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7일 월요일

글로벌 두뇌 모인 工大 옆으로… 애플·구글·IBM이 이사왔다

'유럽의 MIT' 스위스 취리히 공대
 

라파엘로 단드레아 취리히공대 교수는 창업으로 엄청난 부를 얻었다. 공동 창업한 물류 로봇 개발사 '키바 시스템스'를 2012년 7억7500만달러(약 8700억원)에 팔았다. 상대는 아마존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미 코넬대 교수를 지내다 2007년 취리히공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창업한 회사는 이뿐 아니다. 그는 취리히공대에 가로·세로·높이 10m인 실내 드론 훈련장인 '플라잉 머신 아레나'를 만들었다. 여기서 드론들이 서로의 위치를 위성항법장치(GPS)로 확인하면서 충돌 없이 비행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평창올림픽 때 인텔이 선보인 '드론 군무(群舞)' 기술의 탄생지다. 이 기술로 창업한 '베리티 스튜디오스'는 2014년부터 '태양의 서커스단' 뮤지컬에 드론 군집 비행을 선보이고 있다.
 
왼쪽 사진은 유명 뮤지컬 ‘파라무어’에 나오는 드론 군집 비행 모습. 취리히공대의 라파엘로 단드레아 교수팀이 개발한 드론 기술을 활용했다. 오른쪽 사진은 취리히공대 마르코 후터(맨 왼쪽) 교수가 연구원들과 네 발 로봇 ‘애니말’을 사이에 두고 토론하는 모습. 연구원 12명의 국적은 8국에 달한다. /베리티 스튜디오스·취리히=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융합 로봇 연구를 이끌고 있는 로버트 리너 교수는 독일 뮌헨공대에서 취리히공대로 옮겼다. 그는 취리히의대 연구진과 함께 팔에 장착하는 재활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이미 상용화돼 850대 이상이 각국 병원에서 쓰인다. 리너 교수는 재활 로봇을 만드는 벤처기업 '호코마'를 창업했다. 2016년 장애인을 위한 로봇이 기술을 겨루는 국제대회 '사이배슬론' 대회를 개최한 것도 그였다.
 
취리히공대 교수의 60%는 단드레아, 리너 교수처럼 외국인이다. 세계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김상배 미 MIT 교수는 "파격적인 지원 덕분에 저명한 미국 교수들이 취리히공대로 스카우트되기도 한다"며 "MIT 교수였던 에밀리오 프라졸리 교수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프라졸리는 자율주행차 분야의 선두를 달리는 벤처기업 '누토노미'의 창업자다. 그는 2015년 취리히공대로 자리를 옮겼다. 취리히공대는 신임 교수들에게도 초임 18만달러(약 2억원)를 제공한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스위스는 높은 물가로 유명하지만 이 학교 학부와 대학원의 한 학기 등록금은 70만원대다. 박사 과정 연구원은 연간 6000만원 이상을 받는다.
로봇 분야 많은 인재가 몰리는 취리히공대가 선구적이기 때문이다. 리노 구젤라 전 총장은 "1980년대 중반 자율 비행 헬리콥터 개발 프로젝트가 드론 연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로봇공학연구소는 1990년 출범했고 2007년 이 연구소가 로봇공학과 지능 시스템 연구소로 커졌다.
 
상용화 기술에 주력해 창업을 독려하는 정책도 인재들의 욕구를 자극한다. 취리히공대는 1년에 한 번씩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업경진대회를 열어 수상자들의 창업을 지원한다. 1996년 이후 여기서 탄생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은 380개에 이른다. 매년 30개 가까이 탄생해 5년 뒤에도 95%가 살아남는다.

글로벌 기업은 이런 풍토를 좋아한다. 대학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 안에 구글과 IBM, 디즈니, ABB 등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취리히공대는 2015년 디즈니 연구소와 함께 수직 벽을 바퀴와 프로펠러의 힘으로 등반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버티고(Vertigo)'라는 이름의 로봇은 위험한 곳을 접착물이나 등반 장치 없이 움직이면서 사람 대신 작업하는 것이 목표다.

취리히의 구글 캠퍼스에는 인공지능 전문가 250여 명을 포함해 2500여 명의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다. 구글 사옥 중 캘리포니아 구글 캠퍼스 다음으로 최대 규모다. 취리히공대를 오가는 넷 중 한 명은 글로벌 기업의 연구원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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