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9일 화요일

"괴테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피아노를 부쉈죠"

천재의 사전적 정의는 '선천적으로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여기에 '인류사회를 윤택하게 만들고'라는 표현을 추가했다. 타고난 것뿐 아니라 그 재능을 얼마나 꽃피웠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천재 연구가가 되셨습니까.

"평범한 기자로 지내던 2005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획 기사를 쓰러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습니다. 그가 살던 집을 찾아갔어요. 모차르트의 손이 닿은 집기, 책상 등을 보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먹고 자는 건 우리와 다를 게 없는데, 어쩌다 천재 작곡가가 되셨습니까'라고 묻고 싶었죠. 귀국해서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비를 털어 다시 빈으로 향했고, 모차르트의 불우한 말년을 천천히 훑었습니다. 하나씩 알아가는 쾌감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10년은 궁핍한 환경이 창작의 연료가 됐더군요. 그때부터 천재 연구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장소에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누군가 자주 찾은 곳이라면 분명 의미 있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자주 간 공원을 가서 '이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곱씹는 것과 같죠. 이를테면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1900년 런던 유학 때 묵은 램버스구(區) 클랩햄의 '더 체이스' 거리 81번지 건물입니다. 들어가 보니 창 밖으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소세키도 그 창문으로 당시 런던 거리를 봤을 겁니다. 영어도 못하던 그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소세키 작품 속에서 거의 매번 등장하는 고독하고 소통이 불편한 인물들은 아마 그 집에서 만들어졌겠지요."

―그렇게 좇은 천재들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몰입과 집중력이 탁월했습니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면 종이에 불이 붙잖아요. 똑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외로워질 수밖에 없었어요. 겉으로는 활동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고독의 싸움이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천재인가요?
천재만 비범한 게 아니다. 부모들도 그랬다. 다방면에 흥미를 보이는 아이를 절대 나무라지 않았다. 같이 참여하고 질문을 던졌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를 쓴 괴테는 어린 시절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의 원리가 궁금해지자 바로 분해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함께 피아노를 부쉈다. "그 나름대로 고가였을 텐데, 보통 아버지였으면 아이를 바로 꾸짖었겠죠?"

―천재들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고요?

"모두 훌륭한 선생을 만났다는 점입니다. 저는 교육학 책을 한 장도 읽지 않은 사람이지만, 연구를 하며 지극히 교육학자스러운 말을 하게 됐습니다. 저마다 다른 능력을 교육이 개발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천재는 모두 다른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발현되는 시간도 제각각이었죠. 그들을 이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학창 시절 지진아 취급을 받았지만, 한 미술 교사의 칭찬으로 인정을 받자 학습 태도가 나아졌다고 합니다."

―좋은 교육만 받는다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오랜 세월 기울이는 노력은 기본입니다. 키워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도 시들지요. 재능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것도 중요해요. 백남준은 존 케이지와 요제프 보이스, 오노 요코를 만나 비디오 아티스트로 성장했습니다. 교육에 차별을 두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맞지만, 그렇다고 평등만 추구했다면 인류는 괴테와 구로사와 아키라를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사고 폐지 논란이 떠오르네요.

"맥락이 그렇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천재가 절대 나오지 않는 곳이 어딘 줄 아십니까? 공산주의, 이슬람 국가입니다. 모두가 평등을 추구하는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뛰어난 사람이 숨을 쉬지 못합니다. 왜 인재들이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으로 갈까요. 그 사회가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영재라고 착각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영재 판별법이 따로 있습니까?

"어려운 질문입니다. 천재는 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점은, 부모는 자신만의 관점이나 선입견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짓밟지 말아야 해요. 괴테의 아버지처럼 같이 궁금해해야 합니다. 또, 아이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가 상담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아이를 영재라고 오판하면서 비극이 일어납니다. 천재는 전체의 1% 미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99%의 범재(凡材)들은 어찌해야 할까요.

"제가 하는 천재 연구는 결국 평범한 이들을 위한 겁니다. 천재들을 '재능충(蟲)'이라고 비꼬며 자신은 평범하니까 안 될 거라고 단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질문을 들으면,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뛰어난 인 물을 한 사람만 선정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노력하는 습관을 10분의 1만이라도 따라 배우라고요. 그러면 성장해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아산 정주영과 호암 이병철이 어떻게 도전하고 노력했는지 공부하고 배워야 합니다. 저 역시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15년을 투자하자 '천재 연구가'라는 근사한 이름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조선일보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