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3일 토요일

면역계가 우리 몸을 낯설게 느낄 때 일어나는 일들


자아’를 ‘비자아’와 구별해 인식하는 것이 아마도 면역학의 기초일 것이다.
- 맥팔레인 버닛

    
아토피, 천식, 비염.

이 질환들의 공통점을 찾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금방 ‘알레르기(알러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환의 공통점은?

류머티스 관절염, 크론병, 제1형(소아) 당뇨병, 갑상샘저하증.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신체 부위의 질병들이라 고개를 갸웃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자가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병들이다.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 모두 면역계의 이상으로 인한 질병이지만 작동 양식은 다르다. 즉 알레르기는 별 것도 아닌 외부 물질에 과민하게 반응해 신체에까지 악영향을 미친 결과이지만(‘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운 격’이라는 속담에 해당), 자가면역질환은 면역계가 내 몸의 물질을 외부 물질로 인식해 공격한 결과 신체가 손상을 입는 현상이다(‘자중지란(自中之亂)’이란 사자성어에 해당).

자가면역질환이 생소한 독자들도 많겠지만 이 질환은 대체로 알레르기보다 증세가 더 심각하고 사실상 완치가 되지 않는 만성질병이다. 미국의 경우 여성 사망원인 10위 안에 들어간다. 알레르기도 근본적인 치료제는 없지만 어쨌든 알레르기 유발물질(항원)과 접촉하지 않으면 되지만(물론 쉽지는 않다) 자가면역질환은 내 몸이 항원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면역계가 오작동을 해 공격하는 신체 부위에 따라 다양한 질병으로 나타나는데 현재 자가면역질환의 목록에 오른 질병은 80가지가 넘는다.

게다가 자가면역질환은 알레르기와 마찬가지로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400만 명으로 추정돼 전체 인구의 7%에 이른다. 이런 추세는 범세계적이서 홍콩의 경우 염증성장질환(자가면역질환인 크론병이 포함돼 있다) 환자수가 수십 년 사이 30배가 됐다. 우리나라 통계는 찾지 못했지만 이런 추세의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필자 주변을 봐도 갑상샘저하증(가장 흔한 하시모토갑상샘염이 자가면역질환이다)이나 갑상샘항진증(역시 가장 흔한 그레이브스씨병이 자가면역질환이다)인 사람이 여럿이다.

자가면역(autoimmunity)이란 용어는 1957년 5월 25일자 의학 학술지 ‘랜싯’에 처음 등장했다. 올해는 자가면역질환이 의학계에 데뷔한지 60년이 되는 해다. 자가면역 60주년을 맞아 지난 2014년 출간된, 자가면역의 역사를 다룬 ‘Intolerant Bodies(불관용의 몸)’의 내용을 중심으로 자가면역질환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지난 2014년 자가면역질환의 역사를 다룬 책 ‘불관용의 몸’이 출간됐다. 표지에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는 환자의 손이 보인다. - amazon.com 제공
지난 2014년 자가면역질환의 역사를 다룬 책 ‘불관용의 몸’이 출간됐다. 표지에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는 환자의 손이 보인다. - amazon.com 제공
● 자가면역 용어 데뷔 60주년

자가면역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고 병도 수십 가지나 되지만 불과 60년 전에야 의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용어가 쓰이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병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았기 때문이다. 즉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낭창(루푸스) 같은 과도한 염증을 증상으로 하는 질환은 당연히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된 결과라고 가정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병원체를 찾는 데만 집중했고 항생제 투여 같은 효과 없는 치료에 매달렸다.

다음으로 면역계에 대한 굳은 믿음이 걸림돌이었다. 20세기 들어 이런 질환을 앓는 환자의 혈청에서 인체의 분자에 대한 항체가 존재한다는 발견이 간헐적으로 보고됐다. 그럼에도 주류 의학계에서 무시됐는데 면역계가 자신이 속한 몸을 공격한다는 발상은 말이 안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0년대 들어 이런 예가 여럿 보고되면서 면역학자들은 서서히 현실을 받아들이게 됐고(그럼에도 알레르기의 일종이라고 얼버무렸다) 1951년에야 ‘자가면역(autoimmune)’이라는 형용사적 표현이 문헌에 처음 등장했다.

자가면역질환을 확립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호주의 의사 맥팔레인 버닛이다. 버닛은 면역관용의 메커니즘인 클론선택이론을 제안해 196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면역관용이란 우리 면역계가 자기, 즉 우리 몸을 공격하지 않는 현상이다. 따라서 자가면역질환은 우리 몸에 대한 면역관용을 잃어 발생한 질환이다. 자가면역질환의 역사를 다룬 책의 제목이 ‘불관용의 몸’인 이유다.

면역관용 현상을 오랫동안 고민하던 버닛은 어느 날 클론선택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즉 개체 발생 과정에서 유전자 재조합으로 각각 고유한 항체를 만들 수 있는 수백 만 가지 면역세포가 만들어지는데 우리 몸의 물질과 결합할 수 있는 세포(클론)는 소멸되거나 활성을 잃게 된다. 따라서 남아 있는 면역세포들은 우리 몸에 대해 관용을 지니게 된다는 설명이다.

흥미롭게도 버닛이 이런 이론을 내놓을 때 실험실의 연구원들은 몇몇 만성염증 환자의 혈청에서 인체조직을 항원으로 하는 항체를 발견했고 버닛은 면역관용에서 면역불관용으로 관심을 돌려 자가면역질환의 개념을 확립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 면역계는 자기 조직에 대해 관용을 버리게 되는 것일까.

호주의 바이러스 학자 맥팔레인 버닛은 1950년대 면역관용이론을 제안해 196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버닛은 면역관용의 실패의 결과인 자가면역질환 분야도 개척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호주의 바이러스 학자 맥팔레인 버닛은 1950년대 면역관용이론을 제안해 196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버닛은 면역관용의 실패의 결과인 자가면역질환 분야도 개척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 지카바이러스와 길랭-바레증후군

실망스럽게도 이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원인이 매우 다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알레르기도 그렇지만 이럴 때 흔히 써먹는 ‘유전과 환경의 복합요인’이라는 표현에 해당한다. 아무튼 자가면역질환이 꾸준히 늘고 있고 이는 환경요인의 비중이 꽤 큼을 시사한다. 즉 음식, 감염, 흡연 등 생활방식이 발병률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하나 특기할 사실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발병률이 세 배 정도 더 높다.

자가면역이 유발되는 주요 메커니즘의 하나가 분자구조의 유사성(molecular mimicry)에서 비롯된 면역계의 착각이다. 즉 외부 물질(음식이나 병원체)을 항원으로 하는 항체가 형성될 때 불운하게도 이 항원의 구조가 우리 몸의 물질과 비슷할 경우 이 항체를 만드는 림프구가 우리 몸의 물질을 항원으로 인식해 계속 항체를 만들어내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지난 2015년 브라질을 강타해 소두증 공포를 불러일으킨 지카바이러스의 경우 임신부가 아니면 몸살을 앓고 지나가는 수준이라 별로 걱정할 게 없다고 하지만(이런 증상을 지카열이라고 부른다)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길랭-바레증후군이라는 신경계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길랭-바레증후군은 면역계가 신경계(뉴런의 축삭을 둘러싸고 있는 수초)를 공격해 염증과 마비가 일어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심할 경우 호흡근육이 마비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즉 지카바이러스를 항원으로 하는 항체가 수초를 공격했다는 말이다.


● 스테로이드 약물 치료의 효시

그렇다면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하는 걸까(증상의 정도와 병의 진행속도에 개인차가 크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비록 완치할 수 있는 약물은 없지만(물론 치료를 통해 증상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은 많이 나와 있다. 즉 비스테로이드계 소염진통제에서부터 스테로이드제제, 면역억제제 등 다양한 치료법을 병행하고 있다. 

한편 증세가 나타났을 때는 이미 해당 조직이 많이 파괴된 경우도 있는데 하시모토갑상샘염(갑상샘저하증)이나 제1형 당뇨병(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됨)이 그런 병들다. 이 경우 감상샘호르몬이나 인슐린호르몬을 평생 투여해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흥미롭게도 각종 염증질환의 ‘특효약’인 스테로이드제제의 발견이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1948년 미국 메이요클리닉의 류머티즘전문의 필립 헨치에게 ‘진상’ 환자가 배정된다. 극심한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던 이 젊은 여성은 치료가 효과가 없음에도 병실을 떠나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쳐달라고 떼를 썼다.

고민에 빠진 헨치는 마침 같은 병원의 생화학자 에드워드 켄들이 부신에서 화합물E라는 물질을 분리했다는 얘길 듣고 이를 써보기로 한다. 힘들게 추출한 물질이었기 때문에 켄들은 마지못해 미량 나눠줬고 헨치는 이를 환자에게 투여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이 여성은 48시간이 지나자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헨치에게 같이 춤을 추자고 농담을 던졌다.

화합물E의 실체는 코티손(cortisone)으로 이 무모한 임상 이후 기적의 염증치료제로 널리 쓰이게 된다. 이처럼 황당한 생체실험을 한 헨치와 망설이다 시료를 건네 준 켄들은 이 업적으로 195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스테로이드 약물은 효과에 상응하는 엄청난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기 때문에 오늘날 의사들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주의해서 쓰고 있다.

자가면역질환의 증상이 심각할 경우 스테로이드제제와 면역억제제를 번갈아 쓰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치료제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새로운 치료제를 찾으려는 노력이 수십 년 째 진행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는 상태다.


● 신경에 전기충격 줘 면역계 진정시켜

학술지 ‘네이처’ 5월 4일자에는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전혀 새로운 접근법을 소개하는 심층기사가 실렸다. 신경에 전기쇼크를 줘 이에 연결돼 있는 면역계의 활동성을 낮춰 염증반응을 줄여 증상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미국 페인스타인의학연구소 케빈 트레이시 박사가 개발했다.

1998년 트레이시 박사는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염증반응 촉진 물질인 종양괴사인자알파(TNF-α)의 작용을 억제하는 CNI-1493이라는 약물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 약물을 쥐의 뇌에 넣어 뇌졸중이 일어났을 때 항염증 효과를 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몸 전체에서 TNF-α의 수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관찰했다. 추가 연구를 통해 이 약물의 신호가 미주신경을 통해 몸 전체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주신경은 뇌와 몸 곳곳을 연결하는 신경계로 심장박동과 호흡, 장운동 등 불수의(의지와 무관) 기능을 담당한다.

트레이시 박사는 약물이 아니라 미세한 전류를 일으키는 장치를 미주신경에 부착해 자극을 주면 염증반응이 억제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트레이스 박사는 2011년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 18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시작했는데 12명에서 상당한 증상개선효과가 나타났다. 크론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진의 또 다른 임상에서도 7명 가운데 5명에서 증상이 호전됐다. 아직은 임상규모가 미미하지만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쇄골 아래 미세한 전기쇼크를 일으키는 작은 장치를 넣어 미주신경을 자극해 면역계의 염증반응을 억제해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크론병 같은 자가면역질환 증상을 완화하는 소규모 임상이 성공을 거뒀다. 전기쇼크로 자극된 미주신경의 신호가 비장으로 전달돼 면역세포(대식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도식화했다. - 네이처 제공
쇄골 아래 미세한 전기쇼크를 일으키는 작은 장치를 넣어 미주신경을 자극해 면역계의 염증반응을 억제해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크론병 같은 자가면역질환 증상을 완화하는 소규모 임상이 성공을 거뒀다. 전기쇼크로 자극된 미주신경의 신호가 비장으로 전달돼 면역세포(대식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도식화했다. - 네이처 제공
● 기능의학적 접근도 활발

아무튼 아직까지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는 상태에서 생활습관을 개선해 증상을 완화하고 더 나아가 치유에 이르고자 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미국 마운트시나이대 예방의학부 수잔 블룸 교수는 오랫동안 만성피로에 시달렸고 체중조절에 애를 먹었는데 어느 날 검진결과 자신이 하시모토감상샘염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별 거 아니니 걱정 말고 갑상샘호르몬약을 복용하면 된다”는 주치의의 말에 반발심을 느낀 블룸은 그 뒤 자가면역질환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발견한다.

블룸은 일시적인 증상 완화에 그치는 부작용이 많은 약물치료로는 희망이 없다고 보고 환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기능의학에 주목한다. 즉 식생활 등 생활습관을 바꿔 몸의 자연치유력(이 경우 면역계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3년 블룸은 10년간의 치료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최근 ‘면역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왔다).

이 책에서 블룸은 식단조절과 금연,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 생활습관을 개선하면 자가면역질환 증상이 상당히 개선될 수 있음을 여러 임상사례를 곁들여 보여주고 있다. 사실 많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대사질환에 대한 처방과 겹치는 면이 많은데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책을 보면 자가면역질환의 전조증상으로 만성피로, 두통, 메스꺼움 등을 들고 있는데 현대인들이라면 다들 겪고 있는 것들이다. 어쩌면 우리 몸 안에서 면역계가 우리 자신을 조금씩 허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된다. 앞으로 더욱 바른 생활을 해서 면역계가 몸을 배신할 마음을 먹지 않게 해야겠다.
동아사이언스

수백 년된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 요즘 바이올린보다 나을 거 없다?

위키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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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명품 바이올린의 소리는 현대 악기와 정말 다를까. 17-18세기 이탈리아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현대 악기와 달리 전 음역의 소리가 균형을 이루며, 음량이 크고 음색이 예리해 소리가 잘 퍼져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세계적인 명기(名器)로 꼽힌다. 그런데 최근, 연주자와 청중 모두 오래 된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현대의 새 바이올린 소리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로디아 프리츠 프랑스 피에르마리퀴리대(파리 제6대) 장르롱달랑베르연구소 교수팀은 스트라디바리우스 3대와 새 바이올린 3대를 대상으로 한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8일자에 발표했다. 프리츠 교수는 “대부분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새 바이올린의 소리를 구분하지 못했고, 새 바이올린의 소리가 더 풍부하고 듣기 좋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는 현악기가 300~400년 후 진가를 발휘한다는 기존 정설을 뒤집는 결과다.
  
연구진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300석의 음악홀과 미국 뉴욕에 위치한 860석의 음악홀에서 각각 음악에 식견이 있는 청중 55명과 82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6대의 바이올린 중 무작위로 2대의 악기를 선택해 들려준 뒤 어떤 악기의 소리가 얼마나 더 듣기 좋고(조음과 음색), 얼마나 더 청명하게 잘 울려 퍼지는지(음향 방사도) 조사한 것이다. 연주는 이지아 수잔느 하우, 다츠키 나리타 등 7명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맡았다. 연주자들 역시 안대를 착용해 악기를 구별하지 못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오케스트라 연주가 함께 곁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청중은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새 바이올린의 음향 방사도가 더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음향 방사도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다른 고(古)악기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던 특성이다. 이는 연주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리츠 교수는 “오래 된 바이올린이 더 뛰어나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며 “연주자들이 오래 된 바이올린 대신 새 바이올린을 선택할 때 청중에게 더 좋은 음악을 들려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치를 둘러싼 논쟁은 오래도록 끊이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점이 다른 바이올린과 다른지 밝혀지지 않았던 탓이다. 지난해 타이환칭 대만국립대 화학과 교수팀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목재 성분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한 바 있지만 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현재 세계적으로 약 650대가 현존해 있다.

동아사이언스

내 몸에 맞는 생체시계 공부법



학창시절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다. ‘잠을 자면서 공부할 내용을 들으면 저절로 외워진다’는 속설을 믿고 따라했던 것이다. 이제 와 알게 됐지만 이 방법, 전혀 효과가 없다. 사람은 잠을 자는 동안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잠을 잘 때 들어온 외부자극은 ‘시상’이라는 뇌의 관문을 통과할 수 없어 대뇌로 들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들은 정보를 분석하고 장기기억으로 전환할 수 없다. 아무리 들어도 ‘쇠 귀에 경 읽기’란 얘기다.

잘못된 공부 방법은 또 있다. 밤새워 공부하는 것. 2000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로버트 스틱골드 교수는 “공부한 것을 기억하려면 적어도 여섯 시간 이상은 자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받아들인 모든 정보를 뇌 속 해마에 잠깐 보관했다가 자는 동안 필요한 기억만 대뇌 신피질로 보낸다. 여기 저장돼야 다시 꺼내 쓸 수 있다. 이 과정이 6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적어도 6시간은 자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해마는 필요하지 않다고 분류한 기억은 바로 삭제한다. 즉 잠을 적게 자면 해마가 시간이 없어 처리하지 못한 정보를 모두 필요 없는 기억으로 분류해 싹 지워버리는 ‘사고’가 일어나고 만다. 이처럼 뇌는 낮과 밤에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애써 외운 걸 최대한 기억하고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밤에는 자고 낮에 공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수학·과학은 오전 8시에서 오후 2시
뇌 뿐 아니라 사람의 신체기관도 시간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 생체시계 때문이다. 생체시계는 햇빛의 양에 따라 호르몬 분비와 체온을 조절한다. 햇빛이 완전히 사라진 오후 9시면 생체시계가 뇌하수체에서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을 분비하도록 시킨다. 반대로 빛이 들어오는 오전 7시에는 멜라토닌 분비를 멈추도록 해 잠을 깨운다. 이렇게 생체시계는 ‘각성’과 ‘수면’을 조절한다.
생체시계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수면 충동을 높인다.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는 오히려 각성 충동을 증가시킨다. 수면 충동보다 각성 충동이 높은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하루 중 머리가 가장 맑은 상태다. 집중력과 논리적 추리도 가장 높다. 이 시간에는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이나 빠르게 처리할 일을 하는 게 좋다. 보통 수학, 과학 공부가 알맞다.

각성 충동과 수면 충동이 만나는 오후 2~3시에는 졸음이 온다. 집중력, 기억력이 모두 떨어진다. 이때 억지로 공부하는 것보다 1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것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후 3시부터는 세로토닌과 엔돌핀 같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이 때 평소 싫어하는 과AM목을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밤 8시 이후에 수면 충동이 각성 충동보다 높다고 해서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시간에는 소리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영어 같은 어학 공부를 추천한다. 많은 작곡가들이 밤샘 작업을 즐기는 이유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아침형인가 저녁형인가
사람마다 각성 충동와 수면 충동이 일어나는 시각은 차이가 있다. 열 명 중 한 명은 남들보다 시각이 빠른 ‘아침형’, 두 명은 시각이 늦은 ‘저녁형’이다. 영국 서레이대의 더크 딕 교수는 아침형과 저녁형은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유전자 중 하나인 per3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유전자 길이가 평균보다 짧으면 아침형, 길면 저녁형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현대생물학지’ 2007년 4월 3일자에 게재됐다.

하지만 효율성을 생각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것이 가장 낫다. 학교 마치고 학원에 갔다 오면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다.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는 뇌세포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공부해도 별로 남지 않는다. 차라리 학교 가기 전 일찍 일어나는 게 좋다. 단 저녁형인 사람은 억지로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있는 것보다는 그냥 밤에 공부하는 게 낫다. 아침형, 저녁형은 유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노력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아침 공부가 좋다는 말에 무조건 따르지 말고 스스로 잘 맞는 시간을 선택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험 보기 전에 LED 조명을
시험 전날 늦게까지 공부하다 시험을 못 보는 경우가 있다. 시험 봐야하는데 영 잠이 깨지 않는다면 1만 룩스 이상의 강한 조명을 쬐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밝은 빛을 받으면 뇌하수체의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 각성 충동이 빨리 일어난다. 생체시계가 다시 맞춰지는 것이다. 빛을 이용해 생체시계를 새로 맞추는 방법은 해외로 여행 갔을 때 생기는 시차를 줄이는 데도 쓸 수 있다. 겨울철에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줄어 생기는 계절성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도 쓴다.

“잠을 깨는 데는 푸른빛이 특효약입니다.”

미국 토머스 제퍼슨대의 조지 브레이너드 교수는 빛의 여러 파장 중 450~480nm에 해당하는 푸른색 빛이 멜라토닌 분비를 가장 잘 막는다고 2001년 ‘신경과학저널’에 발표했다. 브레이너드 교수팀이 새벽 2시 잠을 자는 실험자들에게 푸른빛을 쪼였더니 각성 주기가 3시간이나 빨라졌다. 그는 “눈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수용체 단백질이 특히 푸른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푸른빛은 뇌를 깨워 집중력을 높이고 실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하버드대 의대의 스티븐 로클리 교수는 “푸른빛은 잠잘 때 나오는 뇌파인 델타파를 억제해 뇌 활동을 빠르게 한다”며 “기억력을 담당하는 좌뇌 측두엽과 두정엽피질의 활성이 초록빛을 쪼였을 때보다 두 배 높았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2006년 2월 1일 ‘슬립’지에 실렸다. 캐나다 몬트리올대 생체리듬연구소의 가일 반데와일 교수도 “푸른빛이 뇌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작업수행능력을 높인다”고 했다. 푸른빛은 백열등과 형광등보다 LED 조명에서 더 많이 나온다. 시험 보는 날 더 맑은 정신을 위해 LED 조명을 써보는 건 어떨까.
과학동아

내 몸에 맞는 생체시계 공부법


‘잠을 자면서 공부할 내용을 들으면 저절로 외워진다’, 
‘4시간 자면 합격, 5시간 자면 불합격’

한번쯤 들어봤던 이야기죠? 그렇지만 과학적으론 효과가 없는 낭설일 뿐입니다.

사람이 잠을 잘 때 들어온 외부 자극은 시상이라는 뇌의 관문을 통과할 수 없어 대뇌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들은 정보를 분석하고 장기기억으로 전환할 수 없죠. 인간은 받아들인 정보를 뇌 속 해마에 보관했다가 자는 동안 필요한 기억만 대뇌 신피질로 보냅니다. 여기 저장돼야 다시 꺼내 쓸 수 있는데 이 과정이 6시간 정도 걸립니다. 만약 잠을 적게 자면 해마가 시간이 없어 처리하지 못한 정보를 모두 필요 없는 기억으로 분류해 싹 지워버리는 ‘사고’가 일어나고 맙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공부하는 습관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신체기관은 생체시계로 인해 시간에 따라 기능이 달라집니다. 생체시계는 햇빛의 양에 따라 호르몬 분비와 체온을 조절해 각성과 수면을 조절합니다. 수면 충동보다 각성 충동이 높은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머리가 맑고 집중과 논리적 추리가 잘 됩니다. 복잡하고 급한 일이나 수학, 과학 공부를 하기 좋은 시간이죠.

각성 충동과 수면 충동이 만나는 오후 2~3시에는 집중력, 기억력이 떨어지고 졸음이 옵니다. 이때 억지로 공부하기보다 1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것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오후 3시부터는 세로토닌과 엔돌핀 같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됩니다. 이때 평소 싫어하는 과목을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수면 충동이 각성 충동보다 높은 밤 8시 이후에는 소리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영어 같은 어학 공부를 하기 좋습니다.

사람마다 각성 충동과 수면 충동이 일어나는 시각은 차이가 있습니다. 열 명 중 한 명은 남들보다 시각이 빠른 아침형, 두 명은 시각이 늦은 저녁형입니다. 효율성을 생각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것이 가장 낫습니다.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는 뇌세포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녁형인 사람은 그냥 밤에 공부하는 게 좋습니다. 아침형, 저녁형은 유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억지로 바꾸기보단 스스로 잘 맞는 시간을 선택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을 선택할 수 없는 시험은 어떻게 할까요?

시험날 도저히 잠이 깨지 않는다면 1만 룩스 이상의 강한 조명을 쬐는 방법이 있습니다. 밝은 빛은 뇌하수체의 멜라토닌 분비를 줄여 각성 충동을 빨리 일어나게 합니다.

“잠을 깨는 데는 푸른빛이 특효약입니다.”
- 미국 토머스 제퍼슨대 조지 브레이너드 교수

눈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수용체 단백질은 푸른빛에 민감합니다. 또한 푸른빛은 뇌를 깨워 집중력을 높이고 실수를 줄입니다. 푸른빛은 잘 때 나오는 뇌파인 델타파를 억제해 뇌 활동을 빠르게 합니다. 기억력을 담당하는 좌뇌 측두엽과 두정엽피질의 활성도 높아지죠.

푸른빛은 백열등과 형광등보다 LED 조명에서 더 많이 나옵니다. 시험 보는 날 더 맑은 정신을 위해 LED 조명을 써보는 건 어떠신가요?

저녁형 인간이 손해 보는 세상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성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습관을 바꾸다 역효과가 나는 사람도 있지요. 성인 중 약 40%는 저녁형 인간과 아침형 인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요? 또 살면서 변하기도 할까요?

사이먼 아처 영국 서레이대 교수팀은 수면 유형을 결정하는 유전자 PER3의 길이가 길면 아침형이고, 짧으면 저녁형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PER3의 영향은 나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청소년 시기엔 유전자의 영향이 강하지만 40대가 되면 사회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합니다.

보통 청소년기에 저녁형 성향이 두드러지는데요. 그러다가 사춘기가 끝날 때 쯤 아침형 성향이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성별도 영향을 끼칩니다. 남성이 저녁형인 경우가 더 많지요. 여성의 생체시계는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남성보다 짧기 때문입니다. 낮이 짧은 가을과 겨울에 태어나면 아침형, 봄·여름에 태어나면 반대로 저녁형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아침형은 아침에 몸을 개운하게 만드는 코티솔 호르몬과 잠이 오게 만드는 멜라토닌 호르몬의 농도가 저녁형보다 빠르게 높아집니다. 아침형은 오전에 성과가 좋지만 이후 인지능력이 계속 떨어집니다. 저녁형은 인지능력과 성과가 저녁에 가까워질수록 좋습니다.

인지 능력의 차이를 정보 처리 방식의 차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아침형은 논리적·분석적인 좌뇌형, 저녁형은 직관적인 우뇌형이라는 것이죠.

스페인 마드리드대 심리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저녁형이 귀납추리능력이 더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업 성적은 아침형이 더 좋은데요. 학자들은 학교 수업과 시험을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영향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저녁형 학생들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생활리듬이 깨지기 쉽습니다.

개인의 생활리듬과 사회 환경이 맞지 않는 현상, 즉 생체시계와 사회적 시계의 불일치를 ‘사회적 시차’라고 부릅니다. 큰 사회적 시차를 겪는 사람들은 담배, 술, 카페인에 많이 의존하고 우울증 증상도 많이 겪는다고 합니다.

특히 햇빛을 적게 받고 밤에 조명을 많이 받는 저녁형은 생체시계와 환경 사이 불균형이 생겨 우울증이나 알코올중독 같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았습니다.

학교든 회사든 개인에게 맞는 시간대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이익이 될 겁니다. 속담부터 바꿔야겠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잘 잡는다.” 

설명할 수 없다면 모르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훈련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 주변 과학자 중에는 학창시절 시를 짓거나 문예반에서 활약한 분들도 있지만, 난 그런 경험도 전무하다. 어쩌다 대중을 위한 과학책을 썼고, 또 어쩌다 그 책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널리 읽혔다. 

그래선지 마치 내가 글쓰기 비결이라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비결은 개뿔. 그런 것 없다. 겸손이 아니다. 다른 과학자의 글을 읽다가 감탄하며 부러워한 적은 많지만, 글을 잘 쓴다는 자신감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물리학자 김범준의 ‘글을 쓴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어쩌다 이 글을 읽게 된 독자는 명심하길. 이 연재는 글을 어떡하면 잘 쓰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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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려면 알아야, 알려면 읽어야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고생하는 것이 바로 영어 듣기다. 지금이라고 편하게 잘 듣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영어가 안 들려 정말 고생한 적이 있다. 

대학원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낼 때에 하도 걱정이 돼 영어회화 수업을 들었다. 그때 외국인 강사가 해준 얘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바로 “아는 것만 들린다”는 것. 우리 모두는 이미 아는 영어단어나 영어표현만 듣고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과 대화할 때, 자기가 모르는 영어단어를 처음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아는 것만 쓸 수 있다.” 쓴 사람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술한 글은 절대로 독자를 이해시킬 수 없다. 사실 꼭 쓰는 것만 그런 것도 아니다. 과학자는 자기가 연구한 것을 다른 과학자 앞에서 설명하는 것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자들도 아는 것만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그리고 쓸 수 있다. 내 머릿속에 든 것을 말이든 글이든 어떤 형태로 외부와 소통하려면, ‘앎’이 먼저다.

영어 얘기가 나온 김에 떠오른 것이 있다. 케렌 앤(Keren Ann)이 부른 ‘Not going anywhere’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 “I like to hear but not to listen, I like to say but not to tell.”이라는 문장이 있다. 영어 수업에 배웠던 ‘hear’와 ‘listen’의 차이, ‘see’와 ‘watch’의 차이, 그리고 ‘say’와 ‘tell’의 차이를 떠올리면 된다. 듣고, 말하고, 그리고 보는 것 각각에 이처럼 영어 단어는 짝이 있다. 듣고, 말하고, 보는 주체의 ‘앎’의 정도에 따라, 혹은 정보의 양에 따라 어감이 다른 단어들이다.

영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도 영어를 들을(hear) 수 있지만, 듣고 이해(listen)할 수는 없다. 그런데 쓴다는 것을 뜻하는 ‘write’에는 이처럼 짝을 이루는 영어 단어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말하고, 듣고, 쓰는 소통의 방식 중에서 쓴다는 행위에 ‘앎’이 더 필수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앎을 만들려면 먼저 ‘생각’이 필요하다. 흰 벽을 앞에 두고 앉아 스스로의 생각에 골몰해 ‘앎’을 늘릴 수도 있지만,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다른 이의 ‘앎’을 슬쩍 해 내 ‘앎’의 재료로 쓰는 거다. 다른 이들도 자신들이 아는 것을 이미 써 놓았다. 바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세상에 쏟아지는 그 많은 책 중 어떤 것을 읽을지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읽지 말아야 할지는 쉽게 답할 수 있다. 저자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쓴 책은 단 한 명의 독자도 이해시킬 수 없다. 책을 읽다 방금 마주친 문장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내가 아직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자가 이해하지 못한 문장을 쓴 것인 지를 자문해본다. 만약 두 번째 이유라면, 그런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 쓰려면 알아야하고, 알려면 읽을 일이다.
 
※ 편집자주
4차 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이 우리의 직업을 대체할 거라는 불안에 맞서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본질적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교육의 시대에서 학습의 시대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 평생 학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학습은 말하기, 듣기, 쓰기로 표현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출발하고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의 완성은 우리 인간이 인공지능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동아사이언스

좋은 글은 자랑하지 않는다

뭐라도 쓰려면 일단 알아야한다. 청중이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는 과학자는 연구내용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말의 순서를 바꾸면 더 이상 참이 아니다. 잘 안다고 해서 잘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과학자의 강연인데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아는 것만 쓸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잘 안다고 꼭 잘 쓰는 것은 아닌 이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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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하기 쉬운 글은 배려와 친절이 스며있다!

쉬운 글을 쓰는 정해진 방법은 없다. 그런 왕도가 있다면 세상에 글 못 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안내를 잘 따라 가기만하면 좋은 글이 튀어 나오는 비법은 없지만, 그래도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글의 공통점은 있다. 바로 독자에 대한 배려와 친절이다.

“방금 내가 쓴 것 봤지? 진짜 어렵지 않아? 난 이렇게 어려운 것도 알아. 나 참 대단하지?”의 인상을 주는 글은 좋은 글일 수 없다. 좋은 글은 자랑하지 않는다. 거꾸로 좋은 글은 독자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도록 만든다. “여기까진 참 쉽죠? 그럼 이건 어때요? 이것도 정말 쉽죠?”같은 느낌이 이어져, 한 단계 한 단계 독자를 앎으로 친절하게 이끄는 글이 좋다.

우리가 무언가 쉽거나, 어렵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시기마다 다르다. 초등학생 때 우리 모두를 괴롭힌 나눗셈도 시간이 지나면 쉬워지고, 미적분이 누워서 떡 먹기인 아인슈타인도 어려서는 구구단 때문에 고생했다.

과학책도 마찬가지다. 지금 어려운 과학책도 어느 순간 재밌는 과학책이 될 수 있다. 독자를 위해 친절한 이해의 사다리를 제공하는 과학책이라면 말이다. 여기서 이해의 사다리는 특별한 것이 아닌 읽는 이의 입장에서 쓰는 거다. 마라토너를 도와주는 페이스메이커처럼, 자신은 빨리 뛸 수 있어도 다른 이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스며든 글은 독자에게 볼수록 매력덩어리(‘볼매’)다.


● 과학자의 논문도 독자를 설득하는 글쓰기!

대중을 위한 과학을 글로 써본 경험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물리학을 연구하며 논문을 쓰기 시작한 지는 한 25년 정도 됐다. 대중을 상대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논문을 썼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리학자가 읽는 연구논문과 대중을 위한 글이 한참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상당히 닮았다. 독자가 물리학자냐 아니냐만 다를 뿐, 결론을 향해 독자를 설득해가는 과정이라는 면에서 두 글쓰기의 차이는 없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논문을 처음 쓰는 사람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바로, 자기가 알고 있으면 남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저자에게는 너무나 자명해서, “아, 이런 것까지도 적어야할까” 걱정이 되더라도, 논문을 처음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쓸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문의 모든 문장을 어떻게 써야 읽는 이가 이해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이 과학자가 겪는 혹독한 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연구 논문들은 공통점이 있다. 찬찬히 따라 읽어가며 결론을 이해하면 그 결과가 너무나 자명해 보이는 논문이다. 읽고 나면 무릎을 치면서, “이렇게 쉽고 자명한 것을 왜 난 먼저 생각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논문이 난 참 좋다. 대중을 위한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잘난 체 하는 곳이 아니다. 쓰는 이가 아니라, 읽는 이를 위해 써라.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라”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