딸의 여름방학을 맞아 현재 한국에 왔다.
“프랑스에서 제일 중시하는 건 학생들의 흥미다. 또 하나는 학교에서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거다. 집에서까지 공부를 하면 학습이 지겹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사교육이 거론된다. 한국 사교육 업체의 순발력?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진보 교육감들이 논술형 시험인 인터내셔널바칼로레아(IB)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자 일부 사교육 업체는 IB 대비반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IB마저도 사교육으로 해결하려는 게 한국이다.
프랑스에는 사설 학원이 없다. 목 작가는 “프랑스 교육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교사가 정한다. 따라서 사교육 업체가 개별 교사의 수업 내용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생각정원’ 제공
■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교사가 정해
예를 들어 프랑스어 교사(국어 교사)는 학생들을 데리고 1년에 10번 정도 공연장을 찾는다. 연극을 위주로 오페라 등을 보는데 시라노, 몰리에르,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감상한다. 물론 아이들은 미리 희곡을 읽고 간다. 이는 교사가 자율적으로 준비하므로 사교육 업체가 ‘족집게 노릇’을 할 수 없다.
단, 프랑스에도 가정교사는 있다. 프랑스 중학생의 10% 정도가 가정교사한테 배운 경험이 있다. 한데 수업 시간은 1주일에 1시간~1시간30분 정도, 1년 평균 40시간 정도다. 목 작가는 “예를 들어 클라리넷 레슨을 한다면 1주일에 30분이 전부다. 클라리넷 개인교습은 시립음악원에서 받는데 1년에 150유로(20만원) 정도 수업료를 낸다”며 “수업료는 학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서 달라진다. 가구 소득 등급은 7단계로 숫자가 낮을수록 고소득층이다. 저소득층일수록 수업료를 적게 낸다. 우리집은 딱 중간인 4등급이다.”
프랑스 교육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바칼로레아다. 1808년 나폴레옹 시대에 시작했으니 200년이 넘었다. 철저한 논술형 시험으로 특히 철학 시험이 유명하다. 철학 시험에 등장하는 질문은 ‘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 행동일 수 있는가?’,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등이다.
“프랑스 학교는 수학 시험도 서술형이다. 딸의 수학 숙제를 봤는데 숫자가 한 개도 없는 경우가 있다. 말로 풀어 쓴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동위각 관련 문제는 숫자를 구하는 게 아니라 왜 두 각도가 같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거다.”
현재 한국의 진보교육감들이 주입식·암기식 교육에서 탈피하고자 논술형 시험 도입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공정성?객관성 관련 학부모들의 반발을 의식해 머뭇거리고 있다. 바칼로레아는 논술형 시험으로 사람이 채점한다.
목 작가에 따르면 프랑스 학부모들은 논술형 시험 점수에 대해서 이의 제기가 거의 없다. 역사가 200년이 돼 일단 교사든 학부모든 익숙하다. 바칼로레아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데 합격률이 88%다. 학생들은 6개 대학까지 지원할 수 있다.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대학의 서열화가 심하지 않다.
이런 상황 외에도 프랑스는 논술형 시험의 공정성?객관성을 위해 상당한 준비를 한다. 그는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국립영화학교 페미스 입학시험 사례를 들었다. 이 학교는 전 세계에서 매년 2000명의 지원자가 몰리는데 목 작가는 지인 덕분에 채점 과정을 지켜봤다고 했다.
페미스 입학시험은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래된 영화의 처음, 중간, 마지막 대목을 5분씩 수험생에게 보여주고 분석하는 식이다. 채점관은 영화평론가, 영화 전문 기자, 영화감독, 영화과 교수 등 40명으로 1주일 동안 채점관 1명당 50명의 답안지를 평가한다. 그리고 다음 일주일 동안 또 다른 50개의 답안지를 같은 방식으로 채점한다. 한 수험생의 답안지를 2명이 평가한 뒤, 점수를 합산해 평균을 낸다.
■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이때 한 수험생에 대한 채점관 2명의 점수가 3점 이상 차이가 나면 학교장이 채점관을 불러 의견을 듣는다. 그리고 한 사람이 점수를 조정하든가, 학교장이 중재하는 절차를 밟는다. 한데 이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목 작가는 “채점관들의 점수가 2점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가 드물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채점관 초빙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프랑스 교육도 진통을 겪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2007~2012) 때 교사 8만명을 감축했고, 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바칼로레아에 합격하면 원하는 학생들은 거의 100% 대학에 갔었으나 올해는 22%의 학생들이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인터뷰 말미에 목 작가에게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나는 한국에서 객관식 시험만 봤다. 나중에야 그 폐해를 알았다. 한데 이것보다 더 괴로웠던 건 경쟁을 자꾸 시키는 거다. 경쟁이 너무나 심하니까 친구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질투하고 음해한다. 프랑스에서는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경쟁을 안 하니까 친구들이 잘 할 때 박수 쳐 줄 수 있다. 프랑스에 경쟁이 있다면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한국 교육의 또 다른 문제점은 무엇인가 물었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너무 안 준다. 밀가루 반죽을 한 뒤 효모를 섞어서 치대고 그대로 놔둬야 부풀어 올라 맛있게 된다. 자기가 배운 것을 스스로 발효시키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 그 시간을 안 준다.”
‘프랑스 교육이 한국을 본받아야 하는 점’으로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은 학생들이 직접 교실을 청소한다. (프랑스에서 교실 청소는 청소부가 한다) 내가 어지럽힌 공간은 내가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누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는 걸 배우는 거다. 나는 청소 노동도 중요한 교육이라 생각한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