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개념이나 눈으로 볼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할 때 비유와 은유를 사용한다. ‘빨간색이 선명하고, 앙증맞게 작은 입술’이란 긴 표현보다는 ‘앵두 같은 입술’이라는 짧은 표현이 더 명확하게 와 닿는 것처럼 비유는 표현을 간결하게 만들면서도 머릿 속에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과학에서도 은유는 무수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은유가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과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왜곡될 수 있고,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과학기자를 거쳐,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또 한번 왜곡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문학적 비유처럼 과학적 비유는 일상언어와 그리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높은 정확성을 요구하는 과학에서는 잘못된 비유가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비유의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미국 버틀러대 영문학과 캐롤 리브스 교수도 ‘과학의 언어’라는 저서에서 “과학은 어렵지 않다. 단지 과학의 말과 글이 생소할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과학에서 쓰는 언어와 인문학에서 쓰는 언어, 일상에서 쓰는 언어간 차이점에 대해 대중이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과도한) 과학적 비유’로 인한 보도자료 때문에 해프닝이 일어났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9일 오전 “국내 연구진이 표적단백질을 확인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OOO 교수팀은 기존의 표적단백질 규명법과는 달리 세포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작살과 같은 갈고리로 표적단백질을 낚아내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였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되면 기자들의 관심은 ‘갈고리’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루에도 수 십 여 유사한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과학 성과를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은 ‘방법의 차별화’에서 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갈고리가 어떻게 표적단백질을 낚아내는지 알기 위해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을 꼼꼼히 읽었다. 그러나 뒷 부분에서는 갈고리가 왜 등장하는지 전혀 설명이 돼 있지 않았다.
“신약 후보물질에 광반응성 물질을 결합시킨 후 세포내에서 빛을 쪼임으로서 표적단백질과 직접 결합하도록 만들고, 정확히 결합한 생리활성 물질은 붉은색이 나타나도록 하여 선택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개발하였다.”
그럼 광반응성 물질이 갈고리란 말인가. 왜 빛을 쪼이면 직접 결합이 가능할까. 이제껏 생리활성 물질을 얘기하더니 신약 후보물질은 또 뭘까.
기자는 담당 연구자에게 전화를 걸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런데 연구자의 설명을 들으니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시쳇말로 ‘안드로메다’를 헤매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생리후보 물질(신약 후보물질)에 낚싯줄을 매달고 끝에 미끼를 달아 이걸 무는 물질을 찾아냈다. 그런데 생리후보 물질이 낚싯줄과 미끼를 달면 빽빽하게 차 있는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는 아예 세포를 분해해서 속을 풀어 놓은 뒤에 생리후보 물질에 달라붙는 물질을 찾아낸다.
우리는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낚싯줄을 없앴다. 생리후보 물질 자체는 원래 세포벽을 쉽게 뚫기 때문이다. 대신 빛을 받으면 주변 물질을 단단하게 결합시키는 광반응성 물질을 붙였다. 광반응성 물질이 갈고리 역할을 한다. 생리후보 물질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 단백질과 상호 작용할 때 빛을 쪼이면 그 단백질을 콱 붙들고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상호 작용하지 않는 단백질이 붙을 수 있는데, 이때는 초록색을 띤다. 정확히 생리활성물질과 결합된 것은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한 눈에 걸러낼 수 있다.”
보도자료나 교수의 설명이나 온통 ‘바닷 속’이다. 낚싯줄, 미끼, 갈고리, 작살…. 지나치게 많은 비유다. 낚싯줄이 진짜로 있는 것인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인지, 형태만 띠는 것인지 이해를 돕겠다고 가져다 붙인 수많은 비유들이 실제 연구성과를 감춰버린 것이다.
실제로 필자도 ‘미끼에 정신을 판 물고기’처럼 ‘낚싯줄’에 걸려들었다. 기존 연구에 사용하는 낚싯줄과 갈고리가 헷갈려 같은 개념으로 혼동했다. 언뜻 들어서는 기존 방법은 갈고리가 있는 낚싯줄을 사용하는 것이고, 지금은 이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광반응성 물질이 ‘갈고리’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연구자는 “빛을 받으면 주변 물질을 단단하게 결합시킨다는 점에서 ‘본드’라고 볼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교수는 “무슨 비유를 들든 상관없다”지만, 기자에게는 이런 비유가 자칫 오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교과부의 단순한(?) 보도자료 작성법이 문제를 키웠다. 내용을 지나치게 생략한 것이다. 보도자료에서 광반응성 물질에 대한 설명을 빼다 보니 광반응성 물질이 왜 갈고리가 됐고, 왜 본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게 해놨다.
비유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적절한 비유 하나만 있으면 제목 뽑을 때 무척 편하다. 그래서 비유는 기사 쓸 때 ‘참기 힘든 어려운 유혹’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사의 설명자료라고 할 수 있는 보도자료 만큼은 비유를 자제하고 명확하고 분명한 표현으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학자들이 어설픈 문학적 비유를 쓰면 ‘우매한’ 기자들만 ‘배고픈 물고기’처럼 낚여 오보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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