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7일 월요일

福이란 행운이 아니라 재앙 없는 삶이 이어지는 것"

예부터 돼지는 우리에게 복과 재물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게다가 올해는 황금돼지해. 그래서일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함께 "새해엔 부자 되세요!"라는 새해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게 부자라고 다 행복하고, 가난하다고 다 불행한 것일까.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의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부자의 기준을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 가진 것보다 더 원하면 가난'이라고 간단 명쾌하게 정의한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이 꼭 돈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복이란 어떤 행운이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재앙 없는 생활이 이어지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설파한 순자(荀子)의 말에 요즘 크게 공감한다. 새해 첫날, 늙고 아프신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니, 어머니는 새해를 맞아 너무도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얘야, 내가 올해도 한 살을 더 먹는 선물을 받았구나!"

삶이란 게 얼마나 연약하고 소중하며 또 예측 불가한 것인가. 내 삶이지만 삶은 권리가 아니라 매일 주어진 선물일 뿐이다. 그래서 재작년부터는 새해가 되면 소원을 빌기보다 감사 리스트라는 걸 적어본다. 나 자신, 내 삶에 대해, 또 누군가에게 받은 위로나 사랑과 배려에 대한 소소한 감사 리스트를 현재 48개까지 적었다. 48개의 선물, 읽다 보니 나도 꽤 행복한 기분이 된다.

행복한 새해를 선물할 따스한 작품으로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을 소개한다. 일본은 매년 마지막 날 '해 넘기기 우동'을 먹는 풍습이 있다. 홋카이도(北海道)의 우동 가게인 '북해정'에 12월 31일 늦은 밤에 마지막 손님으로 어린 두 아들과 어머니가 들어와 미안해하며 150엔짜리 우동 1인분만 주문한다. 행색이 초라한 세 모자에게 무뚝뚝한 주인은 주방에서 우동 반 덩어리를 더 넣어 1.5인분의 우동을 내온다. 주인의 서비스를 아무도 눈치를 못 채고, 세 모자는 푸짐한 1인분의 우동을 너무도 맛있게 나눠 먹는다. 150엔을 지불하고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는 그들에게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한다.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일러스트=이철원
그다음 해도 가난한 세 모자가 찾아와 미안해하며 우동 1인분을 주문한다. 그다음 해 마지막 날에는 주인 내외가 세 모자를 기다린다. 그새 200엔으로 오른 우동 값을 메뉴에 150엔으로 고쳐 놓고 그들이 앉았던 예의 2번 테이블에 예약석 팻말을 올려 놓고서. 10시 반이 되자 지난해보다 더 자란 아들들과 변함없이 낡은 코트를 입은 어머니가 웬일인지 우동 2인분을 시킨다. "우동 2인분!"이라고 맞받아친 주인은 주방에서 둥근 우동 세 덩이를 뜨거운 국물에 넣는다.

그리고 주인 내외는 무심한 척 세 모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그날이 마침 죽은 아빠의 빚을 다 갚은 날이라고 고백하고, 막내 아들 준이 작문으로 발표한 '우동 한 그릇'이란 글의 내용을 얘기한다.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신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어른이 되면,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주인 내외는 카운터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 한 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몰래 닦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십수 년의 세월이 흘러 두 청년을 데리고 들어선 노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저… 우동… 3인분입니다… 괜찮겠죠?"

두 청년은 타지로 가서 의사가 된 큰아들과 우동집 주인 대신 은행원이 되어 나타난 막내.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동생과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포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우동 한 그릇 값 정도일지 모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로 대신한 진심 어린 응원과 함께. "자, 2019년 출발입니다! 힘내세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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