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학 입학 전형 시행계획이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인 가운데 문과·이과 학생 선발을 둘러싼 대학과 교육 당국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문·이과 통합’이라는 장기 계획에 맞춰 고교 문·이과 통합, 통합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단행해 왔다. 융합형, 창조형 인재를 배출해야 할 미래에 과거의 문·이과 ‘칸막이식’ 교육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당국은 이 장벽을 더 허물려는 기조다.
반면 대학가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고교 교육과정과 수능은 정부가 바꿨지만, 대입에서까지 이 틀이 흔들리는 것은 원치 않는 분위기다. 특히 그간 수학, 과학 실력이 우수한 이과 상위권 학생들을 선호해 온 주요대 의대, 이공계열, 자연계열 학과들 사이에서는 우려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교육 당국과 대학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필수 과목 없애라” 대학에 요구
2022학년도부터 시작된 통합 수능 체제에서는 수험생 누구나 치러야 하는 ‘공통과목’과 골라서 치르는 ‘선택과목’이 있다. 가령 수학은 총 30문항 중 공통과목에서 22문항이 출제되고, 나머지 선택과목인 ‘확률과 통계(확통)’, ‘미분과 적분(미적분)’, ‘기하’에서 8문항이 출제된다. 국어는 ‘언어와 매체’, ‘화법과 작문’이 선택과목이다. 과학탐구에서는 물리Ⅰ·Ⅱ, 화학Ⅰ·Ⅱ, 생명과학Ⅰ·Ⅱ, 지구과학Ⅰ·Ⅱ가 있다. 고교 문·이과 학생 모두 이 중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수능을 치르고 그 성적으로 대학에 지원한다.
문제는 각 대학, 그리고 학과들이 내세우는 조건이다. 통합 수능 시행 이후 대부분 대학의 경제 및 경영학과, 사회학과, 국문과, 영문과 등 인문계열 학과들은 수험생이 치러야 할 과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반면 의학·이공·자연계열 학과들은 다소 다르다. 의대, 치의대, 컴퓨터공학과, 화학공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전기전자공학과 같은 곳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필수 선택과목’을 대학이 미리 지정해 뒀다. 학교나 학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수학은 미적분이나 기하, 탐구는 과탐을 지정했다. 이과생들이 공부하는 과목들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과생은 인문계열 학과에 진학할 때 장벽이 없는데, 문과생이 의학·이공·자연계열 학과에 가려면 필수 선택과목을 응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원서를 낼 수도 없다.
가령, 수학 영역만 봐도 문·이과생들이 각각 주로 선택하는 확통, 그리고 미적분·기하는 서로 난도나 학습량이 매우 차이가 난다. 학원가에서는 “미적분 만점을 받기 위한 학습량은 확통의 5∼10배”라고 입을 모은다. 미적분, 기하에는 최상위권 학생들을 분별하기 위한 일명 ‘킬러 문항’, 초고난도 문제도 2, 3문항씩 출제된다. 과탐 영역도 물리Ⅱ, 화학Ⅱ 등의 선택과목에는 대학 전공자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종종 출제된다.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이 예고된 가운데 각 대학은 수시모집 선발 과정에서도 이러한 구조를 유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란 고교생도 대학생처럼 본인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수강하고 일정 학점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지난달 23일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등 5개 대학 입학처는 ‘고등학생 교과 이수 과목의 대입전형 반영 방안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 제출 기한을 7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들 학교는 자연계열 14개 중 12개는 미적분을 고교에서 들어야 할 핵심 과목으로 제시했다. 또 물리학과는 물리Ⅰ·Ⅱ를 핵심 과목으로 지정했다. “우리 학교에 입학하려면 미적분을 배우고 오라”는 일종의 지침을 제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의학·이공·자연계열 학과들이 유지하고 있는 필수 과목을 ‘대학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허물려 한다. 대교협은 교육부로부터 ‘고교교육기여대학 지원 사업’을 위탁받아 실시하고 있는데, 올해는 총 91개 대학에 575억 원이 지원된다. 교육부는 사업비의 책정에 각 대학이 문·이과 통합 교육, 통합 수능의 취지를 얼마나 학생 선발에 반영했는지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국내 4년제 대학의 연평균 등록금은 676만3100원이다. 가령 정부 지원금 10억 원이면 재학생 147명의 등록금과 맞먹는다. 재정이 어려운 지방대의 경우 지원금 10억 원을 포기하는 대신 기존의 입시 전형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신입생을 무려 147명을 더 뽑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의 한 상위권 사립대 입학처장은 “교육부의 눈 밖에 나는 순간 해당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늘 있다”고 말했다. 재정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대학에서 총장이 물러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필수 과목을 고수하는 의학·이공·자연계열 학과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문·이과 통합 취지는 좋지만 대학에서의 연구, 수업, 장기적으로 인재 양성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도권의 한 이공계열 학과 교수는 “학부 교수 입장에서는 신입생이 이미 미적분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1학년 수업을 하는데, 미적분도 모르는 문과생이 여럿 입학해 강의실에 앉아 있다면 수업을 할 수 없다”며 “문·이과 격차를 고려하면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반면 선제적으로 문·이과 장벽을 허무는 대학도 일부 있다. 서강대는 내년 신입생(2024학년도)부터 자연계열의 수학, 탐구영역 필수 응시 과목을 전면 폐지한다. 중앙대도 내부적으로 이를 고려 중이다.
교육당국과 대학 간의 줄다리기와는 관계없이 교육계에서는 또 다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융합 인재를 기르고 문·이과 장벽을 없애자는 정책 취지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현재 이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의대 쏠림’ 현상이 문과로까지 확장될 것이라는 우려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자연계열 필수 과목이 사라지면 장기적으로는 문과생마저 의대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지금은 문과 최상위권 학생이 몰려 있는 외국어고, 국제고는 대부분 인문계열로 진학하지만, 필수 과목이 사라지면 이들이 인문계열 대신 사회적 지위나 향후 연봉 등을 고려해 의대, 약대, 수의대 등으로 몰릴 수 있다고 분석한다. 임 대표는 “파장이 중학교급까지 미치면,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이 장기적으로 의대 진학을 위해 일부러 내신에서 유리한 문과로 진학한 뒤 통합 수능으로 의대에 지원하는 새로운 ‘의대 루트’가 열릴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커트라인이 높은 수도권 주요 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방대 의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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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과 통합에도… 입시 장벽 여전
지난달 23일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등 5개 대학 입학처는 ‘고등학생 교과 이수 과목의 대입전형 반영 방안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 제출 기한을 7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들 학교는 자연계열 14개 중 12개는 미적분을 고교에서 들어야 할 핵심 과목으로 제시했다. 또 물리학과는 물리Ⅰ·Ⅱ를 핵심 과목으로 지정했다. “우리 학교에 입학하려면 미적분을 배우고 오라”는 일종의 지침을 제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의학·이공·자연계열 학과들이 유지하고 있는 필수 과목을 ‘대학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허물려 한다. 대교협은 교육부로부터 ‘고교교육기여대학 지원 사업’을 위탁받아 실시하고 있는데, 올해는 총 91개 대학에 575억 원이 지원된다. 교육부는 사업비의 책정에 각 대학이 문·이과 통합 교육, 통합 수능의 취지를 얼마나 학생 선발에 반영했는지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국내 4년제 대학의 연평균 등록금은 676만3100원이다. 가령 정부 지원금 10억 원이면 재학생 147명의 등록금과 맞먹는다. 재정이 어려운 지방대의 경우 지원금 10억 원을 포기하는 대신 기존의 입시 전형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신입생을 무려 147명을 더 뽑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의 한 상위권 사립대 입학처장은 “교육부의 눈 밖에 나는 순간 해당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늘 있다”고 말했다. 재정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대학에서 총장이 물러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 의학·이공·자연계열 “수업 부담 우려”
수도권의 한 이공계열 학과 교수는 “학부 교수 입장에서는 신입생이 이미 미적분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1학년 수업을 하는데, 미적분도 모르는 문과생이 여럿 입학해 강의실에 앉아 있다면 수업을 할 수 없다”며 “문·이과 격차를 고려하면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반면 선제적으로 문·이과 장벽을 허무는 대학도 일부 있다. 서강대는 내년 신입생(2024학년도)부터 자연계열의 수학, 탐구영역 필수 응시 과목을 전면 폐지한다. 중앙대도 내부적으로 이를 고려 중이다.
● “문과서도 의대 쏠림 나타날 수”
교육당국과 대학 간의 줄다리기와는 관계없이 교육계에서는 또 다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융합 인재를 기르고 문·이과 장벽을 없애자는 정책 취지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현재 이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의대 쏠림’ 현상이 문과로까지 확장될 것이라는 우려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자연계열 필수 과목이 사라지면 장기적으로는 문과생마저 의대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지금은 문과 최상위권 학생이 몰려 있는 외국어고, 국제고는 대부분 인문계열로 진학하지만, 필수 과목이 사라지면 이들이 인문계열 대신 사회적 지위나 향후 연봉 등을 고려해 의대, 약대, 수의대 등으로 몰릴 수 있다고 분석한다. 임 대표는 “파장이 중학교급까지 미치면,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이 장기적으로 의대 진학을 위해 일부러 내신에서 유리한 문과로 진학한 뒤 통합 수능으로 의대에 지원하는 새로운 ‘의대 루트’가 열릴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커트라인이 높은 수도권 주요 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방대 의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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