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일 토요일

물리학이 이야기하는 생명은 무엇일까


생명이란 무엇인가?
“존재는 영원하여라. 우주를 수놓은 살아 있는 보물들을 법칙들이 지키고 있으므로….” (요한 폰 볼프강 괴테)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무엇일까?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 주변 모든 생명체의 존재 원리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으로 옮겨갔으리라.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그리고 또 다른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적 세계관과 기계론적 세계관을 넘나들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주요 화두지만 이제는 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연구 주제다.

물리학자였던 에르빈 슈뢰딩거도 이 같은 질문에 답을 찾으려 고민했고, 인문학자들과는 다른 방식의 질문으로 접근했다.

“살아 있는 유기체의 공간적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시간과 공간 속의 사건들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슈뢰딩거처럼 물리학, 화학 등 개별 과학으로 해석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파동역학을 만들어 20세기 물리학계 최고 업적이라고 꼽히는 양자역학의 설계자로 평가받는 그가 왜 생명을 이야기한 것일까. 사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뜬금없는 시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슈뢰딩거는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식물학도 연구해 식물의 계통발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고대문법과 시에도 재능을 보였던 전형적인 ‘르네상스맨’이었다. 그가 생명에 대해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그런 그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이론 물리학자 입장에서 바라 본 생명현상에 대한 통찰력 그 자체다.

이 책은 슈뢰딩거가 아일랜드 더블린 고등학술연구소 후원으로 1943년 2월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행한 강연을 기초로 하고 있다. 특히 총 7장으로 꾸며져 생명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부딪히게 되는 개념들을 통계물리와 양자물리를 사용해 풀어내고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다가 생긴 개인적 궁금증 하나. ‘일반 대중 강연을 바탕으로 했다는데, 과연 당시 일반 대중이 이런 강의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란 의문. 물론 듣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내가 어렵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

‘유전자는 왜 변하지 않는가’ ‘유전자는 어떻게 복제될 수 있는가’ ‘생명체는 어떻게 그 자체가 붕괴되려는 경향에 맞서는가’ 등 과학적이면서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공해 ‘생명현상도 물리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신념을 동시대 과학자들에게 불어넣었다.

이 때문에 DNA를 발견해 생물학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꾼 프랜시스 크릭은 슈뢰딩거가 이 책에서 보여준 아이디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에르빈 슈뢰딩거
책을 읽다보면 슈뢰딩거는 ‘인간 염색체는 48개’라는 가정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학생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오류다. 사실 책 곳곳에 오늘날 과학지식으로는 잘못된 사실들이 눈에 띤다. 이 같은 일부 과학적 지식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20세기 과학의 고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생명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슈뢰딩거는 모든 물질은 열역학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세포내 원자와 같은 물질조각의 지속적인 생존과 끊임없는 물질대사가 생명의 핵심이라고 이해한 슈뢰딩거가 물리법칙인 엔트로피로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유기체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활동이 없는 ‘평형상태’로 간다는 것인데, 이를 사람에 적용하면 죽음을 의미한다. 유기체가 살아있는 것은 평형상태로 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즉 세포단위에서 먹고, 마시고, 숨쉬고, 동화하는 물질대사 활동 덕분이라는 것이다.

슈뢰딩거는 이 부분에서 대담한 설명을 시도했다. 유기체가 환경으로부터 끊임없이 ‘음의 엔트로피’를 끌어들여 죽음으로부터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물질대사를 통해 유기체는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배출하는 엔트로피를 성공적으로 떨어낸다. 즉 유기체가 상당히 낮은 수준의 엔트로피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에게 부족한 질서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생명현상에 대한 슈뢰딩거의 효율적인(?) 설명을 시작으로 1950년대 분자생물학과 신경생리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지금처럼 유기체의 물질적 구조와 기능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도 모두 슈뢰딩거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기체 내부의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명확히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물리학으로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한 슈뢰딩거 역시 생명현상 중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유기체에서 발견한 규칙적인 일련의 사건들은 물리학의 ‘확률 메커니즘’과 전혀 다른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지휘된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적인 상상력이 아니라 냉철하고 명료한 과학적 성찰이다. 다세포 유기체에서 특이하게 배치된 각각의 톱니바퀴(세포 내 원자 분포)는 인간의 거친 솜씨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신의 양자역학에 따라 지금까지 성취된 것 중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걸작이다.”

많은 사람이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함을 느끼는 것은 생명현상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슈뢰딩거가 대중 강연을 한 지 50주년이 되는 1993년에 로저 펜로즈, 스티브 제임스 굴드, 제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슈뢰딩거의 주장은 옳았던 것인가’란 화두를 놓고 장시간 논쟁을 벌였다. 이에 대한 결과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What Is Life? the Next Fifty Years: Speculations on the Future of Biology)’이란 책으로 탄생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르빈 슈뢰딩거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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