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8일 일요일

정미령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의 교육해법은?


▲정미령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교육을 '콩나무 시루'에 비유하며 학생들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극대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늘 강조하고있다.

 
"똑같이 키웠어도 콩나물의 길이와 크기가 다르듯이 우리 학생들도 타고난 끼와 재능, 성취도가 모두 다릅니다. 엘리트 양성이 중요하지만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 없고, 지나친 교육열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죠.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만족할 만한 교육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반세기 넘게 '교육' 에 대한 연구에 매진해온 정미령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68). 한국인 최초의 옥스퍼드대 교수이자 세계적인 교육심리학자인 정 명예교수는 교육을 '콩나물 시루'에 비유했다. 콩나물이 같은 생육 조건에서 자라지만 모두 다 같지 않고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는 것처럼 교육도 학생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크게 성장하는 콩나물은 그대로 두되 작은 콩나물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 명예교수에게 우리 교육의 현실과 문제점 등을 들어봤다. 정 명예교수는 공교육 정상화 방안에서부터 새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소리를 쏟아내며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은 교육열에 관한 한 세계 최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 교육 예찬이 몇 년째 계속될 정도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교육열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 오늘의 선진 한국을 만든 토대가 됐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서양에서는 가정에서 학생들의 교육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학교에 모든 것을 맡겨놓기 때문에 교육의 평준화는 가져왔지만, 정작 우수한 학생의 양성은 소홀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너무 높은 교육열 때문에 학생들이 힘들어 하는 것도 사실 아닌가.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교육열은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웃음) 열띤 교육열은 지키되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 근본적으로 국가의 교육 정책이 중요하다. '교육' 이라는 말 자체가 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이므로 한 순간에 '확' 바뀔 수는 없다. 영국에서는 창조 과정, 즉 에볼루셔너리 프로세스(Evolutionary Process) 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창조 경제'와 함께 '창조 교육'도 필요하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교육 제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교육만큼은 신중하고 천천히 바꿀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학부모 모두의 목표는 하나같이 자녀의 '일류대학' 입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의 능력과 적성은 정말 다 다르다. 따라서 '차별' 교육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또는 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적성과 개성을 깨닫고 이에 맞는 전공과 직업을 골라야 일에 대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의 특성화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한국 대학들은 특성화가 아니라 서열화 밖에 안 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소질과 적성을 따라가다 보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는 없다. 학생마다 개성과 타고난 끼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찍 자신에게 맞는 적성을 찾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거다. 물론 엘리트 교육도 필요하다. 엘리트 교육을 통해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한국 대다수의 학부모가 지나친 욕심 때문에 무리한 공부를 시키려 한다는 거다. 영국에서는 상위 5%만이 엘리트 교육을 받는다. 또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사람도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하지만 평범한 학생들도 취업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새 정부는 '꿈과 끼를 키워주는 교육'을 내세우고 있다. '자유학기제' 시행도 임박했고, 진로교육도 강화할 것이라는 데.

"맞다. 중·고등학생들의 진로 탐색은 정말 필요하다. 학생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을 찾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학부모 대다수는 훗날 고용이나 임금 등의 차별 때문에 소질과 적성에 따라 진로를 찾는 것 대신 공부만 잘하면 다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임금제도 같은 것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돼야한다. 엘리트에게 권력과 부가 집중되면 안 된다. 굳이 일류 학교를 안 나오고 실무 교육만 받고도 생산성에 기여하는 사람에게 월급을 많이 주면 된다."

-바뀌는 정권 마다 교육 정책은 그리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 평가한다면.

"그동안 연구해오고 10년 넘게 정부에 건의해왔던 (나의) 주장과 같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교육 정책 자체는 바람직하고 미래지향적이다. 이제는 실천만 잘하면 된다. 자유학기제를 예로 들자면 영국에서는 이미 고등학생들은 대학 입학 전까지 필수 핵심과목은 5개만 듣고 나머지는 본인이 원하는 과목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공부 말고 다른 체험을 많이 해보라며 교과서를 집에 갖고 가지 못하게 한다. 숙제도 '동네에 하수도 공사를 하는데 어떤 과정으로 하는지' 등에 대한 리포트를 내도록 한다. 그 자체가 훌륭한 자율학습인 셈이다."

-교육열은 높은 데 정작 기본적인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일이 많아 문제다. 최근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중·고교생이 절반이 넘는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여기에다 좌편향 역사관도 논란이다.

"교육의 역할은 세계를 이끌 지도자 양성도 있지만, 건전한 민주 시민 육성이 보다 중요한 책무다. 스펙은 화려한 반면 기본이 돼야 할 자국의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어렸을 때부터 기본 소양을 가르쳐 국기(國基)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기초적인 사실을 제대로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역사 편향이나 왜곡은 더 언급할 것도 없다."

-최근에는 대학평가를 하면서 취업을 핵심 기준으로 하다보니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대표되는 인문학이 고사 위기를 빚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살면서 문학과 역사, 철학은 중요한 근간이 된다. 영국의 경우 이 같은 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초등학교부터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종교와 철학을 의무적으로 수업받게 하고 있다. 영국의 총리 14명 중 10명이 옥스퍼드 대학 출신인데 이들은 정치와 경제 외에도 꼭 철학을 전공했다. 현재 상황에 급급해 인문학을 없앤다면 22세기, 23세기의 미래를 봤을 땐 희망이 없다."

-대학생들이 취업에만 매달리는 현상도 심각하다. 고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제언이 있다면.

"대학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닌가. 졸업장이라는 형식 보다 머릿 속에 무엇가 담겨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영국에서는 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 자기 대학의 교수가 자신의 학생을 평가하지 않는다. 타 대학 교수가 와서 심사를 하면서 객관성을 높인다. 한꺼번에 일궈내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차츰차츰 사람을 키우는 교육시스템이다. 어느 대학 나와서 졸업장을 땄다는 것이 아니라 실력 검증을 철저히 받아야 한다. 한국도 풍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전문가가 되고, 그런 전문가를 인정하는 풍토가 빨리 조성돼야 한다. 그런 노력이 병행돼야 교육 정상화가 이루어진다."
>>정미령 명예교수는 …
40여 년 전인 1971년, 영국 유학길에 오른 정미령 명예교수.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대 후반에 어렵사리 유학을 떠나 런던대학에서 대학원 시험을 쳤다. 하지만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 눈 앞이 캄캄해 졌다. 준비한 문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던 것. 시험에 합격해야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터였다. 마음을 다 잡고 아는 거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한 정 명예교수는 시험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던 비교교육론에 대해 상세히 기술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갖고 간 200달러 중 절반을 갖고 일주일 동안 7개 국가를 투어한 정 교수. 여행이 끝난 뒤 놀랍게도 학교로 부터 합격편지를 받았다. '이상할 정도로 창조적이며,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이곳에서 수학하다 옥스퍼드대와 에든버러대에서 12년간 영국 국비 장학생으로 연구에 매진한 정 교수는 에든버러대에서 쓴 85년도의 논문이 학계의 큰 주목을 받으며 옥스퍼드대로 스카우트됐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1985년 옥스퍼드대(해리스 맨체스터 칼리지)의 교육심리학 교수이자 펠로우(fellow 대학 특별 연구원)로, 10년 후인 1996년에는 정교수로 임명됐다.

정 교수가 5년에 걸쳐 작성한 논문은 타고난 유전자도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능지수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 아이큐와 관계없이 부모나 생활환경에 따라 아이의 능력이 달라진다며 인지의 다양성을 주장했다.
대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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