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중학교에서 배우는 음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1, 2, 3과 같은 수를 자연수라고 하며, -1, -2, -3과 같은 수를 음수라고 한다. 보통 우리는 이익이나 오른 쪽 방향을 양수로, 손해나 왼쪽 방향을 음수로 나타낸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음수에 대해서는 많은 어려움과 의문점이 남게 된다.
위대한 사상가인 파스칼(1623-1662)도 아무 것도 없는 것(즉, 0)은 빼어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인 스탕달(1783-1843)도 왜 음수와 음수를 곱하면 양수가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어느 선생님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했다고 그의 자서전에 쓰고 있다.
독일의 과학자인 파렌하이트(Fahrenheit, 1686-1736)가 1724년에 사용하기 시작한 화씨온도계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당시 사람들이 음수에 대해 많은 어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피하고자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당시 실험실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를 0℉로, 사람의 체온을 96℉로 정하여 온도계를 만들었다. 화씨 0°가 섭씨로는 영하 18° 정도가 되기 때문에 어지간한 추위에서는 영하의 온도가 나오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이 골치 아픈 음수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아보자.
유럽에서는 17세기 데카르트 이후에야 음수가 나타나지만,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음수가 사용되었다. 한나라 시대의 ‘구장산술’에서는 양수는 빨간 셈막대, 음수는 검은 셈막대를 사용했는데, 가축을 판 값은 양수로, 가축을 사기 위해 지불해야 할 값은 음수로 나타내었으며, 이러한 양수와 음수의 덧셈과 뺄셈 방법도 설명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양수를 자산, 음수를 부채로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중국과 인도 사람들은 양수와 음수를 상대적인 수로서 생각하였는데, 이런 생각은 동양과 서양에서 보편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도 음수를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칠 때는 이익과 손해, 오른쪽과 왼쪽, 미래와 과거 등 서로 반대 개념을 가지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상대적인 수로 생각하면 음수와 음수의 곱이 양수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스탕달이 “어떻게 만 프랑의 빚에 5백 프랑의 빚을 곱해서 5백만 프랑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였던 것이다.
3세기 경 그리스 수학자 디오판투스는 방정식의 계산 과정에서 음수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음수를 계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부산물이며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7세기 경 아라비아의 알콰리즈미도 이차방정식을 풀면서 양수와 음수의 해를 찾았지만 디오판투스처럼 음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알콰리즈미는 도형을 이용하여 방정식을 풀었기 때문에 음수가 의미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15, 16세기에 유럽에서 음수의 기호가 만들어지고 음수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음수와 음수를 곱하면 양수가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음수를 제대로 인정한 사람은 타르탈리아와의 논쟁으로 유명한 카르다노이다.
그는 음수를 수로 보고 있지는 않지만, 3차방정식을 부피를 이용하여 구하는 과정에서 양의 값 에 (-)부호를 붙인 를 이용하여 부족한 양, 즉 음수를 다루었다. 그러므로 카르다노는 문자 를 양수로만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 역시 음수를 부족한 양으로 보았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문자()를 양 또는 음의 값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여 음수에 대하여 카르다노보다 한 걸음 더 진전된 태도를 보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에서 음수를 배우면서 음수를 기계적으로 계산은 잘 하지만 그 의미나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파스칼이 0보다 작은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2-3과 같은 계산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수학자도 있었고, 과 (-5)제곱 과 5 제곱이 모두 25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수학자도 있었으니, 우리도 음수에 대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자. 음수를 처음 도입할 때 사용하던 상대적 의미에서 벗어나서 형식적인 의미로 음수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음수와 음수의 곱이 양수가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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