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칸트 vs 니체




칸트

순수이성비판 - 眞 - - 참/거짓



실천이성비판 - 善 - - 선/악 -> 중심테마 : 자유와 책임의 윤리학 - 기존의 윤리학은 관습의 윤리학이었음.



판단력비판 - 美 - - 미/추



칸트 이전은 진,선,미 는 같은 개념이었다.

칸트의 등장이후 이 세가지를 철저히 분리시킴.(미학의 가능은 칸트때문이다.)



예) 서울의 스모그 낀 보라색 노을

순수이성비판 - 빛의 굴절 등등, 실천이성비판 - 자본주의의 문제점 등등, 판단력비판 - 아름답다 등등



칸트의 윤리학은 매번 자유의지를 가지고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함. 칸트에게 자유는 자기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칸트 비판의 요점 - 과연 내가 결정한 판단이 100% 나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결정한 것인지. 인간이 100% 자유로운 존재인지.



책임(responsiblity) : response+able 반응, 대응 할 수 있음. 타자와의 관계에서 반응을 할 수 있느냐.

가라타니 고진 [윤리21] :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윤리를 얘기할 수 있음.

레비나스 - 책임의 윤리학,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사태에 대한 반응을 찾게 되었음.

칸트의 타인 - 타인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칸트에게 타인은 구체적인 개념은 아니다. 아직 추상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칸트에게 아직 response에 대한 논의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에게는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전근대 - 공동체 - 관습



근대 - 나 - 자유



나의 사유 - 칸트 정서를 제거하고 자율적인 사유를 강조함.

정서 - 스피노자 (어떤 사건이나 타자를 만나면 우리는 기쁘거나 슬프다는 정서 속에서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한다. 따르던지 배제하던지)

우리에게 중심은 "나"인데 타인과 만날때 기쁨은 따르고 슬픔은 배제해야 한다. 사유 이전에 정서를 느낀다.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면 '마주침'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 "내가 죽으면 세상은 그대로 있는가?"

관점주의는 '나의 세계'이다

보르헤스 -장님의 세계는 일반인의 세계와 같을까?

불교의 일체유심조

관점은 종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지만 개인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고 역사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 마투라나(Maturana, 칠레출신의 생물학자, 관점주의를 생물학적 관점으로 이해)

"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찰자는 모든 지식의 기초입니다. 인간자신, 세계 그리고 우주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주장의 기초입니다. 관찰자의 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주장의 기초입니다. 관찰자의 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말과 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각하고, 말하고, 기술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칸트 - 물자체는 알 수 없다.

각자의 관점이 있어서 우리가 보는 관점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물자체는 있다

각자 다른 카메라를 가지고 사물을 찍을때 동일한 사물을 보고 찍지만 각자의 카메라 성능으로 찍히는 모습은 다를 것이지만 우리는 카메라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카메라를 통해서만 볼수 있다.

니체는 물자체는 없다고 봄. 각자 카메라 안에서만 사물을 볼 수 있다면, 그럴수밖에 없다면 물자체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실존주의(탈존주의) - 인간은 현재 자기의 모습(존재의 규정태)를 벗어나는 존재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낙타(의무를 지고 있는 존재, 나의 관점에 부합되지 않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존재, 타인의 관점을 지고 가는 존재)

사자(사자위에는 짐을 지울수 없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 의식으로 무엇을 할 수 는 없다)

어린아이(창조, 자기의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

관점을 만들지 못하는 인간은 노예이다.

사물 자체란 우리의 추상일 뿐이다.

http://blog.daum.net/faylas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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