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일 토요일

삼등은 괜찮지만 삼류는 안 된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일등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누구나 다 일등이 될 수는 없으므로 삼등이나 그 이하가 되어도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삼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도대체 일등과 일류, 삼등과 삼류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또 ‘등(等)’과 ‘류(流)’에는 어떤 의미 차이가 있는 것일까.

‘등’은 순위나 등급 또는 경쟁을 나타내고, ‘류’는 위치나 부류의 질적 가치를 나타낸다. ‘등’에서 외양적 의미가 파악된다면, ‘류’에서는 내면적 의미가 파악된다. 그리고 ‘등’보다 ‘류’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긍정성이 있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다 일등은 될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이 다 일류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사람이 다 일류가 될 수는 없다. ‘삼류는 안 된다’고 한 것은 꼭 일류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일류가 되지 않아도 괜찮지만 삼류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류가 되어 질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삼류가 되어 질 낮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삼류란 질의 문제로 ‘질이 형편없다, 그럴 가치가 없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공산품일 경우 품질의 문제이고, 인간일 경우 인격과 인품의 문제이고, 국가일 경우 국격의 문제다.


인생에도 등수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일이나 경기에서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모두 다 일등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등수가 매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일등은 일등대로의 가치, 꼴찌는 꼴찌대로의 가치를 지닌다. 꼴찌라고 해서 무조건 무가치한 존재는 아니다.

삼류인생은 이기적이고 천박


박완서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 보면, 우연히 거리에서 마라톤 경기를 보고 비록 꼴찌이지만 최선을 다해 달리는 선수에게 진심 어린 갈채를 보낸 이야기가 나온다. 선생께서는 그 글에서 꼴찌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꼴찌가 있기 때문에 일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등수가 인생의 가치마저 매길 수는 없다. 그것은 단순한 순위일 뿐 가치가 아니다. 인위적 순위가 본질적 가치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일류와 삼류는 다르다. 그것은 바로 인간 삶의 질과 가치의 문제다. 어떤 경쟁 그룹에서 일등을 하지 못하는 것과 어떤 위치나 부류에서 삼류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순위에서는 삼등을 해도 괜찮지만, 질과 가치에서는 삼류, 즉 삼류인생, 삼류사회, 삼류국가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한번은 밤늦게 KTX를 타고 상경할 때였다. 열차가 동대구역에 도착하자 중년 남자 대여섯 명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올라와 의자를 돌려놓고 마주 앉더니 안주와 소주를 꺼내 술판을 벌였다. 주위 승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떠들썩하게 벌이는 술판을 보며 나는 그들을 삼류라고 생각했다.

일류와 삼류의 차이는 그리 큰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윤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도덕규범, 국민으로서의 헌법질서 등을 제대로 지킨다면 일류가 되는 게 아닐까.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에 의해 수술이 거부되는 것이나, 정쟁에 의해 국회를 폭력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 삼류의 한 형태다.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살았는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인생에 남는 것은 결국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권력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자신만 아는 이기적 삶을 살았거나 사회와 국가의 기저를 훼손하는 삶을 살았다면 결국 삼류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삼류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천박하다. 남을 이해할 줄 모르고 양보와 배려의 정신이 부족하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본능적 동물성이 더 드러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삼류로 지칭되는 삶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삶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강조해온 말이 있다.

“현생에 개나 돼지 같은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가치다. 성공한 삶을 살기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라.”

이뿐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책 많이 읽어라, 성실을 다해라’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가치있는 인생 살기 위해 노력해야


가치는 자신이 만든다. 인생이 자작이듯 인간의 가치 또한 자작이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라’고 한 것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성공한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든 있다. 크고 작거나, 많고 적거나, 초라하고 화려한 데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사회, 이 가정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요청해 오는 데 있다. 어떤 일을 하며 어디에서 살든 그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고 찾은 대로 실천해 나간다면 그게 바로 가치 있는 일류의 삶이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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