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수학은 상수학(象數學)을 뜻하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수학은 수(數), 산수(算數), 수술(數術), 산술(算術), 산법(算法), 산학(算學) 등으로 불렀다.『구장산술』이래 초기 산서들은 모두 산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후에 "산술"은 "산경(算經)"으로 바뀌고, 13세기경부터 산학과 수학을 혼용하였다.애리스매틱(arithmetic)의 번역을 산수, 산술이라 하는데, 위에서 사용한 용어의 영어 번역은 매스매틱스(mathematics)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산서들에서 취급하고 있는 내용은 대수학, 기하학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5, 6천년 전 신석기시대의 유적에서 발굴된 도기에 원을 포함하는 도형이 나타난 것을 보면 기하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였을 것이다. 컴퍼스(compass)와 직각자인 규구(規矩)는 후에 표준, 규범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같은 시기에 수에 대한 것도 결승(結繩), 각목(刻木)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나타내기 시작하여 숫자를 나타내는 기호가 3, 4천년 전에 이미 나타나고, 간지(干支)가 도입된다.
주대(周代)에 들어와 노예제도와 경제문화가 진일보하므로 수학과 측량기술이 발전되어 구고술이 발전하여 산학이 한 분야로 정립되어 귀족 교육을 위한 과목으로 육예(六藝 - 禮 樂 射 御 書 數)가 도입되었다. 이 때 수는 구수(九數 - 방전(方田), 속미(粟米), 차분(差分), 소광(少廣), 상공(商功), 균수(均輸), 영부족(盈不足), 방정(方程), 방요(旁要))를 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원전 7세기경 이미 산대를 이용한 계산법이 일반화되었다. 묵자, 장자 등에 의하여 논리, 무한 등의 개념이 도입되었지만 진시황의 분서와 유가의 득세로 이들은 더 이상 수학의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기원전 186년에 조성된 무덤에서 죽간 산서인 『산수서』가 1983수식입니다.SIM 1984년에 출토되어 『구장산술』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전한대에 『구장산술』이 완성된다.
『구장산술』은 오랜 기간의 산학을 집대성한 것인데 전술한 구수에서 차분은 최분(衰分), 방요는 구고(句股)로 이름을 바꾸었다. 수 체계를 유리수체로 제한하여 수학을 전개한 『구장산술』은 양의 분수의 사칙연산과 순서를 「방전」에서, 반비례를 포함하는 비례와 비례배분을 「속미」, 「차분」, 「균수」에서, 평면 도형의 넓이와 입체도형의 부피를 「방전」과 「상공」에서 다룬다. 2원 연립1차방정식과 이중가정법을 「영부족」에서, 일반 연립1차방정식은 「방정」에서 다룬다. 이 때 연립방정식은 행렬로 나타내는데 현재 사용하는 방정식의 행렬의 전치행렬을 사용한다. 방정식의 해법은 가우스 조던 소거법으로 알려진 행렬의 소거를 사용하는데, 이 때 나타나는 음수와 그 연산을 도입하여 「방정」은 항상 “방정정부(方程正負)”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또 음의 유리수를 포함하는 유리수체가 확정된다.
원둘레는 내접하는 정육각형의 둘레를 근삿값으로 하여 원주율 수식입니다.pi 는 3이 되었다. 한 변 수식입니다.a인 정삼각형의 넓이는 수식입니다.{sqrt {3} a ^{2}} over {4}이고 수식입니다.sqrt {3}은 무리수이므로 원의 넓이는 내접하는 정육각형의 넓이를 근삿값으로 택할 수 없었다. 원의 한 호와 현으로 이루어지는 도형을 호전(弧田)이라 하는데 이 때 현과 수직인 지름과 호전이 이루는 선분의 길이를 시(矢)라 부르고, 현을 아랫변, 시를 윗변과 높이로 하는 사다리꼴의 넓이를 호전의 넓이로 정하였다. 반원을 호전으로 보고 위의 근삿값을 택하면 지름이 수식입니다.d인 원의 넓이는 수식입니다.{3d ^{2}} over {4}이 되어 수식입니다.pi `=`3일 때 현재 원의 넓이가 된다. 지름이 수식입니다.d인 구의 부피는 수식입니다.{9d ^{3}} over {16}으로 하는데「소광」에서 다루었다. 제곱근과 세제곱근을 구하는 법은「소광」에서 다루는데 이의 확장으로 원의 넓이와 구의 부피를 주고 지름이나 둘레를 구하는 개원(開圓)과 함께 다루었다. 기본 도형의 부피를 먼저 논하고 다면체의 부피는 이들의 분할로 구한다. 직각삼각형의 풀이를 다룬 것이「구고」이다. 기하적 문제를 대수적으로 해결하고, 또 측량에 응용한다.
『구장산술』은 금유(今有) 형태의 문장제(文章題)를 제시하고 답과 답을 얻는 과정을 술이라 하여 설명한다. 문제의 배열을 보면 『구장산술』은 수학적 구조와 응용을 함께 연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방법은 『구장산술』 이후의 모든 산서가 택하고, 또 다루는 내용도 이 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구장산술』은 중국수학에서 서양수학의 유클리드의 『원론』과 같은 역할을 한다.
『구장산술』 이후의 산서는 『구장산술』보다 발전된 것만 언급하기로 한다. 중국의 모든 학문이 원전에 주를 다는 방법으로 발전한 것과 같이 전한대의 『구장산술』은 죽간 형태로 기술되어 답을 얻어내는 과정만 들어있는데, 이에 대한 주를 유휘가 첨가하여 완전한 수학서가 되었다. 「방전」에서 도입된 원의 넓이의 근삿값의 오차가 큰 것에 착안하여, 원에 내접하는 정수식입니다.6k각형의 넓이로 근사시켜 수식입니다.pi 의 근삿값으로 수식입니다.{157} over {50} `(수식입니다.=`3.14)을 구하고 원의 넓이를 수식입니다.{d} over {2} TIMES {l} over {2}(수식입니다.= pi r ^{2} ``,```수식입니다.d,``l은 원의 지름과 둘레)로 구한다.
유휘는 『구장산술』의 주를 마친 후에 『해도산경』을 첨가한다. 두 개의 직각삼각형과 닮은꼴을 이용한 그의 측량법은 유휘의 기하가 매우 뛰어남을 보인다. 조충지(祖冲之)는 수식입니다.pi 의 근삿값으로 3.1415926을 구하였는데 이의 근삿값으로 수식입니다.{355} over {113} ,`` {22} over {7}를 사용하였다. 산대를 이용한 계산과 도량형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손자산경』은 5세기 초에 출판된 것으로 추정한다. 연립1차합동식을 다룬 그의 해법은 서양수학에서 중국 나머지정리(Chinese Remainder Theorem)로 알려져 있다. 5세기 중엽 이후에 출판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구건산경』은 백계문제로 알려진 1차부정방정식을 다룬다. 『구장산술』은 「방정」에서 부정방정식을 다루지만 상수항이 모두 0인 경우이고 한 해만 구한 것에 반하여 장구건은 양의 해를 모두 구하였다. 수식입니다.x ^{n} `=`a 형태가 아닌 일반 2차방정식은 『구장산술』의「구고」에 한 문제가 들어있다.
3차 이상의 고차방정식을 처음 다룬 것은 7세기에 출판된 왕효통의 『집고산경』이다. 방정식을 얻어내는 과정과 방정식의 해법이 생략되어 읽혀지지 못하였다. 당대에 이순풍(602수식입니다.SIM 670)은 국자감에서 사용할 교과서와 산원들을 뽑는 시험과목으로 10개의 산서를 모아 『산경십서』를 출판한다. 이미 실전된 산서도 포함되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비산경』, 『구장산술』, 『해도산경』, 『손자산경』, 『오조산경』, 『하후양산경』, 『장구건산경』, 『오경산술』, 『집고산경』을 비롯하여, 『철술』(실전) 혹은 『산술습유』(실전)가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송대에 이르러 다시 산서가 출판된다. 심괄(1031수식입니다.SIM 1095)의 『몽계필담』에 심괄의 급수의 합을 구하는 법이 들어있다. 11세기부터 13세기 초에 방정식론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유리식 수식입니다.sum _{k=0} ^{n} a _{k} x ^{k} + sum _{l=1} ^{m} b _{l} x ^{-l}을 나타내는 방법과 연산법으로 천원술이 도입되고 이를 이용하여 방정식을 구성하고, 이의 확장으로 이원술, 삼원술도 도입되었다.
『구장산술』의 「소광」의 제곱근, 세제곱근을 구하는 법에서 다항방정식의 해법으로 조립제법을 사용하는 증승개방법이 도입되었다. 이들은 모두 실전되고, 13세기 이야의 『측원해경』, 『익고연단』, 주세걸의 『산학계몽』, 『사원옥감』 등을 통하여 천원술이 전달되고 진구소의 『수서구장』, 양휘의 『전무비류첩법』, 주세걸의 『산학계몽』 등으로 증승개방법이 전달되었다.
한편 주세걸은 『사원옥감』에서 사원술을 도입하여 4원 연립고차방정식을 구성하고, 이와 함께 유한급수론을 정립한다. 계차수열과 삼각타계열의 급수의 관계는 유작 의 황극력, 일행의 대연력, 서앙의 선명력, 왕순과 곽수경의 수시력에 들어있어서 천문학과 수학을 연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구소는 손자문제의 일반 경우의 해법을 다루고, 주세걸과 함께 『집고산경』의 생략된 부분을 채웠지만 이들은 명대에 크게 받아들여지지 못하였다. 다만 송, 원대의 산학 중에 양휘의 업적만 오경, 왕문소, 정대위 등에 의하여 전달되어 천원술은 잊히게 되고 중국의 수학이 일시적으로 퇴보된다.
명나라 말에 리치(Ricci)를 시작으로 여러 신부들이 중국에 들어와 서양 천문학을 전달한다. 이 때 필요한 서양수학도 함께 들여오는데 리치는 서광계와 함께 유클리드의 『원론』의 처음 6권을 번역하여 『기하원론』으로 출판하고, 이지조와 함께 『동문산지』를 출판하고 이어서 구면삼각법을 포함하는 삼각함수와 대수(對數), 측량법 등이 출판되고, 서양 역법과 함께 이들 산서를 종합하여『숭정역서(1634)』가 출판되고 새로운 역법인 시헌력을 사용하게 된다.
이후 서양수학은 매문정에 의하여 동서양의 수학이 함께 연구되었다. 강희제의 지휘아래 『역상고성』, 『율려정의』, 『수리정온』으로 이루어진 『율력연원』이 출판된다. 옹정(擁正)부터 서양수학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미적분을 포함하는 서양수학은 19세기 중엽까지 중국에 전달되지 않았다. 18세기 말 송, 원대의 수학이 다시 연구되고 19세기에 주세걸의 『사원옥감세초』와 함께 조선에서 중간된 『산학계몽』이 중국에 들어가면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선란과 와일리(Wylie)는 유클리드의 『원론』 7권부터 나머지를 번역하여 1857년에 출판하고 드모르간(De Morgan)의 『대수학 원론』의 번역본 『대수학』과 루미스(Loomis)의 『해석기하, 미적분학 원론』의 번역본 『대미적습급』을 출판하여 대수학과 미적분학을 최초로 동양에 전달한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하여 서양교육 제도가 도입되어 19세기 말 중국수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