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일 토요일

한자에 눈 뜨면 개념 외울 필요가 없다


화제의 '한국한자어능력인증시험'

교과서 속 한자로 출제돼 일석이조, 독음만 묻는 기존 시험은 효과 미미
학년 오를수록 어려운 한자어 등장, 정확한 의미 파악이 학교 성적 좌우

"외주 생산업체를 바꾼 후 A 업체의 실적이 정상 괘도에 올라섰다."

이 문장에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 '괘도'는 '궤도'로 표기해야 한다. '괘도(掛圖)'는 '학습 지도용 걸개그림'을 뜻하고, '궤도(軌道)'는 '행성이나 위성 따위가 중력의 영향으로 다른 천체 주위를 돌면서 그리는 일정한 곡선', '일이 진행되는 정상적인 방향과 단계'를 뜻한다. 이처럼 두 단어는 전혀 다른 뜻을 지니고 있지만, 혼동하는 이는 의외로 많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채 소리나는 대로 쓰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인터넷상에서 오가는 청소년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후유증'을 '휴유증'으로, '상쇄시키다'를 '상세시키다'로 잘못 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치러진 제 11회 조선에듀케이션 한국한자어능력인증시험에 응시한 학생들이 문제를 풀고 있다.
한자교육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우리말을 정확히 쓰고 말하기 위해서라도 한자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학(57)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특히 학생들은 개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초등학교에서는 한글로 된 어휘의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외우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정확한 개념이 희미해질 수밖에요. '대각선(對角線)'의 뜻이 뭔지 설명하라고 하면 곧바로 답을 할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한자의 의미를 알면 따로 개념을 외울 필요가 없지요."

한자가 초등학생들의 성적을 좌우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어려운 한자어가 교과서에 등장하는데, 이때 뜻글자인 한자어의 의미를 얼마나 파악하는 지에 따라 학습 능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자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한자교육 콘텐츠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학생, 성인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한자능력검정시험에 응시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인정하는 공인급수를 취득하면 대학 수시 모집에서 가산점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는 국가공인 4급 이상 자격 소지자에 대해 일반전형과 수시전형에서 모두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외 영역에 반영해 가산점을 주고 있다. 서울여대도 14개 학과 2개 학부의 수시전형에서 국가공인 2급 이상 소지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한다. 이외 몇몇 대학도 전공과 전형에 따라 제한적으로 가산점을 주고 있다.

2012년 3월 현재 시행 중인 국가공인 한자능력검정시험은 모두 14종. 민간단체가 시험을 주관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인증하는 형태로 치러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시험이 한자의 훈(訓)·독(讀), 단어의 독음만을 묻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특화된 한자능력검정시험이 등장해 학생·학부모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에듀케이션이 주최하고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한국한자어능력인증시험'이 바로 그 주인공. 초·중·고 교과서에 수록된 한자를 바탕으로 문제가 출제된다. 시험 출제를 담당하고 있는 성균한자문화센터의 송병렬(53) 영남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는 "교과서에 수록된 용어 위주로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시험 준비를 하면서 한자도 배우고 교과서 내용도 다시 숙지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한자능력검정시험은 단순히 훈과 독음을 외워 단답형으로 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切(절)'이라는 한자를 예로 들어 볼게요. '끊어지다'와 '뛰어나다'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독음만을 묻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 한자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지요. 조선에듀케이션의 한국한자어능력인증시험은 이런 부분에서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조선에듀케이션 한국한자어능력인증시험은 총 7개 등급으로 나뉘며 1~4급은 국가공인 급수로, 5~7급은 민간자격 급수로 구분된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