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일 토요일

“청춘아,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라”


한비야 유엔 자문위원-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봄꽃이 흐드러진 대학 캠퍼스가 돌연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사진을 찍어댔다. 인기 연예인이 찾아온 듯한 열기였다.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에 젊은이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청춘의 멘토로 도전과 위로의 상징이 된 한비야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54·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과 김난도 서울대 교수(49). 이들은 동아일보가 창간 92주년을 맞아 진행한 기획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특히 청춘들로부터 높은 기대를 받고 있다. 한 여학생은 “고민이 많은데 나만 아픈 게 아니란 생각에 위로를 받았다”, 다른 여학생은 “도전하는 열정을 동경한다”고 말했다. 이들도 젊은이들에게 무한신뢰를 보냈다. “믿는다, 청춘.”

○ 사색 통해 길 찾아야

“요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요즘 이화여대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는 한 위원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한 뒤 비로소 사춘기를 겪는다는 것. “공부! 공부! 하다가 막상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면 그때서야 고민을 시작해요.”

한 위원은 진단과 함께 해법으로 ‘사색’을 제시했다. “개인이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사색을 많이 해야 해요. 요즘 검색은 많이 하죠? 그런데 사색하지 않고 그 ‘정보과다의 재난지역’에서 어떻게 좋은 정보를 찾겠어요.”

“공감합니다.” 김 교수는 상담 e메일을 보내온 한 고등학생에게 조금 전 답장을 썼다고 했다. 유명 컨설턴트가 되고 싶은데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잠도 오지 않는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친구의 문제는 너무 조급하다는 거예요.”

한 위원이 이어받았다. “그런 강박 때문에 20대 할 일, 30대 할 일, 죽기 전에 할 일 리스트까지 나오고 있잖아요. 남 생각대로 살거나, 내 생각대로 살거나 선택은 두 가지예요. 그런데 지금 꾸는 꿈이 내 것인지, 부모 것인지, 사회 것인지 그걸 알아야죠.”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많죠.” 김 교수 역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맞아요. 스스로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한참을 강연했는데 어떤 학생이 묻는 거예요. ‘근데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어휴….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네가 찾아라, 이것아.’” 한 위원은 요새 젊은이들을 보면 레고 블록 쌓기를 보는 것 같단다. 툭 치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생각을 대신 해주는 사람은 엄마죠.” 김 교수의 원인 분석이다. 많은 청춘이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세뇌되지 않았던가. “저는 그걸 에스컬레이터적인 사고라고 불러요. 첫발만 디디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에스컬레이터. 에스컬레이터를 타느냐 못 타느냐가 아니라 어떤 계단을 올라야 할지 생각하는 게 중요한데. 청년들의 사색하는 역량이 거세되는 느낌이죠.” 김 교수의 말에 한 위원이 거든 한마디. “아, 슬프다.”

▼ “세계 누빌 대한민국 청춘들, 10년뒤 오늘 다시 뭉쳐볼까요” ▼

○ 열정에 불을 붙여야

한 위원도 사색이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솔직히 저도 고민이에요. 사색 끝에 용기를 내 도전했는데 실패하고 돌아오면? 저도 대학 진학에 실패한 적이 있어요. 가족의 수치고 인생의 낙오자였죠. 한 번의 실패가 너무 치명적이에요. 도전에서 실패한 이들을 사회가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우리의 숙제죠.”

그래도 김 교수는 칠전팔기(七顚八起)를 믿는다. “성공한 분들을 봐도 한 번의 성공이란 없어요.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 그 내면의 열정에 불을 붙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한 위원이 반색했다. “어느 날 며칠 밤을 새워 글을 쓰다가 창밖을 보니 날이 밝아오더라고요. 속으로 ‘독한 것’ 하고 웃었죠. 그러곤 거울을 봤는데 초췌한 내 얼굴이 그렇게 맘에 드는 거예요. 뜨겁게 몰두했던 순간이니까.”

“행복은 그런 열정이 밑바탕이 돼야 해요. 숯불처럼….” 김 교수가 맞장구쳤다.

한 위원은 ‘무작정 열정’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모두 100도로 펄펄 끓는 건 아니니까 미지근한 삶의 태도도 존중해요. 그런데 전 밥이 아니라 꿈을 얘기하는 사람이에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꿈을 꾸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덧붙였다. “도전해야 성공할 확률이 50%라도 있지, 아예 시도조차 안 하면 성공 확률은 0%잖아요.”

다행히 희망이 보인단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세대와 달라요. 안정된 직장이 행복을 보장해 주나?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저나 김 교수님한테 상담 e메일을 보내는 것도 그런 몸부림이라고 봐요.” 한 위원은 최근 한 학생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은 행복하세요?’ 한 위원은 질문이 고마웠다고 한다. ‘아이들이 사색하기 시작했구나.’

○ 한국 넘어 세계로, 세계로

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도전 무대를 지구촌으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에 입사해 주말에 노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게 세계인 거예요. 그런데 글로벌 시대가 됐잖아요. 통 큰 생각을 했으면 해요.”

국제화 얘기가 나오자 이내 한 위원 목소리가 높아졌다. “많아야 70억 인구인데 지구가 다 우리 집인 셈이잖아요. 옆에서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생각하는 거, 이런 게 세계시민이고 시대정신이죠.” 김 교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지금은 대기업 중심으로 글로벌 무대에 진출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할 것 없이 세계로 더 뻗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젊은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 대목에서 두 사람은 글로벌 무대로 나설 청년들이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점이 있다고 했다. 한 위원이 먼저 나섰다. “사람의 성숙도를 가늠할 때 전 그 사람이 약자를 대하는 모습을 봐요.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보다 못한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국격이죠.”

“그럼 전 강자에 대한 시선을 얘기할게요.” 김 교수가 이어받았다. “우리 세대만 해도 미국 일본 하면 기가 죽었어요. 미제, 일제가 최고였죠. 그런데 지금은 국산이 더 좋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강자에 주눅 들지 않았으면 해요. 국가적으로 봐도 우리가 영원히 극복 못할 나라가 없어요.” 김 교수가 즉석에서 구호를 만들었다. ‘약자에겐 따뜻한 시선을, 강자에겐 도전을.’

“10년 뒤 두고 보자고요.” 한 위원이 밝아진 얼굴로 단언했다. “제가 구호활동을 하니까 요즘은 길에서 아이들도 날 만나면 돈을 줘요. 어려운 데 써달라고. 이런 얘기하면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해요. 사실 10년 전만 해도 왜 다른 나라를 돕느냐고 했잖아요. 10년 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정말 기대돼요.”

김 교수가 깜짝 제안을 했다. “10년 뒤 오늘 다시 만납시다. 두고 보자고요.” 두 사람은 우리 청년들이 지구촌을 무대로 펼칠 활약상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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