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과학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포퍼 vs 쿤






과학과 기술의 차이?



과학 - 혁명성/불편함



기술 - 편리성, 과학+자본(권력)





과학 자체는 중립적이며 혁명성을 띠지만, 그런 과학이 자본과 결합하게 되면 기술이 된다. 실질적으로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은 기술이나 과학이 아니라 자본이다.


모든 지식은 어떤 의문에 대응해서 존재하는 법이다. 만약 어떤 의문도 없다면, 어떤 과학적 지식도 존재할 수가 없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진행되지 않는다.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구성된 것이다.
-바슐라르(G. Bachelard), 『과학정신의 형성(La formation de l'esprit scientifique)』



바슐라르는 인간의 과학이 인간의 상상력(땅, 물, 불, 바람에 대한)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 졌다고 생각했다.

만약 파스퇴르가 흑사병의 세균을 처음 상상하고 현미경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현미경에서 그 과학자의 상상력을 볼 수 있고, 세균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상상력이 먼저 였고 그 상상력이 만들어낸 현미경이 세균보다 먼저 있었다고 말 할 수 있게 된다. 현미경 또한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바슐라르는 인간적인 과학적 상상력을 중요시 했다.

바슐라르가 나중에 문학을 다루었던 이유는 인간을 해명하고 싶어서였다.

인간의 과학적 활동도 상상력이고 모든것은 구성된 것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질베르 뒤랑[상상력], 문학동네 - 가장 상상력에 대해 잘 나와 있는 책이다.



과학이 가진 착각중의 하나 -> 과학 = 객관성

과학은 과학사를 가진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도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특정 시기의 과학이 우리에게 객관적 사실이라고 보여주는 것도 역시 시대가 흐르면 변할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은 계속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상상력은 계속 변해 왔다.

과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과학의 내적논리), 스토리가 무엇인지를 연구했던 사람이 포퍼와 쿤이다.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짐. (좌파세력에 대한 공격을 주 내용으로 함)

과학은 반증가능성이 있어야 함.

모든 백조는 희다 - 호주의 검은 백조를 가져 오면 반증가능함

모든 용은 날개가 네개다 - 반증불가능한 이런것은 과학이 아니다.

당시 20세기 초 비엔나의 분위기는 좌파 혁명의 분위기가 고조 되어 있는데, 포퍼가 그들의 이론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하며 왕따(?)를 당한다.

점성학 - 반증안됨

천문학 - 반증됨.



중국 [춘추]에 화성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으면 그곳에선 반란이 일어난다. - 그런데 반드시 화성이 특정장소에 있을때 역사적으로 반란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반란을 일으키는 세력도 화성이 그곳에 떠야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에 대해 과학은 연속적으로 발전한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 과학적인 지식의 성장에 관하여 말할 때,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관찰 결과의 축적이 아니라 과학 이론들을 끊임없이 파기하는 한편 더 낫거나 만족스러운 이론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이것은 새로운 실험과 관찰에서 과학적 지식의 성장이 지닌 가장 중요한 측면을 보는 사람들까지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절차이다. 왜냐하면 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우리는 이론을 시험하고 폐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며, 이런 시도들은 더 나아가 이론과 그 이론에 대한 비판이 가져다주는 자극이나 인도가 없었다면 어느 누구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실험과 관찰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Conjectures and Refutations: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 포퍼(Karl Popper, 1902-1994)는 과학이나 사회의 발전에는 인간의 비판적 이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확신했던 철학자였다. 이런 그의 통찰은 과학사에 대한 그의 성찰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자신이 이론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경험을 잣대로 비판하고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그의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가 형성되었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이성의 합리적인 추론만을 맹신하지 않고 논리적 추론을 항상 경험에 비추어 점검하려는 포퍼의 의지를 반영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

◈ 패러다임은 방법들의 원천이요, 문제 영역(problem field)이며, 어느 주어진 시대의 어느 성숙한 과학자 사회에 의해 수용된 문제풀이의 표본이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승인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과학을 다시 정의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옛날 문제들은 더러 다른 과학 분야로 이관되거나 또는 완전히 ‘비과학적’(unscientific)인 것이라고 선언되기도 한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또는 사소해 보였던 여러 문제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과 더불어 유의미한 과학적 성취의 원형(原型) 바로 그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들이 바뀜에 따라서 단순한 형이상학적 추론, 용어 놀음, 또는 수학적 조작으로부터 참된 과학적 해답을 구별짓는 기준도 바뀌게 되는 일이 흔하다. 과학혁명으로부터 출현하는 정상 과학적 전통은 앞서 간 것과는 양립되지 않을(incompatible)뿐만 아니라, 통약불가능한(incommensurable)이다.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연소Conbertion

물질에 산소가 결합되는 것.

연소라는 상황에 대해 초기에는 태우면 연기가 나고 무엇인가가 빠져 나갔기 때문에 가벼워 질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험결과 오히려 질량이 느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산소가 결합되어 질량이 늘어난다는 것이 바뀜으로서 패러다임이 변하게 되었다.



토마스 쿤과 포퍼의 차이점은 nomal science(정상과학)에 대해 토마스 쿤은 과학들이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포퍼는 단계를 밟으며 진화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 어느 고등학교 실험실에서 10g의 마그네슘을 10g의 산소로 연소시키는 실험을 했다고 하자. 그러자 놀랍게도 연소 결과물인 산화마그네슘의 질량이 25g으로 측정되었다. 실험을 하던 학생이 ‘질량보존의 법칙’의 반례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선생님은 어떻게 대응할까? 아마 선생님은 학생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부주의로 5g의 산소가 더 공급된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실험을 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 경우 선생님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었던, 혹은 기존 패러다임에 지배를 받고 있었던 셈이다. 방금 우리는 어느 실험실에서 포퍼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반증가능성, 추측, 논박, 비판적 이성 등의 개념들이 손쉽게 무력해지는 장면 하나를 목격한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고등학교나 대학에서의 과학 실험은 새로운 이론의 발견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습득하기 위한 과정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정해진 패러다임에 따라 이루어지는 과학적 활동을 쿤(Thomas Kuhn, 1922-1996)은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부른다.
현대물리학은 각각 상이한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 상이한 정상과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정상과학들 사이에서 패러다임의 단절, 혹은 과학혁명이 발생했던 것이다.



토마스 쿤에 의하면 과학은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단절이라고 부른다.
http://blog.daum.net/faylasuf/849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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