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학교 교사들에 따르면 장문(長文)으로 된 서술형 문제는 문제를 끝까지 읽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그림자가 짧아진 정도를 보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를 구하는 문제를 장문의 서술형으로 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문제에 나오는 ‘나무, 태양, 그림자’라는 단어만 보고 문제집에서 봤던 ‘몇 시간 후의 그림자 길이를 구하는 것’이라 생각해 오답을 적었다고 했다.
지난 중간고사에서 여러 개의 직선이 교차하며 이루는 각도를 구하는 문제를 낸 중학교에는 시험시간에 각도기를 꺼낸 학생도 나왔다. 시험 범위에 나온 ‘동위각’이나 ‘맞꼭지각’ 같은 개념을 활용하지 않고, 그림에 있는 것을 직접 재려 했던 것이다.
계산에 익숙하지만 수학에 흥미가 없다는 것은 국제 조사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 학생들(중2)은 지난 2007년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의 ‘수학·과학 성취도 조사’에서 평균점수 597점을 받아 대만(598점)의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같은 또래 외국 학생들에 비해 문제 풀이 실력이 전반적으로 뛰어나다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 중에 수학 공부가 즐겁다고 답한 학생들은 3명 중 1명(33%)에 불과해 국제 평균인 54%를 크게 밑돌았다. 또 수학 공부의 가치를 이해하는 정도도 전체 조사대상 50개국 가운데 45위에 머물렀다. ‘문제는 잘 풀어도 수학이 왜 필요한 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교대 배종수 교수는 “현재 수학교육은 ‘수학’이라는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학기능을 연마시키는 기능인 양성’에 목적을 둔 것처럼 보인다”며 “공교육, 풀뿌리 교육부터 틀을 바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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