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물체를 분석하고 우리 생활을 이롭게 하려는 것, 생체모방 공학의 매력이다. 최근에는 기계, 항공, 소재, 생활용품, 의학 등 응용 분야를 넓히고 있다. 기존의 연구에 혁신적인 실험과 결과를 더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생체모방 공학 명품 7가지를 꼽았다. 이들에게 자연은 ‘진정’ 위대한 스승이다.
1 풍뎅이 무인비행기
날개 비틀어 하늘로 급발진
내 주머니 속에 있다가 필요할 때 끄집어 낼 수 있는 초소형 비행체가 있다면 어떨까. 무게는 10g 이내에 초소형 카메라가 달려 있고, 정해진 항로로 날아갈 수 있다면? 군이나 경찰이라면 귀를 쫑긋 세워볼 만하다. 인질극을 벌이는 무장강도를 제압하거나 대치하고 있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데 안성맞춤이다. 이처럼 영화에서나 나오는 초소형 무인정찰기(UAV)를 실제로 만들 수 없을까.
건국대 박훈철 교수팀은 지난 5월 장수풍뎅이를 모방해 무게 10g 안팎의 초소형 비행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초소형 비행체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지면에서 30°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연구팀은 왜 장수풍뎅이의 날갯짓을 모방했을까. 박훈철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평소에는 접혀 있다가 도망갈 때만 펴지는 장수풍뎅이의 날갯짓이 초소형 비행체에 ‘딱’이었어요. 전진하는 힘(추력)과 띄우는 힘인 양력, 비행체의 무게 등을 고려해봤을 때 풍뎅이의 날갯짓이 매력적이었죠.”
2007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연구팀은 풍뎅이의 날갯짓을 분석하는 데만 1~2년이 걸렸다. 풍뎅이는 평소 잘 날지 않는다. 연구팀은 풍뎅이가 가끔 날아오르는 순간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해 날갯짓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풍뎅이와 새의 날개 움직임은 크게 달랐다. 새는 날개를 아래로 내려칠 때만 앞으로 가는 힘이 발생한다. 대신 위로 올릴 때는 날개를 자연스럽게 움츠려 빠르게 올린다. 손실되는 추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풍뎅이는 근육이 없어 새와는 달랐다. 날개를 내렸다 올리는 동작에서 날개를 한번 비튼다. 공기와 날개가 맞닿는 각도가 비행에 필요한 양력과 추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 각도가 되도록 바꿔주는 것이다.
몇 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연구팀은 풍뎅이 날갯짓에 가까운 비행체를 만들었다. 날개를 비트는 동작을 그대로 흉내 내기는 어려웠다. 고민 끝에 날개 뒤쪽을 몸체에 고정시켜 날개 바깥쪽의 회전이 커지게 만들어 해결했다. 또 워낙 가벼운 비행체여서 빠른 날갯짓에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연구팀은 몇 개월 씨름한 결과 풍뎅이의 공기력 중심점을 알아내 날개를 비틀면서도 안정적인 자세로 날아오르는 초소형 비행체를 완성했다. 이밖에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초소형기계(멤스) 기술로 몸체를 만들고 탄소나노튜브 소재로 날개를 만들었다. 초소형 배터리와 모터도 직접 만들었다.
박훈철 교수는 올 1월 ‘큰 각도로 날갯짓을 하는 비행체’라는 이름으로 풍뎅이 비행체에 대해 미국 특허를 받았다. 연구팀은 풍뎅이 비행체가 리모컨 없이 1초에 35~38회 날갯짓을 하며 완벽하게 자유비행을 하도록 만드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장수풍뎅이는 날갯짓을 할 때 아래로 내렸다가 위로 올리는 동작에서 날개를 한번 비튼다. 이런 동작을 통해 날개는 양력(뜨는 힘)과 추력(나아가는 힘)을 유지하는 적정 각도가 된다.]
[건국대 박훈철 교수팀이 지난 5월 완성한 장수풍뎅이 모사 초소형 비행체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지면에서 30°로 정확히 날아간다. 날아가는 비행체를 연속 촬영했다.]
2 깃털 자동차
새처럼 가볍게 공기저항을 줄인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어디에 가장 연료를 많이 쓸까. 바로 공기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자동차 속도가 시속 120km라면 연료의 70%를 공기의 유동저항(항력)을 극복하는 데 쓴다. 만일 자동차의 유동저항을 줄인다면 연료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최해천 교수팀은 새 깃털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새는 하늘을 날 때 날개의 깃털을 들어 유동저항을 줄인다. 이처럼 자동차 뒷부분에 새 깃털을 모방한 장치를 달면 유동저항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최신 차량에는 이미 ‘디플렉터(PMD)’라는 유동저항 제어 장치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 장치는 고속 주행시저항을 줄여 주지만 저속 주행에서는 오히려 저항을 높인다. 새의 깃털처럼 속도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연구팀이 고안한 것은 수동으로 움직이는 PMD다. 저속 주행에서는 자동차 뒷면에 붙어 있다가 유동저항이 늘어날 때만 움직여 이를 줄여준다. 실험 결과 유동저항을 최대 7.5%까지 줄였다. 최해천 교수팀은 미국의 자동차 회사 GM과 이 장치를 실제 자동차에 적용하는 테스트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 깃털이 어떻게 자동차의 유동저항을 줄여주는 걸까. 새가 날개를 펴고 공기 속을 통과할 때 날개 뒷부분에 유동저항이 발생한다. 공기 흐름과 날개의 넓은 면이 이루는 각(받음각)이 클수록 날개 뒤에 유동저항이 크게 발생해 비행 속도가 줄어든다. 자동차 뒷부분도 마찬가지다. 이 때 새는 본능적으로 깃털을 위로 든다. 위로 들린 깃털은 놀랍게도 유동저항을 줄이며 뜨는 힘(양력)을 높여 속도를 유지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PMD라는 장치도 자동차에서 같은 역할을 한다.
[새가 깃털 뒷부분을 드는 이유는 뭘까. 유동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를 모방한 수동 디플렉터(PMD)가 개발됐다.]
3 날치 비행기
바닷속 헤엄치다 하늘로 날아오른다
수면 위를 최대 40초 동안 시속 70km로 400m를 한번에 날 수 있는 날치. 존재만으로도 신비로웠던 날치의 비행 메커니즘은 지난 2010년 밝혀졌다. 최해천 서울대 교수팀이 영국 과학학술지 ‘실험생물학저널’에 날치의 비밀을 밝힌 것. 날치는 폭이 15cm인 양 지느러미(가슴지느러미과 배지느러미)를 활짝 편 뒤 수면에서 수 cm 떠 행글라이더처럼 미끄러지듯 난다. 비밀은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의 각도다. 몸통을 수평으로 눕혔을 때 가슴지느러미 앞쪽은 12~15° 위를 향하고 배지느러미는 2~5° 위를 향한다. 이 각도가 날치를 비행기처럼 뜨게 하는 양력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최근 날치의 비행을 모방할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가 하나 더 나왔다. 날치의 가슴지느러미 아래에 달려 있는 뼛살이 양력을 약 25% 가량 높이는 것을 최 교수팀이 또다시 밝혀낸 것이다. 연구팀은 날치의 가슴지느러미 뒷부분에서 공기의 속도를 살펴봤다. 이 결과 가슴지느러미 윗면에서 빨라지고 아래에서는 속도가 늦어지면서 양력이 증가했다. 가슴지느러미 뼛살이 아래에 달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연구팀은 날치 가슴지느러미 뼈대를 조그만 원형실린더 형태로 만든 뒤 단순한 평판에 달아 실험했다. 그 결과 날치처럼 아랫면에 부착했을 때 양력이 증가했으며 특히 평판 뒷단 아래에 붙였을 때 양력이 가장 크게 늘어났음을 확인했다.
“날치 앞지느러미의 뼛살의 비밀은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발생하는 지면 효과(일반적으로 뜨는 힘을 감소시킨다)를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날치처럼 바다 속을 헤엄치다가 필요할 때 하늘을 나는 비행체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해천 교수의 포부다.
[자동차의 저속과 고속에서 필요에 따라 ‘자동으로’ 내려갔다 들리는 PMD의 성능을 실험하고 있다.]
[날치의 앞지느러미 단면이다. 물체를 띄우는 힘을 약 25% 올려주는 비밀이 그림에서 표시한 뼛살에 담겨 있다.]
4 딱정벌레 물주머니
땅속에 인공 오아시스 만든다
‘제임스다이슨상’이라는 상이 있다. 영국 청소기 브랜드 다이슨의 CEO인 제임스 다이슨이 차세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을 위해 만든 국제 디자인 대회의 최고상이다. 지난해에는 특히 전세계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 고안된 아이디어 여럿이 수상해 주목받았다(왼쪽 아래 QR코드로 제임스 다이슨상 수상작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호주 디자이너 에드워드 리나커가 출품한 ‘에어드롭(Airdrop)’은 물이 부족한 지역에 단비를 내릴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꼽혔다. 이 장치는 땅속에 묻힌 파이프로 공기를 모은다. 땅속의 온도가 낮기 때문에 파이프에 있는 공기 속의 수증기만 이슬방울 형태로 맺힌다. 이를 지하에서 바로 땅속으로 공급하면 농작물 뿌리가 물을 흡수한다. 비용과 에너지가 거의 들지 않으면서 공기 중에 있는 깨끗한 물을 농작물에 줄 수 있다.
에어드롭 시스템의 기본 원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에 사는 사막딱정벌레 등딱지다. 사막딱정벌레는 등에 큐티클층(각질층)이 있다. 공기에 들어 있는 수분을 등에 물방울로 맺히게 한 뒤 입으로 굴려 마신다. 1년 강수량이 10mm밖에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땅에 살기 위한 사막딱정벌레만의 비법이다.
국내에서도 사막딱정벌레의 등딱지를 모방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은 이해신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사막딱정벌레는 물방울이 등딱지와 이루는 각도가 150° 이상이어서 잘 굴러간다. 이 교수 역시 물방울이 이 각도로 맺히는 표면 구조를 개발하고 있다. 강이 계곡을 따라 흘러가듯 등딱지 위에서 물방울이 이런 각도의 길을 따라 원하는 곳으로 모이는 것이다. 이 구조를 이용하면 공기 중 수증기를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꿀 수 있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발표된 것보다 1000배 큰 표면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한편 에어드롭은 현재 메마른 사막 지역에서 1㎤ 부피의 대기에서 하루 11.5ml의 물을 얻고 있다. 사막딱정벌레가 사막의 오아시스가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제임스다이슨상을 받은 에어드롭.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를 모아 땅속으로 바로 공급하는 장치로 나미브 딱정벌레 등딱지가 물을 튕겨내는 성질을 모방해 만들었다.]
5 연잎 반도체
물에 젖어도 주소록 살아 있는 스마트폰
풀잎에 맺히는 새벽이슬은 둥글다. 물방울들은 동글동글 맺혀 있으며 무거운 것은 굴러 떨어진다. 식물 중 가장 동그란 형태의 물방울을 잎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연이다. 연잎 표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돌기가 무수히 나 있다. 이 덕분에 물방울과 잎 바닥면의 각도가 150° 이상이다. 일반적으로 60°보다 크면 물을 튕겨내는 성질, 즉 소수성이 크다. 연잎 표면은 이러한 ‘초소수성’ 때문에 생체모방 공학의 단골 메뉴였다.
그런데 이러한 연잎 표면을 이용해 물속에서도 젖지 않으면서 전원이 없어도 정보를 계속 저장할 수 있는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저항메모리 소자, RRAM)를 국내 과학자가 개발했다. 물에 빠져도 고장나지 않고 저장된 주소록 정보를 잃어버리지 않는 ‘정말로’ 똑똑한 스마트폰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포스텍 화학공학과 용기중 교수와 이승협 박사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이 메모리 소자는 지난 4월 ‘어드밴스드머티리얼’지에 소개됐다. 실제로 물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후속 실험에도 성공해 같은 과학학술지 6월호에도 실렸다.
방수 반도체는 오랫동안 과학자들이 연구해온 주제였다. 용 교수팀은 우선 연잎 표면처럼 가는선 모양의 텅스텐 산화물 분자(W18O49)를 오돌토돌하게 정렬해 나노 반도체를 합성했다. 이 나노 반도체의 표면을 단분자막으로 코팅해 물속에서도 젖지 않는 메모리 소자를 개발했다.
용 교수팀이 개발한 연잎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 오염물질이 묻지 않는 섬유, 스스로 깨끗해지거나 성에가 끼지 않는 유리 등이다. 생체모방공학의 교과서인 연잎의 진가는 지금부터다.
[촘촘한 보라색 섬모가 텅스텐 산화물로 만든 나노와이어다. 연잎의 표면과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가운데 노란색으로 이뤄진 것은 나노와이어에 금을 증착시킨 것이다. 왼쪽 아래와 가운데 보이는 까만 막대가 전극이다. 이들로 회로를 만들어 전류를 흘렸다 끊었다 하는(스위칭) 저항메모리 반도체 성질을 구현했다. 오른쪽 아래 작은 그림은 회로도이다.]
[텅스텐 와이어를 연잎의 섬모 모양으로 설계해 물이 묻어도 반도체 성질을 잃지 않는 반도체 만들기에 성공했다.]
6 거미줄 방탄조끼
기관총도 막아낼까
갈등하는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필살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화려한 필살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도심 빌딩 속을 날아다니는 모습만 그려진다. 그것마저도 거미줄에 매달려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그래도 스파이더맨을 슈퍼히어로로 만든 힘은 어디서 왔을까. 위태해 보이는 가느다란 거미줄이 아닐까. 어떻게 저런 얇은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고 몸을 지탱하는 것일까. 비밀은 거미줄의 나노구조에 있다. 선과 블록의 나노구조 배열이 엄청나게 질긴 거미줄을 만들어낸다.
거미줄의 배열구조에 착안한 과학자는 거미줄보다 6배 더 질긴 섬유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김선정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팀은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를 거미줄의 배열 구조로 결합시켜 훨씬 강한 신소재를 만들어냈다. 방탄조끼에 사용하는 합성섬유 케블라보다 12배 이상 튼튼해 우수한 인공근육 소재로 쓸 수 있다.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주는 인공근육 소재는 강하고 유연하면서도 전기가 잘 통해야 한다.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가 그런 특성을 가진 대표적인 소재다. 그러나 그래핀은 2차원 평면 구조로 이뤄져 섬유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탄소나노튜브로 인공근육 섬유를 만들었다. 하지만 탄소나노튜브는 섬유로 만들면 서로 엉키는 성질이 있어 성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탄소나노튜브 섬유를 만든 뒤엉킨 부분을 강제로 풀어 다시 배열하는 후처리 과정이 있지만 방법이 복잡했다.
과학자들에게 힌트를 준 것은 거미줄이다. 2차원 평면인 그래핀과 가는 선 모양의 탄소나노튜브가 결합한 뒤 스스로 배열되도록 하자 추가 공정 없이도 강력한 섬유 소재를 만들 수 있었다. 이는 더욱 강력한 방탄조끼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방탄조끼를 입고 전장에 나가거나 대테러 작전에 나서는 군인들은 앞으로 거미를 발견할 때마다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거미줄의 나노 구조 배열을 모방해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를 네트워크로 결합시켰다. 그래핀 섬유의 표면.]
7 딱정벌레-도마뱀-잠자리
누구 접착제가 가장 강할까
생체모방공학으로 탄생한 아이디어 중 일상생활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것은 ‘찍찍이’라고 불리는 접착제가 아닐까.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을 모방해 만든 접착 재료가 이제는 딱정벌레로 확대됐다(과학동아 3월호 136페이지 기사 참조). 서갑양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한 접착 재료에 이어 최근에는 딱정벌레의 날개와 몸통이 닿는 부위를 이용해 더 강력한 접착 재료를 개발한 것이다.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는 갈고리 모양의 섬모가 달린 면과 고리가 달린 반대쪽 면으로 이뤄져 있다. 서로 대면 섬모와 고리가 맞물려 매우 강력하게 붙는다. 생체모방 벨크로를 탄생케 한 첫번째 ‘스승’은 게코도마뱀이다. 게코도마뱀은 발바닥에 50~10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섬모가 촘촘히 나 있다. 이는 도마뱀이 벽이나 천장에 거꾸로 붙어 있어도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접착력을 만든다. 서갑양 교수는 실리콘 고분자로 만든 접착면에 도마뱀 발바닥의 섬모 역할을 하는 미세 돌기를 새겨 넣어 도마뱀 접착 재료를 개발했다.
두번째 스승은 딱정벌레다. 딱정벌레는 겉날개를 닫고 있다가 날아가려고 할 때 겉날개를 열어 속에 접혀 있는 뒷날개를 펼친다. 겉날개와 몸통이 닿는 부분이 닫고 있을 때는 단단히 고정돼 있지만 날려고 할 때는 매우 쉽게 떨어진다. 딱정벌레 접착제는 이런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서갑양 교수가 최근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잠자리다. 수놈이 암놈에 붙을 때의 메커니즘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서 교수가 또 어떤 큰일을 낼지, 생체모방의 한계는 어디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딱정벌레 날개 원리가 들어있는 테이프.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세한 섬모가 촘촘히 박혀 있다. 분자 사이에 반데르발스힘이 작용해 옆으로 잡아당길 때 잘 안떨어진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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