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지켜주지도 구해주지도 못한 모든
어른이 죄인이다.
물이 들어차는 선실에서 열일곱 살 딸이 엄마 전화기에 제 얼굴을 찍어 띄우며 말했다.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아들은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 고백했다. '엄마, 말 못할까 봐 미리 보내놓는다. 사랑해.' 딸은 도리어 아버지를 다독였다. '아빠 걱정 마, 구명조끼 입고 애들이랑 뭉쳐 있으니까.' 연극반 아이가 남긴 말도 '사랑한다'였다. '연극부 다들 사랑해.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용서해줘.' 2학년 4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과 나눈 대화방 문자도 '전부 사랑합니다'로 끝났다.
단원고 아이들은 배가 기울고 가라앉고 뒤집히는 순간에도 엄마와 아빠와 친구를 생각했다. 질식하도록 밀려드는 두려움 속에서도 못다 한 말 '사랑'을 떠올렸다. 이렇게 고운 아이들을 누가 차가운 바닷속 어둠에 가뒀나. 다 내 딸, 내 아들 같아 가슴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솟는다.
배가 기울기 10분 전 아들은 아침 진도 바다 풍경을 찍어 보냈다. 엄마는 사고 소식을 듣고 애타게 아들을 찾았다. '아들…' '아들 대답 좀 해봐.' 아들은 아무 대답이 없다. 진도로 달려온 엄마가 절규했다. "나는 이제 누굴 보고 살라고." 소식 끊긴 딸에게 애원하는 엄마도 있다. "제발 한 번만 엄마 전화 받아봐라, 제발." 엄마들은 바람 찬 아침 선착장에 서서 하염없이 남쪽 바다를 바라봤다. 시신이 돼 돌아온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못해준 것만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자식 하나만 둔 부모가 태반이다.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을 그 마음이 지금 이 땅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배를 탔던 단원고 2학년 325명 가운데 75명만이 구출됐다. 한 반 37명 중에 한 명, 두 명씩만 살아온 학급도 있다. 학부모, 학생들은 한때 '모두 구조됐다'는 엉뚱한 전갈에 박수치고 환호하다 곧바로 절망에 빠졌다. 온 학교가 탄식과 통곡에 잠겼다. 살아 돌아온 아이들, 1·3학년 아이들에게도 가누기 힘든 가책과 상처가 남았을 것이다. 멍든 마음을 심리 치료로 어루만져줘야 한다.
배가 기울기 시작해 침몰하기까지 두 시간 넘도록 어른들은 뭘 했나. 생존자 집계조차 못 하고 허둥댔다. 배에 갇힌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애태워 기다리는 부모들을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지켜주지도 구해주지도 못한 모든 어른이 죄인이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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