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2일 일요일

60년前 한국 가르친 美의대, 한국 배우러 온다

청출어람 '미네소타 프로젝트'
"1955년부터 7년간 의료원조… 이젠 우리가 배우고 싶어"
아산병원, 年400건 肝이식 생존율 95% 세계 최고 수준
"우리도 저개발國 도와줘야"


브룩스 잭슨 학장, 이승규 교수 사진
브룩스 잭슨 학장, 이승규 교수.


지난해 말 미국 미네소타대학 의대 학장으로부터 서울아산병원 의료원장실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우리 대학은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의사들을 받아 선진 의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배운 의사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미네소타대 의료진이 서울아산병원의 생체 간이식 기술을 배우고자 합니다. 과거 한국과 미네소타대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주길 바랍니다."

편지는 미네소타대 간이식팀 의사들을 한국에 보내 의료기술 연수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20일 미네소타대 의료진이 우리나라에 직접 와서 생체 간이식을 배우는 연수 협약식을 체결한다. 생체 간이식은 산 사람의 간을 절반 기증받아 말기 간질환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이승규(외과) 교수팀은 '변형우엽 간이식', 두 사람의 간을 한 환자에게 넣어 주는 '2대1 간이식', 혈액형이 맞지 않아도 이식이 가능한 'ABO 혈액부적합 간이식' 등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생체 간이식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날 협약식에는 미네소타대 브룩스 잭슨 의대 학장, 티머시 프루트 장기이식 과장, 존 레이크 간이식 실장, 제이컵 툴라 줄기세포센터장 등 병원 핵심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1950년대 후반 당시 서울대 의대 외과 이영균(맨 오른쪽) 교수가 미국 미네소타 대학병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모습.
1950년대 후반 당시 서울대 의대 외과 이영균(맨 오른쪽) 교수가 미국 미네소타 대학병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모습. /서울대병원 제공


이를 두고 의료계에서는 '미네소타판 청출어람' 스토리라는 말이 나왔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 7년간 미국 국제협력본부가 진행한 1000만달러 개도국 원조 프로그램인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따라 서울대 의대, 농대 등 젊은 교수 요원 226명이 미네소타대로 연수를 다녀왔다. 미네소타대 의대는 당시 세계 최초로 심장수술을 한 곳이다. 췌장 이식도 여기서 처음 이뤄졌다. 미네소타 프로젝트 출신으로는 옛 보사부 장관을 지낸 권이혁(92) 전 서울대 총장, 유행성출혈열의 원인인 한탄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이호왕(87) 전 고려대 의대 교수, 소아 심장학 교과서를 집필한 홍창의(92) 전 서울대병원장 등이 있다. 이승규 교수가 서울대병원 외과 전공의 시절, 직접 수술법을 가르쳤던 김진복 전 서울대 외과 교수도 미네소타대 연수생 출신이다.

서울아산병원은 한해 간이식을 400건 정도 한다. 이 중 생체 간이식 건수는 340여건에 이른다. 미국 전체에서 이뤄지는 270여건보다 많다. 아산병원의 간이식 환자 생존율은 9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은 주로 뇌사자로부터 간을 통째로 기증받아 이식하는 수술을 하는데 난도가 비교적 낮다. 하지만 뇌사자 기증이 정체돼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간 절반을 기증받는 고난도 생체 간이식이 절실해졌다. 이에 미네소타대는 서울아산병원을 배움터로 선택한 것이다.
이 교수는 "60년 전 우리에게 의술을 가르쳤던 원조(元祖)가 한국으로 배우러 오는 선순환의 역사"라며 "이제 우리가 (제2의) 미네소타가 되어 저개발 국가 의사들에게 선진 의술을 가 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판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대 의대가 라오스 국립의대 의사들을 데려와 의술 연수를 시키는 프로그램, 국제보건의료재단이 저개발 국가 의료진 500여명의 국내 연수를 지원하는 이종욱(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펠로십, 서울아산병원이 동남아시아 국가 의료진에게 수술법을 가르치는 아산 아시아 프로젝트 등이 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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