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5일 금요일

알기쉬운 내진설계(Seismic Design)의 원리



   

2010년 거대한 지진이 아이티를 강타했다. 지진의 여파로 도시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고 20만명 이상의 무고한 인명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몇 주 뒤 칠레이서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여 도시가 파괴되고 수십만채의 건물이 무너졌다.  인명피해 또한 수 천명이 이르렀다. 그러면 지진으로 인해 이토록 많은 인명피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지진학자들은 지진 자체에 의해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기 보다는 지진으로 인한 구조물의 붕괴가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다고 보고하고 있다. 아이티 지진에서도  보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물 붕괴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심한 부상을 당하였다. 지금 이시각에도 전세계 수많은 지진 학자들이 지진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지진이 일어날 정확한 위치, 규모, 시간을 예측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많은 과학자들은 지진위험도에 대한 해결책은 지질학이 아니라 기술공학, 특히 내진설계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진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내진설계를 얘기 하기에 앞서 지진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 보자. 아직도 지진이 일어나는 원인을 100% 규명하지 못했지만 많은 지진학자들에 의해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설은 판 구조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수 많은 판으로 퍼즐처럼 맞추어져 있고 마치 액체위를 부드럽게 떠 다니고 있는데 이러한 판과 판의 움직임에 충돌이 가해졌을 때 그 충격이 하나의 커다란 파장이 되어 지표면을 따라 움직이게 되고, 이 파장이 강력한 지반 운동을 수반하여 건물에 피해를 주게 된다. 이것이 곧 우리가 얘기하는 지진인 것인데, 쉽게 생각하서 여러분이 사람이 많이 붐비는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깨를 서로 부딛히는 상황이 크고 작은 지진이 생기는 원리라고 보면 되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다.) 참고로 지진파에는 P파, S파, 그리고 표면파가 있으며 표면파가 일반적으로 건물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진설계란?

내진설계(耐震設計)'라 함은 구조공학적 시각에서 강한 지반 운동에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것을 말하는데, 즉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구조물의 내구성을 말한다. 지진으로 생기는 지진파에 의해 건물은 지반으로 부터 좌우 또는 상하로 발생하는 힘을 받게 되고 이 힘을 견뎌내지 못하면 기능적 또는 구조적 결함을 유발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 붕괴에 이르게 된다. 국제 건축 법규 IBC(International Building Code)에 의하면 건물은 기본적으로 "1. 소규모 지진에 피해가 없어야 하며 2.중규모 지진에 기능적 결함은 발생할 수 있느나 구조적 결함이 없어야 하고  3. 대규모 지진에 구조적 기능적 결함은 발생하더라고 붕괴되서는 안된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공학적으로 상당히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임에는 틀림 없지만 몇가지 간단한 예시를 통해 내진설계의 기본 원리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다.



1. 가벼운게 좋아?
 아마 대다수의 여러분들은 뉴턴의 제 2 운동 법칙에 대해 한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힘은 곧 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한다는 것인데 이 원리가 내진설계를 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여러분은 일정하게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버스가 속도나 방향을 바꾸지 않고 일정하게 달릴 때는 손잡이를 잡지 않고도 균형을 잡기가 쉬울 것이다. 질량은 존재하나 가속도가 0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급정지를 하거나 급출발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여러분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또는 뒤로 튕겨져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속도의 변화로 인해 가속도가 생겼기 때문에 여러분이 관성의 힘을 받게 되고 그 결과 몸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건물이 지진파를 만났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로인해 건물은 마치 시계추처럼 흔들리게 될 것이다.  마치 어떤 힘이 건물의 상부를 강타한 것 처럼 말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일정하게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 몸이 가벼운 사람과 무거운 사람이 같이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급정지를 했다. 둘 중에 누가 더 많은 힘을 받고 그 힘에 대항하기 위해 누가 더 많은 힘이 필요하게 될까? 당연히 무거운 사람이 더 많은 힘을 받고 몸이 쏠리지 않으려고 더 많은 힘을 쓰게 될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뉴턴의 제 2운동 법칙에 의해 가속도는 같지만 질량이 클 수록 많은 힘을 받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진설계을 함에 있어서 한가지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건물의 무게를 줄일 수록 지진에 의해 발생하는 횡력이 같은 조건하의 더 무거운 건물에 비해 덜 할 것이라는 것이다. 건물이 견뎌내야 할 힘이 줄어들면 줄어 들수록 디자인에 대한 자유도가 높아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참고로 내풍설계인 경우는 건물이 무거울 수록 유리하다.)


2. 진동을 잡아라! 

누구나 한번쯤은 지진에 대한 뉴스나 동영상을 접하면서 고층 건물이 마치 오뚜기 처럼 흔들리는 것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불안하게 보이겠지만 역설적으로 일정한 범위 내에서 흔들리는 것 (delta P effect)은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정한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흔들림은 건물에 피로를 쌓이게 해 파괴에 이를 수도 있게 하는데 이를 제어해주는 일은 또 다른 중요한 내진설계의 원리라 하겠다.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뒤에서 부모님이 그네의 움직임에 맞춰 밀어주면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갔던 기억, 하지만 더 멀리 더 높이 올라가면 갈 수록 그만큼 위험도도 커지는 법이다. 건물도 마찬가지이다. 지진에 의해 건물은 진동을 하고 있는데 건물의 진동주기를 배가시키는 힘이 계속 가해진다고 가정해 보자. 건물은 더 크게 진동할 것이고 결국 건물 자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결국 건물은 건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네를 멈추는 일만 남았다. 일단 아무런 힘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그네는 멈출 것이고, 뒤에서 그네를 밀어주시던 부모님이 그네를 멈추게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네가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힘을 가해서 말이다. 건물이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추를 움직에 건물에 가해지는 진동을 최소화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댐퍼(Damper)의 원리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테니스를 배울 때 테니스 라켓에 댐퍼를 끼우는 것을 몰라 팔에 엄청난 진동이 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처음에는 테니스라는 운동이 이런가 보다 하다하고 참고 쳤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서 아는 후배한테 물어보니 라켓에 댐퍼를 끼우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 댐퍼를 끼고 나서는 심한 진동을 느끼지 못했는데 건축에 쓰이는 댐퍼도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초고층 건물의 최상층 전망대에 올라가면 심심치 않게 건물의 댐퍼를 구경할 수 있는데, 대만의 Taipei 101이 좋은 예라 하겠다. 


3. 유연함이 필요해!

건축물은  종종 사람의 인체에 비유되곤 한다. 우리의 피부에 해당하는 외관이 있고, 뼈대와 관절에 해당하는 구조 부재와 부재간 접합, 그리고 혈관에 해당하는 각종 설비배관들이 그것이다. 이중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뼈대에 해당하는 구조 부재와 부재간의 접합방식 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구조라는 것이 마냥 크고 튼튼한 것만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건물의 용도와 규모, 그리고 그 건물이 어떤 지진대에 속해 있느냐 등에 따라 그에 적합한 구조방식이 분류되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각각의 구조부재가 받는 힘을 얼마나 건물 전체에 골고루 잘 분산하고 이 힘을 최종 목적지에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에 있다. 때로는 구조부재가 일정한 범위내에서 휘어짐으로써 그 힘들을 다른 부재로 골고루 분산시키는데 이를 모멘트 프래임(Moment Framing)이라 하고 가해졌던 힘이 사라지면 다시 원래의 형태와 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이를 건물의 연성(Ductility)라 한다.)  


따라서 각각의 구조부재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한 건물이 흔들린다고 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구조부재가 자신의 한계(탄성한계)를 넘어서서 변형이 생겨 다시는 원래의 형태와 위치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마치 늘어난 스프링 처럼 말이다. 모멘트 프래임 이외에도 내진설계에 대표적으로 쓰이는 구조방식으로는 브레이싱(Bracing)과 내력벽 구조 (Shear Wall)가 있는데, 어떤 구조방식이 내진설계에 더 좋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IBC에 의하면 모멘트 프래임을 기본으로 추가적으로 다른 구조방식과 혼용해서 설계하기를 명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간단하게 나마 내진설계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기에 적은 내용은 최소한 건축 전공과 관련없이 누구나 알면 좋은 내용을 요약해 본 것이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최대한 일상의 예시를 통해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아무쪼록 이 글이 여러분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고고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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