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언제 시작되었느냐는 시사상식퀴즈에 등장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1901년이라는 기준은 다분히 인간 편의적으로, 또 임의로 정한 기준에 불과하다. 2020년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와 이것이 강제한 이른바 ‘뉴노멀’의 시대를 겪으며, 나는 진정한 21세기가 이제 시작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팬데믹 뉴노멀 시대의 가장 놀라운 광경은 우리가 지금까지 선진국이라 불렀던 나라들의 민낯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유럽과 미주의 여러 나라들을 지켜보며,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롤모델들이 적어도 방역에 관해서는 더 이상 배울 게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초로 종두법을 시행한 영국도, 최초로 백신을 개발한 파스퇴르의 조국 프랑스도, 제1회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도, 어쨌든 지금 세계 유일 최강국인 미국도, 그렇게 20세기를 주름잡았던 나라들이 21세기에는 낯설지도 않은 인류의 위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다소 섣부르긴 하지만 기존의 선진국 또는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이제 한계에 달한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20세기의 완전한 종말이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로부터 역추적을 해 보자면 지난 20세기란 지금의 선진국 또는 강대국들이 지금의 지위를 획득하고 누린 시기가 아닐까 싶다. 즉, 현재의 세계질서가 형성되고 작동된 시대가 20세기이고 그 유효성이 뉴노멀 시대에 소멸된다면 그것이 21세기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20세기의 시작은 지금의 세계질서가 형성된 시점으로 잡을 수 있다. 나는 그 분기점을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잡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의 세계는 19세기의 연장에 불과하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경쟁적인 식민지 경영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아마도 프랑스의 ‘벨 에포크’가 이 좋았던 시절을 대변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과학’은 언제 어떻게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할까? 이를 정하려면 20세기 과학이 19세기까지의 과학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성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는 세부적으로 분야마다 다를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21세기의 시점에서 20세기 전체를 다 돌아볼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있다.
먼저 물리학부터 살펴보자. 20세기 물리학이 그 이전의 물리학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의 세계관을 꼽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이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으로 떠오를 것이다. 사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20세기 물리학, 또는 현대물리학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20세기 초반 새로운 과학혁명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이 두 분야 모두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20세기 물리학을 그냥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출현 이후의 물리학이라고 불러도 아주 훌륭한 분류법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모두 20세기가 막 시작하면서 태동했다. 어쩌면 1879년에 태어난 아인슈타인이 20대 초반으로 접어든 때가 하필 20세기의 시작이었다는 게 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 혼자서 거의 모든 걸 다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그 시작점을 찾기도 쉽다.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을 발표한 것은 1905년이었다. 이 해를 아인슈타인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 부른다. 반면 양자역학은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론적 틀을 갖추었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과 사람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양자역학의 출발점을 1900년 12월의 막스 플랑크로 잡는다. 이때 플랑크는 흑체복사(blackbody radiation)로 알려진 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많은 양자역학 교과서가 흑체복사 현상부터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흑체복사는 단지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이론으로서 양자역학이 언제 정립되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한 가지 유력한 사건은 플랑크의 흑체복사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1925년의 하이젠베르크이다. 이 해에 하이젠베르크는 뉴턴역학을 대체할 새로운 동역학체계를 제시했다. 1901년생인 하이젠베르크의 나이 만 24세 되던 해였다. 이 공로로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노벨 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에 “양자역학을 창조한 공로에 대하여(for the creation of quantum mechanics)” 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왜 많은 물리학자들은 고전과 현대를 가르는 기준으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모두 거론하지 않고 주로 양자역학 하나만을 선호할까? 그것은 양자역학의 세계관이 그 이전의 뉴턴역학적 세계관과는 너무나 단절적이기 때문이다. 뉴턴역학이 결정론적이라면 양자역학은 확률론적이다. 이는 고전과 현대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다. 이 기준에 입각해 본다면 상대성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이나 일반상대성이론이나 모두) 여전히 결정론적이고 따라서 ‘고전적’이다. 결정론적이란 초기조건이 정해지면 나중상태를 정확하게 (원리적으로는)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확률론적이란 나중상태를 원리적으로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오직 확률분포만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결정론과 확률론의 연원을 따져보면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맞닿아 있다. 고전물리학은 연속적인 양에 관한 물리학이다. 반면 양자역학은 불연속적인 물리량에 관한 과학이다. 물리량이 불연속적인 정도는 대략 플랑크상수로 알려진 숫자의 크기 정도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양자역학은 계단에 해당한다. 우리가 계단을 오를 때 한 계단과 그 다음 계단 사이의 위치에 있을 수 없다. 반면 비탈면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임의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탈면은 연속적이고 계단은 불연속적이다. 그런데 아주 멀리서 계단을 바라보면 매끈한 비탈면과 구분할 수 없다. 큰 스케일에서 보자면 계단 한 칸의 차이가 그리 대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관계이다. 거시적인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매끈하고 연속적이지만 원자 이하의 미시적인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단절적이고 불연속적이다. 그 불연속적인 정도를 나타내는 양이 바로 플랑크상수이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하자면 양자역학을 통해 원자 이하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원자모형의 발달궤적은 양자역학의 발달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원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원자는 이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자연의 최소단위로 도입되었으나 20세기를 경과하며 과학자들은 원자의 복잡한 하부구조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원자의 중요성이나 그 지위가 축소되지는 않는다.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와 원자핵을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20세기의 인류는 전자혁명과 원자력 에너지의 시대를 열었다.
인간이 찾아낸 원자의 종류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표로 정리하면 주기율표를 얻는다. 주기율표는 화학의 청사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원자 이하 세계의 비밀을 밝혔다면 그 결과가 화학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20세기 화학의 가장 큰 성과라면 양자역학의 원리로 원자들의 화학결합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오비탈 개념을 도입해 화학결합의 원리를 정립한 라이너스 폴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어떤 원소들이 어떻게 결합하는가는 각 원소들 속의 전자들이 어떻게 배치돼 있는가로 결정된다. 전자들이 어떻게 배치돼 있는가는 결국 양자역학의 규칙에 따라 정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환원주의의 위력을 엿볼 수 있다. 환원주의란 보다 근본적인 요소로 어떤 개념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환원주의는 20세기 생물학에서도 빛을 발했다. 20세기 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하나 꼽으라면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논문을 발표한 1953년이 아닐까 싶다. 이때부터 분자생물학의 새 시대가 열렸다. DNA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다. DNA의 분자구조를 파악했다는 것은 말하자면 생명의 설계도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설계도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유전과 생명 현상을 파악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임은 자명하다. 덕분에 21세기의 우리는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모두 파악했고 코로나19 같은 고약한 바이러스가 출현하더라도 일단 그 유전물질부터 분석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대상을 보다 근본적인 요소로 파악했다는 것은 결국 그 대상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유전물질의 분자구조를 파악했다는 것은 결국 유전현상을 우리 의지에 따라 제어하는 관문을 연 셈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인 유전자 가위가 20세기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3세대 유전자 교정 기술로 20세기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018년에는 중국의 과학자가 유전자 편집 시술로 아기를 출산시켜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원자의 발견과 이해가 20세기 과학 전반에 끼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리처드 파인만은 만약 모든 과학지식이 파괴돼서 후손에게 딱 하나의 문장을 전해주려 한다면 가장 적은 단어로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은 문장은 무엇일까라고 자문하며, 그 답은 아마도 원자론일 것이라 자답한다.
그래서 파인만을 따라 20세기 과학의 핵심은 원자라고 말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한편 20세기는 인류가 우주로 본격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세기이기도 했다. 인류가 우주, 또는 하늘을 봐 온 것은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가 이 행성에 출현한 이후 줄곧 계속된 일이겠지만 우주 자체에 대한 과학이론이 출현한 것은 겨우 20세기에 접어들어 가능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는 우주의 탄생과 진화의 역사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우리가 우주에 대해 무엇을 모르는지도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는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진출한 시대이기도 하며 마침내 지구 이외의 천체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기도 했다.
이처럼 20세기의 과학은 자연의 가장 작은 스케일인 원자 이하의 세상에서부터 가장 큰 스케일인 우주에 이르기까지 인간지성을 확장해 왔다. 놀랍게도 가장 작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과 가장 큰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우주에 어떤 형태의 입자가 존재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한편 20세기의 말에는 19세기말의 풍경과는 또 다른 결에서 일종의 완결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 기대감은 최종이론, 또는 궁극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세기말의 과학자들을 설레게 했다. 그 설렘을 완전히 파산시키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큰 실망감을 안겨주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세기는 앞서 말한 대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20세기의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2차 대전이 핵무기의 등장과 함께 막을 내렸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20세기를 특징짓는 단 하나의 장면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의 원폭투하를 꼽는다. 지금의 세계질서는 사실상 그때 이후로 결정되었고, 20세기 과학이란 무엇인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The Nobel Foundation, The Nobel Prize in Physics 1932, https://www.nobelprize.org/prizes/physics/1932/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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