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4일 토요일

문 손잡이 작을수록 돌리기 쉽다?...2022 이그노벨상 발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문 손잡이를 돌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기묘한 생각을 실험으로 옮긴 일본 과학자가 올해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을 수상했다. 이그노벨상은 괴짜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상으로 진지하고 엄숙한 노벨상과 달리 기발하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연구들에 수여한다.


미국 하버드대가 격월로 발간하는 과학잡지 ‘있을 것 같지 않은 연구 회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는 15일(현지시간) 손잡이를 돌리는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한 일본 치바공대 연구팀에 이그노벨상 공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손잡이를 돌리는 데 손잡이의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은 손가락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했다. 손잡이의 크기가 작을수록 손잡이를 돌리는 효율이 높아진다는 결론이다. 연구팀은 “회전으로 제어하는 장치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손잡이 부분의 디자인이 중요하다”며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노인에게 필요한 연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대가 격월로 발간하는 잡지 ‘있을 것 같지 않은 연구 회보’가 노벨상을 패러디해 1991년 만들었다. 올해로 32회째를 맞았다. 진지하고 엄숙한 노벨상과 달리 패러디 정신을 살려 ‘웃어라, 그리고 생각하라(Laugh and then think)’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매년 미국 하버드대샌더스극장에서 시상식을 열었으나 2020년부터 3회 연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 여파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그노벨상은 생물학상과 생태상, 화학상, 경제학상, 의학상 등 10개 부문에 수여한다. 올해 물리학상에는 오리 새끼가 줄을 지어 헤엄치는 이유를 연구한 미국 웨스트체스터대 연구팀에게 돌아갔다. 연구팀은 각 7마리씩 총 열두 집단의 오리가 매일 20~30분씩 헤엄치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 결과 줄을 지어 헤엄치면 1마리 당 헤엄에 드는 에너지량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어미 오리가 헤엄치며 만들어 낸 물 위의 파도를 새끼 오리가 타올라 이동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는 식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연구팀은 문학상을 받았다. 연구팀은 법률 문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를 분석했다. 2018~2020년 사이 법적 계약서나 법원 문서 데이터베이스를 표준 영어 문서 데이터베이스와 분석했다. 그 결과 법률 문서는 일상적인 말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오래된 단어의 빈도와 수동태 사용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법률문서를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단순히 전문적 법률지식 부족의 문제보다는 문장 구성의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이 밖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연구팀은 사람 간 처음 만나 서로 끌릴 때 심장 박동수가 일치한다는 증거를 찾았다는 연구로 응용심장학상을, 브라질 상파울루대 연구팀은 전갈의 짝짓기에 변비가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생물학상을 받았다. 
 

동아사이언스

“진짜 ‘수포자’는 학생이 아닌, 제대로 된 수학교육을 포기한 나라”

 금종해 국제수학연맹 집행위원

금종해 교수는 “우리처럼 국가가 교육과정을 다 정하고, 교사 양성까지 쥐고 놓지 않는 나라는 이제 거의 없다”며 “국가가 다 정하다 보니 교과서가 여럿처럼 보여도 내용은 비슷한 문제가 벌어진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수학 국가 등급 최고 그룹 승격,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종합 2위. 올해 한국 수학계는 금자탑이라 할 정도로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밑바탕이 돼야 할 초중고교 수학교육은 정반대로 ‘수포자(수학 포기자)’를 넘어 ‘수학의 붕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 4년마다 필즈상을 수여하는 국제수학연맹(IMU)의 금종해 집행위원(65·고등과학원 교수·대한수학회장)은 “수포자가 양산된 진짜 이유는 나라가 수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라가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했다고요?

“수학이 어려워서 싫은 학생들은 늘 있어요. 이건 ‘포기’가 아니라 ‘포비아(공포)’예요. 그러면 나라는, 교육자는 어떻게 해야 해요? 학생들이 겁먹지 않고 재미를 느끼며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제공해야 하잖아요. 어렵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꼭 배워야 한다고 설득도 하고…. 진짜 수포자는 학생들이 아니라 수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한 나라예요. 수학이 어렵다고 이 내용, 저 내용 빼면서 정작 학교에서는 쓸데없이 어렵게 가르치니까요.”

―어떤 면에서 쓸데없이 어렵다는 겁니까.

“초등학교에서 분수를 이렇게 가르쳐요. ‘길이가 45cm인 색 테이프를 영훈이와 지연이가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지연이가 가져갈 수 있는 색 테이프는 몇 cm일까요? 영훈=45cm의 5/9만큼 가져갈게. 지연=그러면 나는 나머지를 가져갈게.’ 그리고 45cm 길이의 색 테이프 그림이 있어요. 그림과 대화까지 있다 보니 어떤 건 문제만 한 페이지나 돼요. 풀기도 전에 문제를 보다가 질려버리죠. 이 문제가 머리에 쉽게 들어옵니까?”

※2019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포자의 첫 갈림길이 초3 ‘분수’에서 시작된다고 발표했다.

―왜 그렇게 가르치는 건가요.

실생활 소재를 이용해 가르쳐야 한다는 개념을 무리하게 적용한 거죠. 그럴 내용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데…. 분수 계산은 기능적인 거예요. 45×5/9=25. 먼저 이렇게 가르쳐주고 나중에 원리를 알려줘야 하는데, 거꾸로 원리부터 알려주면 초등학생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어렵다고만 느끼지. 자전거를 탈 줄 알면 왜 바퀴가 이렇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먼저 바퀴가 돌아가는 원리부터 설명하면 애들이 자전거를 타고 싶겠어요? ‘자포자’가 되겠지요.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걸 왜 일부러 어렵게 가르치는지…. 그리고 우리가 수포자처럼 개념도 모호하고 부정적인 말은 함부로 쓰면 안 돼요.”

―개념이 모호하다니요.

“기초학력이 미달하는 학생들은 있어요. 그런데 그 외에 설문조사로 ‘수학에 흥미가 없느냐’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느냐’를 물어 그렇다고 답한 학생들까지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잖아요. 일정 점수 이상 문제를 못 풀었다고 왜 ‘포기자’라는 낙인을 찍나요? 풀고 싶은데 아직 몰라서, 조금 어려워서 못 풀 수도 있잖아요. 학생이니까, 조금 늦더라도 더 배워서 풀면 되지요. 수포자라는 용어를 쓰는 건… 오히려 수포자를 조장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일 수 있어요. 그리고 생각을 바꿔야 해요. 왜 학생들이 쉬운 것만 배워야 합니까? 문제는 쉽게 낼 수 있어요. 하지만 공부는 어려운 것도 배워야지요. 우리 수학 수준을 낮춘다고 다른 나라도 낮추나요? 이건 나라 망하자는 거예요.”

―어려운 수학이 사교육 증가를 부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계속 쉽고 부담이 작게 가르쳐 왔지만 사교육은 되레 늘었잖아요. 본질은 경쟁에 있지 쉽고 어렵고에 있는 게 아닌데…. 입시를 구구단으로만 치르면 사교육이 없어지겠습니까? 온갖 종류의 구구단 시험 문제가 만들어져서 학원에 다니게 하겠죠. 입시제도를 자꾸 누더기로 만들다 보니 결국 몇 백억 원씩 버는 소위 ‘일타’ 강사들만 탄생시켰어요.”

―그러다 보니 교육도 점점 더 양극화가 되고 있습니다.

“서민층 자녀들은 있는 집 애들만큼 사교육을 받기 어려우니까요. 그러니까 또 EBS 교재를 만들어 그 안에서 출제하게 하고… 코미디죠. 대학도 문제가 있어요. 학생들 눈치만 보고….”

―눈치요?

“전공별로 모르면 안 되는 과목들이 있어요. 이런 과목들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 대학은 입학할 수 없다고 해야 학생들이 공부를 할 텐데 그런 말을 안 하죠. 애들이 지원하지 않는다고. 서울대도 못하니 어느 대학이 할 수 있겠어요. 대한수학회장 임기 4년(재임) 내내 가장 많이 말한 게 우리 수학 교육이었어요. 그게 주 임무가 아닌데….”

금종해 교수(화면 오른쪽)가 7월 온라인 화상 간담회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그럼 누가 그런 얘기를 합니까.

“대한수학회장의 임무는 허준이 교수 같은 연구자들을 키우고, 국가 수학 수준을 높이는 거지 초중고교 수학 교육과정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교육이 망가져 가는데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나서게 된 거지요. 교육은 정치 이슈가 되면 안 돼요. 보세요.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공부를 잘 못하는 자녀를 데리고 있습니다.” (잘하는 학생은 소수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공부를 못해도 당신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 어려운 거 안 배워도 대학 갈 수 있다’고 하면 학부모들은 솔깃해질 수밖에요. ‘이 과목은 우리 애가 어려워서 못하는데 안 해도 된다고? 그럼 좋은 대학 갈 수 있겠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프로파간다(propaganda·선동 선전)죠. 고1, 고3 2학기 범위에서는 수능 출제를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됩니까.”

―3년 동안 배운 것의 절반에서만 문제를 낸다는 건가요.

“하도 ‘수학은 어렵다’고 하니 학습부담을 줄여준다는 건데… 되레 수학 교육만 엉망이 됐습니다.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는 행렬,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공간벡터가 삭제됐지요. 수학계가 아우성을 치니 2022 개정교육과정에 행렬이 다시 들어갔지만 그나마 어려운 부분은 다 빠지고 기본 개념만 가르치는 정도죠.”

―행렬을 다시 넣은 이유는 뭡니까.

“행렬을 모르면 인공지능(AI), 빅데이터를 할 수가 없어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붙은 게 2016년인데 어떻게 이제야….)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기하학은 수능 출제범위에서 퇴출됐다가 1년 만인 2022학년도 수능에 선택과목으로 들어갔어요.”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받은 분야 아닌가요.) “대수기하학을 바탕으로 조합론의 오래된 난제를 다수 해결하고 조합 대수기하학의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받았지요.”

―올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표단(6명)이 모두 서울과학고 학생들이더군요. 우연인가요.

“다단계 선발시험으로 뽑는데 전에는 일반고, 지방 소재 고교 학생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올림피아드 인기가 높아지니까 중학교 때부터 3∼5년씩 전문적으로 사교육을 받으면서 준비하는 학생들이 생겼지요. 집에서 지원해줄 여력이 안 되면 점차 선발되기 쉽지 않은 구조가 된 거예요. 서울과학고 학생들을 뽑은 게 아니라, 1∼6등이 모두 서울과학고인 거죠. 저는 규정을 바꿔서 한 학교 학생들로 모두 채우는 걸 바꾸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아요.”

※7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제63회 대회에서 우리 대표단은 금3, 은3으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대한수학회가 선발을 주관하지 않습니까? 회장이신데….

“과거 해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항의가 심했어요. 오랫동안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은 데다 한 번 메달을 땄는데도 두 번, 세 번 또 나가서 따려고 하는 애들도 있으니까요.” (다른 나라는 어떻게 선발합니까.) “대부분 성적순으로 뽑지요. 수학이 그냥 좋고 잘해서 두 번 이상 나가는 학생도 있기는 해요. 하지만 2000년 제가 채점위원장일 때 러시아 단장에게서 들었는데 러시아는 2명 정도는 성적순이 아닌 단장 재량으로 발탁한다고 하더군요.”

―발탁은 어떤 기준으로 합니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지 보다 이 학생이 앞으로 훌륭한 수학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본다더군요. 그래서 단장이 선발한 학생들은 실제 대회 성적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했어요. (우리 학생들도)한 번 재능을 확인했으면 귀한 시간을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데 쓰지 말고 고급 수학이나 인문학 같은 다른 걸 공부하면 더 좋을 텐데….”

2022년 9월 9일 금요일

인공지능·반도체 설계에 문제 풀이식 수학 교육은 ‘무용지물’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는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일생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영화에서 존 내시는 1947년 프린스턴대학교에 시험도 보지 않고 장학생으로 입학한 천재 수학자로 나온다. 그는 정규 수업에도 잘 참석하지 않고 혼자 독창적인 사고와 몰입으로 게임이론에 관한 새로운 연구를 추구한다. 주로 창문 유리창과 칠판에 수식을 풀어간다. 이후 MIT 교수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정부 비밀요원을 만나 냉전 시대에 필요했던 소련 암호 해독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그리고 정신분열증에 시달린다. 특히 영화 시작 부분에서 프린스턴대학의 학과장은 수학과 신입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학자들이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수학자들이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했습니다. 그리고 원자폭탄을 만들었죠. 여러분과 같은 수학자들이 말이죠. 미국의 미래를 여러분의 손에 맡깁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술 패권 전쟁 시대에도 수학의 가치와 수학자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설계도 수학이 기본이다

인공지능의 핵심 알고리즘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다. 기계학습에서는 인공지능이 데이터로 학습한다. 데이터는 메타버스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얻는다. 그런데 이러한 기계학습의 학습(Training)과 판단(Inference)의 원리도 결국 수학에 기초한다. 결국 기계학습은 수학 덩어리이다. 인공지능망(Neural Network)의 입력은 디지털 데이터의 묶음인 ‘벡터’로 표현된다. 영상, 소리, 텍스트 모두 디지털 벡터의 연속으로 표현된다. 이들이 수많은 ‘행렬’ 곱셈을 거쳐서 인공지능 출력을 얻는다. 이때 최종 출력은 ‘확률 함수’로 표현된다. 인공지능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한대에 가까운 학습을 반복한다. 이 과정으로 인공지능망의 변수를 최적화한다. 이때 오차함수를 최소화한다. 이 과정에서 수학의 ‘미분(Gradient Descent)’이 사용된다. 오차 함수 미분의 기울기가 ‘0′에 가깝게 될 때까지 학습을 계속한다. 이처럼 기계학습의 학습 과정과 판단 과정 모두 수학의 계산 과정과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그 수많은 계산을 인간을 대신해서 컴퓨터가 수행한다. 이렇게 수학이 인공지능의 기초 원리를 제공하고 동시에 복잡한 ‘초거대 모델(Giant Model)’ 설계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인공지능은 수학의 힘이다.

반도체 설계에서도 수학의 힘이 절대적이다. 반도체 칩 하나에는 수백억 개의 전류와 전압 파형(Waveform)이 존재한다. 반도체의 정상 동작을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 내에 약속된 이러한 파형들이 정확히 전달되어야 한다. 이 파형들을 수학으로 표현하면 바로 다변수(Multi-variable) 미분방정식(Differential Equation)이 된다. 영화에서 존 내시가 MIT 수업 시간에 칠판에 가득 풀던 방정식들이다. 수학 미분은 사물의 변화를 표현한다. 반도체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반도체 설계의 완성을 수학적으로 확인(Verification)하기 위해서는 수백억 개의 미분방정식을 동시에 풀어야 한다. 인간은 그 많고 복잡한 방정식을 풀 수 없다. 컴퓨터가 대신 정확하고 빠르게 풀어준다. 이렇게 반도체 설계 능력도 수학 실력이다.


수학 교육과 평가 방식의 혁신이 절실하다

영화에서 존 내시는 프린스턴 대학 강의를 자주 빼먹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업은 생각을 무디게 만들고 진정한 독창성에 대한 잠재력을 파괴한다.” 이렇게 수학 교육의 방식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 입학 시험 문제는 1931년 경성제국대 예과 입학 수학 시험 문제와 차이가 없다. 거의 똑같다. 주입식이며 일방적이고 문제 풀이 위주이다. 이제 수학 교육도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바로 ‘거꾸로 수업’이다. 교사와 학생의 역할이 바뀐다. 학생은 기본 정의와 개념을 미리 자료를 통해 공부해 오고 수업 시간에는 학생이 직접 설명하고 토론하고 질문을 주도한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인 수학 언어를 정의하고 추론 논리를 전개하며, 그 결과를 공유하고 토론한다. 이제 정답이 있는 문제를 주어진 시간에 빨리 푸는 역할은 인공지능에게 맡겨야 한다. 인간이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컴퓨터와 경쟁하는 것은 부질없다.

수학에서는 수와 도형 그리고 함수라는 추상적 언어를 통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결과를 개념화한다. 이를 통해서 일반적인 지식을 만들어 내고 그 지식을 다시 새로운 문제에 응용할 수 있다. 수학은 인간에게 논리력, 상상력, 창조력과 동시에 통찰력을 주는 놀라운 도구가 된다. 그리고 수학적 정직함이 윤리적 올바름과 예술적 아름다움의 근본이 된다. 이제 코로나19가 어서 끝나고 강의실로 돌아가 칠판 앞에 다시 선 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학생들과 수학의 논리적 아름다움과 정직함을 공유하고 싶다. 깨끗하게 지워진 기다란 칠판 전체를 수학 공식으로 가득 채우고 설명하고 토론한다. 쓰여진 수학 공식에 경이로운 상상과 발상 그리고 소통이 담겨 있다. 이때 꼭 부드럽게 쓰여지는 새하얀 분필을 사용해야 한다. 유리판에 미끄러지는 아이패드의 전자펜이 주는 느낌은 절대 분필 가루 냄새를 대신할 수 없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설계를 토론하면서 하루 종일 학생들과 수학에 빠지고 싶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2022년 9월 3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