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려면 일단 알아야한다. 청중이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는 과학자는 연구내용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말의 순서를 바꾸면 더 이상
참이 아니다. 잘 안다고 해서 잘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과학자의 강연인데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아는 것만 쓸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잘 안다고 꼭 잘 쓰는 것은 아닌 이유와 같다.
● 이해하기
쉬운 글은 배려와 친절이 스며있다!
쉬운
글을 쓰는 정해진 방법은 없다. 그런 왕도가 있다면 세상에 글 못 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안내를 잘 따라 가기만하면 좋은 글이 튀어 나오는
비법은 없지만, 그래도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글의 공통점은 있다. 바로 독자에 대한 배려와 친절이다.
“방금
내가 쓴 것 봤지? 진짜 어렵지 않아? 난 이렇게 어려운 것도 알아. 나 참 대단하지?”의 인상을 주는 글은 좋은 글일 수 없다. 좋은 글은
자랑하지 않는다. 거꾸로 좋은 글은 독자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도록 만든다. “여기까진 참 쉽죠? 그럼 이건 어때요? 이것도 정말 쉽죠?”같은
느낌이 이어져, 한 단계 한 단계 독자를 앎으로 친절하게 이끄는 글이 좋다.
우리가
무언가 쉽거나, 어렵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시기마다 다르다. 초등학생 때 우리 모두를 괴롭힌 나눗셈도 시간이 지나면 쉬워지고, 미적분이 누워서 떡
먹기인 아인슈타인도 어려서는 구구단 때문에 고생했다.
과학책도
마찬가지다. 지금 어려운 과학책도 어느 순간 재밌는 과학책이 될 수 있다. 독자를 위해 친절한 이해의 사다리를 제공하는 과학책이라면 말이다.
여기서 이해의 사다리는 특별한 것이 아닌 읽는 이의 입장에서 쓰는 거다. 마라토너를 도와주는 페이스메이커처럼, 자신은 빨리 뛸 수 있어도 다른
이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스며든 글은 독자에게 볼수록 매력덩어리(‘볼매’)다.
● 과학자의
논문도 독자를 설득하는 글쓰기!
대중을
위한 과학을 글로 써본 경험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물리학을 연구하며 논문을 쓰기 시작한 지는 한 25년 정도 됐다. 대중을 상대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논문을 썼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리학자가 읽는 연구논문과 대중을 위한 글이 한참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상당히 닮았다. 독자가 물리학자냐 아니냐만 다를 뿐, 결론을 향해 독자를 설득해가는 과정이라는 면에서 두 글쓰기의 차이는
없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논문을 처음 쓰는 사람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바로, 자기가 알고 있으면 남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저자에게는
너무나 자명해서, “아, 이런 것까지도 적어야할까” 걱정이 되더라도, 논문을 처음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쓸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문의 모든 문장을 어떻게 써야 읽는 이가 이해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이 과학자가 겪는 혹독한 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연구 논문들은 공통점이 있다. 찬찬히 따라 읽어가며 결론을 이해하면 그 결과가 너무나 자명해 보이는 논문이다. 읽고 나면 무릎을
치면서, “이렇게 쉽고 자명한 것을 왜 난 먼저 생각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논문이 난 참 좋다. 대중을 위한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잘난 체 하는 곳이 아니다. 쓰는 이가 아니라, 읽는 이를 위해 써라.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라”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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