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개발과 타살설은 엉터리… 스포츠카 몰던 중 사고로 숨져"
"피터 힉스는 좀 폐쇄적인 사람… 나이 들어선 논문 거의 쓰지 않아
스티븐 호킹은 세상 생각만큼 위대한 물리학자는 아니다"
- 김정욱 교수는 “시간과 공간은 빅뱅과 동시에 존재하게 됐고, 그전에는 시공이 없었다”고 말했다./최보식 기자
'신(神)의 입자'라는 힉스를 통해 우주의 비밀이 풀렸다고 보도했지만 그 자체가 암호(暗號)였을 것이다. 눈앞의 일상적 뉴스도 복잡한데 어떻게 광대한 우주를 범접하겠는가. 하지만 우주는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또한 여기서 물을 수밖에 없다.
김정욱(79) 고등과학원 명예교수를 만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소립자물리 및 우주론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137억년 전 우주가 만들어진 대폭발(빅뱅) 당시 모든 입자가 질량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빅뱅 당시 용광로와 같아 +전기와 -전기를 띤 입자들이 대칭을 이루며 균일하게 있었다. 이때 입자들에는 질량이 없었다. 증기와 같은 상태라고 상상하면 된다."
―그때 입자에 질량이 없었다는 것은 어떻게 입증됐나?
"빅뱅 순간의 입자를 재생해 실험해볼 수는 없다. 다만 그때 입자에는 질량이 없었다는 가설을 세운 뒤 계산해보니 지금의 우주 상태와 맞아떨어졌다. 빅뱅 직후 온도가 내려가면서 입자에 질량이 생겼던 것이다."
―왜 온도가 내려가면서 입자는 질량을 갖게 됐나?
"가령 온도가 낮아지면 수증기가 물(액체)이 되고 얼음(고체)이 되듯이 '위상(phase) 변화'가 일어난다. 빅뱅 직후 우주에도 이런 위상 변화가 일어나 입자들이 질량을 갖게 된 것이다."
―우주 생성에서의 이런 이치를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
"1964년 앙글레르 교수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우주를 설명하려면 빅뱅 직후 입자들의 위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논문을 냈고, 몇달 뒤 힉스 교수가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새로운 입자의 존재'를 제기했던 것이다. 그 가상의 입자가 소위 힉스 입자다."
"가령 우리가 많은 사람 속으로 걸어가면 부딪쳐서 느려진다. 마치 몸이 무거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비슷한 이치로 질량이 생겼다고 보면 된다. 빅뱅 직후 우주에 깔려 있는 힉스 속으로 입자가 지나가면서 질량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입자들이 질량을 갖게 된 시점도 밝혀졌나?
"물론이다(웃음). 계산으로 나온다. 빅뱅이 있고서 1/10¹²초(sec)에 그런 위상 변화가 일어났다. 눈 깜짝할 만한 사이보다 수만배 더 짧다고 해야 하나."
―힉스가 질량을 부여했다기보다 원래부터 입자에는 질량이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건가?
"그렇게 가정할 경우 지금의 우주 생성 과정을 설명해낼 수가 없다."
―입자에는 당연히 질량이 있어야 하는 게 우리 상식인데.
"광자(光子), 그래비톤(중력을 일으키는 입자), 글루온스(커크와 작용하는 입자)는 여전히 질량이 없다. 나머지 입자들은 질량이 없다가 힉스 입자에 의해 질량을 갖게 된 것이다."
―영국의 스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작년에 동료에게 '힉스가 없다는 데 100달러를 걸었다'고 했는데.
"그렇다."
―스티븐 호킹의 우주관이 틀렸다고 단정해도 되는가?
"호킹과는 여러 번 얘기를 해봤다. 호킹은 '블랙홀도 증발한다'는 논문으로 물리학에 기여했지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한 만큼 위대한 물리학자는 아니다.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고 그런 성취를 했다는 것이 위대한 것이다."
―힉스 입자를 예측한 피터 힉스 교수도 만난 적 있나?
"물론이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좀 폐쇄적인 사람이라고 할까. 젊어서(서른다섯 살) 힉스 존재의 가설을 발표한 뒤로는 크게 연구 활동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논문을 거의 쓰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학술발표회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고(故) 이휘소 박사가 1972년 힉스 교수가 제안한 가상의 입자에 '힉스 입자'라고 명명했다는데?
"한국 사람들이 유독 그런 걸 내세우는데, 이름을 붙였다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마 어떤 강연에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휘소 박사와는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내가 연구원 생활을 할 때 3년 같이 지냈다. "
―이휘소 박사는 핵물리학자로 유명했고, 박정희 정권 시절 핵무기 개발에 비밀리에 참여했다는 설도 있었는데.
"완전히 엉터리다. 이 박사는 나보다 한 살 아래로 나와 같은 소립자물리학자였다. 그 방면으로 아주 뛰어났다. 소립자물리학은 기초과학에 해당하고, 핵무기는 공학에 가까운 것이다."
―그의 죽음(1977년)도 핵 개발과 관련해 타살됐다는 설이 있었고, 그런 소설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쓴 작가를 상대로 부인이 소송까지 냈다. 이 박사는 스포츠카를 모는 걸 좋아했다. 콜로라도에 스포츠카를 몰고 가던 중 맞은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트럭과 부딪쳤다. 함께 탄 가족은 살아남고 운전석의 그만 숨졌다."
―다시 우주로 돌아가자. 힉스의 발견은 현대 우주물리학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질량의 기원을 알게 됐고, 소립자 세계에서 어떻게 위상 변화가 일어났고, 이런 소립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우주가 생겨났다는 '표준 모형 이론'( 1967년 스티븐 와인버그가 제시)이 입증됐다는 점에서 매우 뜻있다."
- 힉스 입자 모형도/노벨상 위원회 제공
"물질을 구성하는 12개(전자, 쿼크 등)와 힘을 전달하는 4개(광자, 글루온, W, Z), 그리고 힉스 입자다. 다른 입자들은 모두 발견됐지만 그동안 힉스 입자는 가설로 존재했다. 작년에 유럽물리입자연구소의 거대 강입자 가속기에서 힉스 입자가 드디어 검출됐다. 힉스의 발견으로 '표준 모형 이론'이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우주가 소립자 17개의 작용으로 이뤄졌다면 인간 또한 그러한가?
"인간은 17개중 두 종류의 쿼크와 전자, 글루온 등 4개만으로 이뤄져 있다. 그게 전부다. 인간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생물체, 지구 전체가 마찬가지다. "
―다른 소립자들은?
"초신성의 탄생, 은하계 충돌, 블랙홀 근처 그리고 우주선 속에 들어 있다."
―인간의 영혼 혹은 정신은?
"우주를 이루는 이 입자들에는 영혼을 이루는 물질이 없다. 그래서 물리학에서는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우리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된다고 보나?
"원래 우리를 구성했던 우주의 입자 상태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이제 힉스의 발견으로 우주 생성의 비밀은 거의 다 풀린 것인가?
"사실 '표준 모형 이론'으로는 우주의 5%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우주 공간에서 별과 은하가 차지하는 비율 정도다. 우주 전체의 70%는 '암흑 에너지', 25%는 '암흑 물질'이다. 말하자면 빈 공간이나 다름없는 이 95%를 규명해야 우주의 전모가 밝혀진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초대칭 이론', 그 위에 '초끈(super string) 이론' 이 있다. 하지만 이 두 이론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은 또 무엇인가?
"암흑 물질(dark matter)은 물질은 물질이나 '표준 모형'에 있는 그런 입자들이 아니다. 중력의 영향을 받아 은하계 구성에는 관여한다. 암흑 에너지는 물질의 성질을 전혀 갖지 않는다. 우주의 팽창을 좌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의 팽창은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 우주 팽창은 영원할 것이다. 약 10억년 전부터는 그 속도도 더 빨라졌다. "
―팽창이 멈추거나 터질 수도 있는가?
"과거에는 그런 추정이 나왔다. 지금은 아니다. 우주는 무한대로 영원히 팽창한다."
―무한대로 영원한 팽창이 가능한가?
"영원하다. 그 끝은 알 길 없다."
―우주가 계속 팽창하려면 무한대의 공간이 먼저 존재하지 않는가?
"당초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점에서 빅뱅(대폭발)으로 시작된 우주는 지금과 같이 무한대로 팽창해왔다. 우주 팽창이란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이다."
―빅뱅으로 우주 생성을 설명하지만, 빅뱅 전의 상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리학에서는 빅뱅 전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시간과 공간은 빅뱅과 동시에 존재하게 됐다. 빅뱅 전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그럼에도 빅뱅 전의 상황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리학에서는 이를 '진공'이라고 하는데, 매우 복잡한 개념이다. 무(無)의 불확정성 때문에 흔들려서 운동이 일어나고 여기서 유(有)가 나왔다고 이해하면 된다."
―혹시 우주가 여러 개 있을 수도 있나?
"저명한 물리학자에 의해 그런 가설이 제시됐고, 다른 우주들이 10���개나 된다는 계산을 해냈다. 나도 우리가 모르는 우주가 더 많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인터뷰 전후로 우리는 여러 차례 이메일로 문답을 주고받았다. 그의 답변은 늘 또 다른 의문을 낳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교수님이 평생 연구해본 결과 알게 된 우주의 정체는?"하고 물었다.
메일로 받은 그의 답변을 이러했다.
"빅뱅은 11차원의 우주로 시작하는데…. 온도가 내려가면서 11차원 중 7차원의 세계가 뭉쳐버려 도저히 관측이 안 되는 시공간이 되고, 우리에게는 4차원(3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으로 보이고… 7차원이 어떻게 뭉치느냐에 따라 입자들의 성질이 결정된다. 아마 이때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생성되지 않았을까? 온도가 더 내려가면서 우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표준 모형'의 시나리오대로 진화한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특히 빅뱅에 관한 질문의 답은 '초끈(super string) 이론'이 풀릴 때까지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다."
앞이 캄캄했다. 우주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인생을 웃음거리보다 좀 더 나은 수준으로 만드는 몇 안 되는 길이라고 했다지만, 물리학자와 우리 대중의 언어 회로(回路)는 이렇게 다른 것이다.
김정욱 명예교수
서울대 수석 졸업. 미국 인디애나대학 박사.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원. 존스 홉킨스대학 교수. 1997년 고등과학원에 초빙돼 6년간 원장으로 재직. 우주 생성의 ‘초대칭 이론’과 중성미자 연구 분야에서 업적. ‘통일장 이론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초대칭 입자가 있어야 한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조선일보
서울대 수석 졸업. 미국 인디애나대학 박사.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원. 존스 홉킨스대학 교수. 1997년 고등과학원에 초빙돼 6년간 원장으로 재직. 우주 생성의 ‘초대칭 이론’과 중성미자 연구 분야에서 업적. ‘통일장 이론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초대칭 입자가 있어야 한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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