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기 위해 옷가게에 들른 A씨.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을 발견했지만 때마침 XXL만 품절됐다. 통통한 몸을 조금이라도 날씬하게 보이게 하려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옷을 입어 보지 않고 구매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지금 이 매장에서는 옷을 주문해서 사지 않으면 옷을 입어볼 방법이 없단다.
사진 출처 : GIB
이처럼 옷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는데 맞는 사이즈가 없다면 난감하다. 마음에 들어도 옷맵시를 보고 사려면 입어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XXS나 XS, XXL처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사이즈는 매장에 상품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많은 양을 생산하지 않아서다.
그러면 옷을 입어보기 위해서는 옷을 꼭 사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게는 하루, 많게는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흔치 않은 사이즈의 옷을 입는 사람은 해당 사이즈가 있는 매장을 찾아 쇼핑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집합 덮개 문제로 해송 문제 해결
유통 현장에서 늘 벌어지는 이런 문제를 수학 이론으로 해결할 수가 있다.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장영재 교수팀은 코오롱스포츠의 의뢰를 받아 수학 이론을 이용한 ‘빅데이터 로지스틱 시스템’을 개발했다. 몇 년 전부터 이 회사는 엑스트라 사이즈의 옷을 입는 고객들이 매장에 옷이 없어 구매에 불편을 겪는 것을 개선하고자 고심해 왔다. 장 교수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합 덮개 문제’라는 수학 이론을 이용했다.
집합 덮개 문제는 조건을 만족하는 다양한 경우 중에서 겹치는 부분을 최대한 제외해, 최소의 경우만으로 전체를 만족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1, 2, 3, 4, 5, 6, 7}이라는 집합과 그의 부분집합인 {1, 2}, {2, 3}, {1, 3, 5, 7}, {3, 4, 5}, {4, 6, 7}, {6, 7}이 있다고 하자. 이 부분집합의 합집합은 전체집합과 같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적은 부분집합으로 전체집합을 만들 수 있도록 골라내는 게 집합덮개 문제다. 위와 같은 경우 {1, 2}, {3, 4, 5}, {6, 7}만 있으면 전체집합을 만들 수 있다.
빅데이터 로지스틱 시스템의 원리는 2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 매장에 옷을 배송할 수 있는 적절한 매장을 선택해 엑스트라 사이즈의 옷을 배치하는 것이다. 출처 수학동아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총 220개 매장 중에서 2시간 안에 물품을 배송할 수 있는 최소 매장을 선정할 수 있다. 만약 최소 매장이 30곳이라면 이곳에 물품을 배치하고, 남는 물품은 해당 사이즈의 옷이 가장 많이 팔린 곳에 배치한다. 이때 물품의 개수가 30개보다 적다면 특정지역에서의 판매를 포기하고, 가능한 곳에서만 판다. 구매는 실시간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실시간 분석을 통해 3시간마다 매장에 물품을 배송한다.
집합 덮개 문제, 공공 정보에도 활용 가능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도 2005년부터 구매한 상품을 미국 내에서 2일 안에 받아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에서도 집합 덮개 문제를 이용해 지역별로 최소의 비용으로 배송이 가능한 곳을 선정한 뒤, 그곳에 물품을 미리 배송해 놓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집합 덮개 문제는 유통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집합 덮개 문제를 공공 정보에 활용하면 저상버스의 노선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저상버스는 노약자나 장애인이 쉽게 탈 수 있도록 일반 버스보다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 대신 경사판을 설치한 버스를 말한다. 서울시에서 운행되고 있는 총 7000여 대의 시내버스 중 30% 이상이 저상버스다. 서울시는 2017년까지 저상버스의 비중을 55%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저상버스의 노선은 무작위로 정해져 있다. 즉 장애인들의 이용이 많은 노선에 배치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집합 덮개 문제를 이용하면 많은 장애인들이 좀 더 편리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들의 거주 지역과 직장 주소가 필요하다. 각 구청에서는 해당 자료를 가지고 있고,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지는 장애인 교통카드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이 자료를 이용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이 주로 어느 정류장을 이용하는지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버스 정류장 별로 그곳을 이용하는 장애인 수를 파악할 수 있다.
집합 덮개 이론을 이용하면 장애인 이용자 수가 많은 정류장을 가장 많이 거치는 노선을 골라 저상버스를 투입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정류장을 지나는 버스 노선은 많다. 이중 어떤 노선에 저상버스를 도입해야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까? 바로 이때 집합 덮개 문제를 이용한다. 그러면 수학적으로 가장 많은 장애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최소의 노선을 골라낼 수 있다.
전쟁에서 꽃핀 최적화 이론
집합 덮개 문제는 수학에서 최적의 해법을 찾는 ‘최적화 이론’ 중 하나다. 이 이론을 발전시킨 주역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활약한 수학자들이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전장에 효율적으로 물자를 보급하고 소모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대표적인 최적화 이론인 ‘선형계획법’을 이용한 방법을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법을 사용해 경제나 교통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문제를 해결한 수학자도 등장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국의 조지 단치그가 ‘단체법’이라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알고리즘으로 선형계획 문제를 더욱 빨리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시작된 최적화 이론은 전쟁 이후 산업 현장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모르고 지나치기 쉽지만 화장지 한 롤의 길이를 몇 미터로 할지, 건물에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를 몇 개나 두어야 할지 등은 이와 같은 과정으로 정해진다. 유통, 서비스, 스포츠, 금융 등 산업 곳곳에서 우리는 수학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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