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8일 화요일

큰수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우리나라의 금년 예산은 대략 240조원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억’이나 ‘조’라는 단위를 듣게 되는데, 여러분이 알고 있는 가장 큰 수는 얼마인가?

현대에도 아프리카나 브라질의 어느 원주민들은 ‘하나’ ‘둘’ ‘많다’와 같은 정도의 수만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큰 수가 필요하게 되고, 큰 수를 나타내는 기호와 이름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한 기호와 이름에 대한 착상이 재미있고 어떤 시사점을 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호숫가에 많이 있는 올챙이로 ‘십만’을 나타내고, (너무 많아서) 깜짝 놀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백만’이라는 수를 나타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큰 수의 이름을 살펴보자. 수를 나타내는 순수 우리말에는 열(십), 온(백), 즈믄(천), 드먼(만), 골(경), 잘(정) 등이 있다. 1만 가지 지류를 가졌다는 두만강은 ‘드먼’에서 변하여 두만강이 된 것이며, “이 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고쳐 죽어”와 같은 시조에 나오는 ‘골’은 1 다음에 0이 16개 붙은 수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를 나타내는 많은 순수 우리말은 한자말에 밀려 없어지거나 쓰지 않게 되었다. 큰 수를 나타내는 한자말은 다음과 같다.

만(萬), 억(億), 조(兆), 경(京), 해(垓), 자(梯), 양(穰), 구(溝), 간(澗), 정(正), 재(載), 극(極), 항하사(恒河沙), 아승기(阿僧祇), 나유타(那由他), 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대수(無量大數)

이 이름들은 0이 4개씩 붙을 때마다 생긴 이름으로 무량대수는 1 다음에 0이 68개 붙은 수이다. 이 중 ‘조’까지의 수는 중국의 후한 시대에 있었는데, 당나라 때 불교의 영향으로 이렇게 큰 수의 이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항하사’는 인도의 갠지스강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를 의미한다. ‘불가사의’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의미이며, ‘무량대수’는 ‘무량수’라고도 하는데, 아미타불과 그 땅의 백성의 수명이 한량이 없음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은 글자 수가 많은 ‘항하사’부터는 0이 4개가 아닌 8개가 붙을 때의 이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량대수는 0이 88개 붙은 수가 된다.

인간이 100년을 산다 해도 그것을 초로 나타내면 30억초 정도에 불과하고, 우주의 나이인 150억년도 초로 나타내면 50경초에 불과하니, 불가사의나 무량대수가 얼마나 큰 수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큰 수는 사용되는 곳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아서 이보다 더 큰 수를 만들 필요도 없게 된다.
그런데도 인간은 필요하지도 않은 수에 관심을 가지곤 한다. 그래서 이보다 더 큰 수를 만들어 낸 사람이 있으니, 그는 미국의 수학자 케스너(Kasner)의 9살 난 어린 조카 밀톤 시로타이다. 1938년에 케스너와 조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구골(googol)과 구골 플렉스라는 이름을 만들어 냈다. 구골은 1 다음에 0이 100개가 붙은 수이며 구골 플렉스는 1 다음에 0이 구골개 더 붙은 수이다. 유명한 검색 사이트인 구글은 구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다가 잘못 써서 된 이름이라고 하니, 구골이라는 이름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수 이름이 된 모양이다.

수학적으로 재능이 있는 어린이는 어릴 적부터 일찍 큰 수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여러분도 큰 수의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경향신문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