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5일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는 뜨거웠습니다.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북유럽 특유의 백야 현상 때문이 아니라 4년마다 돌아오는 세계수학자대회 하이라이트인 필즈상 시상식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노벨상보다 수상하기 어렵다는 명성과 발표 직전까지 수상자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는 신비감 때문에 필즈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수학계에서는 한국계 수학자가 필즈상을 탈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침을 꼴깍 삼키며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영광의 순간을 '수학동아'는 현장에서 목격했습니다.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핀란드로 직접 날아갔습니다. 이날 대수기하학과 조합론에 다리를 놓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뿐 아니라 통계물리학의 난제를 해결한 위고 뒤미닐-코팽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 및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 수의 비밀을 파헤친 마리나 비아조프스카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 교수와 제임스 메이나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영예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수상자가 호명될 때마다 수백 명의 수학자로 꽉 찬 관객석에서는 여느 시상식과 다름없이 ‘Fantastic!’, ‘Wow’ 등의 감탄사와 함께 박수가 쏟아졌어요. 그런데 필즈상 시상식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수상자를 발표한 뒤 수상자를 소개하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영상이 상영됩니다. 또한 그 뒤에 세계적인 수학자가 직접 연단에 서서 필즈상 수상자의 업적을 설명합니다.
시상식 현장에선 우크라이나 출신이자 두 번째 여성 필즈상 수상자인 비아조프스카 교수의 영상이 당시 많은 관객을 눈물짓게 했습니다. 미사일 폭격에 동료를 잃고 가족들이 조국을 탈출해야만 했던 전쟁의 참상이 담겼기 때문인데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수학 연구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영상에서 그는 “키이우(우크라이나 수도)는 지금 전쟁 속에 있을 것이다. 너무 무섭다. 하지만 키이우는 영원히 남아 있을 도시 중 하나이며 언젠가 키이우로 돌아가길 희망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필즈상 발표 이후 수상자들이 사뭇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수학동아'는 국제수학연맹(IMU)의 허가를 받아 특별히 시상식 전날 수상자 모두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때는 수상자들과 중간중간 농담도 섞으며 여유 있게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시상식 이후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워졌거든요.
쉬는 시간부터 수많은 사람이 수상자 앞에 계속 몰려들었습니다. 허 교수와도 시상식 당일에 겨우 짬을 내서 딱 10분만 유튜브로 실시간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이날 수상자들은 헬싱키에서 배로 20분 떨어져 있는 수오멘린나 섬에 모여 만찬을 즐겼고 그 다음날은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발표하는 기조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각자 다른 나라로 떠나 필즈상 수상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필즈상 수상자의 1년 후 근황은? 대중화파 VS 연구파
“제 삶이 많이 바뀌겠죠?”
2022년 4명의 수상자를 인터뷰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입니다. 필즈상 수상으로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대가들과 공동 연구할 기회가 늘 거란 기대감도 있었지만 여러 일로 연구에 집중을 못할 거라는 두려움도 커보였습니다.
2022 필즈상 수상자 발표 이후 사계절이 흘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현재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뒤미닐-코팽 교수는 근황을 묻는 '수학동아'에 “이전의 평범했던 삶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약 2회 이상의 인터뷰와 기존에 하지 않았던 과학 학술지 편집, 다양한 종류의 위원회에서 행정 업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각종 대중 행사가 끊이질 않는다는데요. 수학, 과학에 관심 있는 성인은 물론 소수의 정책가들 앞에서 강의하고 수많은 학생과 토론을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연구할 시간이 너무 없다”면서도 뒤미닐-코팽 교수는 “프랑스 사회에서 과학, 특히 수학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가능한 한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연구만큼이나 어렵고 중요한 문제이므로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조금씩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활동으로 인해 연구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연구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메이나드 교수 또한 대중 활동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실은 '수학동아'도 메이나드 교수의 바쁜 스케줄에 한몫했습니다. 2022년 11월 메이나드 교수의 논문을 읽고 감동한 뒤 고등학생 때 난제를 푼 한 미국 대학생에 대해 기사를 쓰면서 메이나드 교수의 의견을 듣기 위해 메일을 보냈거든요.
그는 바로 “이번 주에 매우 바빠서 빨라도 다음 주에나 답할 수 있다”고 메일을 답장했어요. 정말 2주가 지난 뒤에 정성스럽게 답변을 보내줬습니다.
최근에 그는 영국에서 수학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수학자 한나 프라이 옥스퍼드대 교수와 그의 연구 분야인 ‘소수’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대담에서 “자신과 1로만 나눠질 수 있는 소수는 정수론에서 ‘원자’로 비유된다”면서 소수의 매력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왜 소수 연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필즈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 수학에서 내 능력의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계속 나아가기를 희망한다”면서, 연구를 놓지 않고 계속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반면 비아조프스카 교수와 허준이 교수는 대중 앞에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비아조프스카 교수와 친분이 있는 최영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는 “비아조프스카 교수는 현재 연구 결과를 하루라도 빨리 내기 위해 한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아조프스카 교수는 2022년 '수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시간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논문을 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비아조프스카 교수는 2022년 우리나라 예비 수학자들과 온라인 대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14년 포스텍을 방문했던 인연으로 포스텍 수학과 대학생, 대학원생과의 대담에 응한 건데요. 여기서 그는 성공의 요인을 묻는 질문에 “수학을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답했습니다.
허준이 교수는 지난 7월 “연구 외에 들어오는 요청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연구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수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올여름은 우리나라 고등과학원에서 보내는데요. 그때도 공동연구자를 한국으로 초청해 계속 연구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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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동아 8월, 2022 필즈상 그 영광의 순간을 되돌아보며, 수학자의 도전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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