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즐길 시간 없는데 어떻게 꿈과 끼를 만드나”

서울국제교육포럼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2번째 열리는 포럼에서는 국내외 교육 전문가들이 참석해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을 주제로 열띤 토론과 각자의 경험을 나누었다.

▲ “직업 준비 자유학기제 도입, 나이 맞게 특별활동 지원을”

“교과의 틀 넘어선 커리큘럼 교사 스스로 창조하게 도와야”

“직업교육, 이론과 실습 병행… 민간기업과 협업이 성공 열쇠”



경향신문
스튜어트 그라우어 박사(왼쪽)·마리 그리핀 교육관

미국 그라우어 학교 교장인 스튜어트 그라우어 박사는 ‘작은 학교’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가 작은 학교를 주장하는 이유는 작은 학급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큰 학급에서 줄지어 앉아 있으면 맨 뒤에 앉아 있는 아이는 표정이 좋지 않지만 소규모 학급에서는 교사와 아이가 눈을 맞추는 게 가능하다”며 “물리적으로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라우어 박사는 작은 학교의 장점으로 ‘사회에 있는 어른들의 지혜를 학교로 가져오는 것’ ‘국가의 의무적 교과과정이 아닌 지역공동체와 개인의 관심사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 ‘연령을 떠나 아이들이 섞이게 됐을 때 서로 더 많이 가르쳐주는 것’을 꼽았다. 작은 학교가 강조하는 예술, 야외학습, 토론 등을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지적이 나오자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것이나 불행 또는 우울함의 비용과 견줘보면 답을 알 수 있다”며 “교육을 하나의 기준과 요건으로 바꾸지 말자”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입시 중심의 한국 교육에 대해서는 “성인들도 6시간 이상 앉아만 있다면 사망에 이를 만큼 힘들 것”이라며 “좀 더 아이들이 나가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연계해야 하고, 이런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학교의 변화를 야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꿈과 끼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데 나가서 즐길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끼를 만들고 잠을 못 자면 어떻게 꿈을 꾸겠느냐”고 했다.

객석의 한 현직 교사는 “소규모 학교와 대형 학교에서 모두 근무해봤지만 소규모 학교에서 일할 땐 교사도 부족하고 업무 분담이 안돼 오히려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나 교재를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라우어 박사는 “빡빡한 교과과정과 평가, 스트레스는 미국, 스페인 등 다른 나라의 학교도 마찬가지”라면서 “학교가 행복을 추구한다면 학생들의 성적 대신 정신적·육체적 건강이나 팀워크 등으로 학교가 평가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답을 내놓았다.

마리 그리핀 아일랜드 더블린-던 라오그헤러 교육청 교육관은 아일랜드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환학년제에 비춰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자유학기제에 대해 조언했다. 전환학년제는 학생들이 시간을 가지고 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사회를 이해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 도입됐다. 고등학교 1학년 과정으로 인정되며 각 학교가 학생의 필요, 학부모의 시각, 교사진·지역공동체의 의견을 반영해 주체적으로 교과과정을 결정한다. 기존의 줄세우기 시험은 보지 않는다.

그는 “자유학기제는 전환학년제보다 더 이른 나이(중학교)에 도입되기 때문에 전환학년제와는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한다”며 “학생들이 중등교육을 받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직업 준비를 하기에 다소 이른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자유학기제 기간 동안 이수하는 과목들의 선택도 전환학년제와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전환학년제에서는 사진·미술, 원예·농원, 기업경영, 역사·지리, 법학, 과학 등을 특화과정으로 두고 직업경험, 야외활동, 지역사회 봉사, 소규모 창업, 체험학습, 청소년 주도 사회혁신 등을 특별활동으로 하고 있다. 전환학년제 성공에는 교장과 코디네이션 교사가 주축이 됐다.

그리핀 교육관은 전환학년제와 자유학기제의 도전 과제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들이 참여하고 창의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같은 도전과제”라며 “학생들과 함께 계획하면서도 교사들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다무라 마나부 조사관(왼쪽)·에크하르트 라인 교육관

다무라 마나부 일본 국립교육정책연구소 초중등교육과정 조사관은 일본의 ‘총합적 학습’을 소개하면서 “모든 것은 교사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총합적 학습이란 교과의 틀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각 영역을 넘나드는 주제를 설정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총합적 학습은 실제 사회에서 활용가능한 능력, 타인 및 사회와의 관계, 자기자신에 관한 능력을 육성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학습목표, 학습과제, 학습대상, 학습활동 등 커리큘럼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교사의 자존감도 높아진다.

총합적 학습이 처음부터 잘 운용된 것은 아니었다. 다무라 조사관은 “정부가 협동적이고 탐구적으로 커리큘럼을 만든다는 규정을 명확히 했고, 교사들이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커리큘럼을 창조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 코디네이터 인재 육성 연수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수업혁신을 위해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학습지도요령도 배포했다. 그는 “학교 사이에 미묘한 온도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모든 일본의 학교에서 총합적 학습이 성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질 높은 수업이 이뤄지기 위해 좋은 모범사례를 일본 전역에 보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에크하르트 라인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교육청 교육관은 독일의 직업교육 시스템을 소개했다. 독일의 직업교육은 개인사업체에서 이뤄지는 직업실용교육이 70%, 국가기관인 직업학교에서 이뤄지는 직업이론교육이 30%로 이원화돼 있다. 이론과 실습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다. 라인 교육관은 독일 직업교육의 성공요인으로 ‘민간기업과의 협업’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 측에서만 보면 독일의 시스템을 정착시키기에 한계점이 있다”며 “민간기업의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기술교육의 일부를 담당하는 등 민간기업이 (직업교육의) 이해관계자가 됐을 때 기존의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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