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영재 만들기 과열 … 상위 대학 가는 지름길 입소문
초등생 토론 주제 대학 과제 수준
학부모들 교수 도움 받아 자료준비
8시간에 150만원짜리 특강까지
"문제 쉽게 출제해 사교육 막아야"
주부 한모(46·서울 서초구)씨는 요즘 초등 5학년
아들이 참가한 ‘전국청소년과학탐구 토론대회’ 때문에 바쁘다. 학생 3명이 팀을 꾸려 출전하는데 매주 엄마들이 모여 아이들 준비를 돕고 있어서다.
과학의 달(4월)에 맞춰 매년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최하는 과학탐구대회는 탐구토론·과학미술·기계공학·융합과학·전자통신·항공우주토론
등 6종목으로 구성된다. 학교별 예선을 거쳐 교육지원청 대회(5월), 시·도교육청 대회(6월), 전국대회(8월) 순으로 치러지는데 단계별로
입상하면 상을 준다.
올해 초등학교 탐구토론 주제는 ‘미세먼지의 발생 이유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피해를 줄일 방안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라’다. 한씨는 “컴퓨터로 작성한 자료의 발표와 토론을 대비 중인데 너무 힘들다”며 “다른 팀 학부모는 전문기관 연구실에서 쓰는 공기 질 측정장비를 빌려 오는가 하면 전공 교수나 대학원생의 도움까지 받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직장맘 이모(47·경기도 고양시)씨도 미세먼지 토론대회 때문에 고민이다. 매일 퇴근 후 서너 시간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과학서적을 뒤진다. 장래 희망이 과학자인 5학년 딸의 팀은 20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야 한다. 이씨는 “미세먼지가 건강에 왜 나쁜지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지만 피해를 줄일 방안은 실험한 뒤 보고서에 사진을 담아야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더라”며 “공대에 다니는 조카에게 도움을 청하려는데, 학생이 아니라 부모가 참가하는 대회 같다”고 했다.
미래부 주최 과학탐구 토론대회가 초등학생 사이에 필수 코스로 인식되면서 과열현상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주제가 초등학생이 스스로 하기에 버거운 수준이어서 학부모들이 골치를 썩는다.
이번 미세먼지 주제는 지난해 방송통신대 한 교양과목의 중간고사 과제와 거의 같다. 과제는 ‘중국의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나라에서 실현 가능한 대처방안에 대해 서술하라’는 것이었다. 과학교사 출신인 서울 S고 교감은 “지난해 초등학교 기계공학 종목에선 ‘제한시간 내에 친환경에너지를 활용한 환경보존용 기계장치 만들기’가 나왔는데 교사도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꼬집었다.
난도가 높다 보니 사교육기관에 의지하는 학부모가 많다. 서울 강남 일대 과학전문학원에선 2월께부터 학교별 대회를 겨냥해 ‘과학탐구토론대회 특강반’을 운영한다. 수강료가 팀당(3명) 120만~150만원이다. 강사가 네 차례 두 시간씩 수업하고 보고서와 발표자료 작성을 도와준다. 윤모(42·여·서울 강남구)씨는 “맞벌이라 도와주기 어려워 학원에 문의했더니 ‘늦어도 2월까진 등록해야 수강할 수 있다’며 자리가 없다더라”고 말했다. 학교 대표로 선발돼 교육지원청 대회에 나가면서 학원 도움을 받으려면 수강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지난해 탐구대회에서 입상한 초등팀 지도교사는 “4년 정도 학원에 다닌 학생이 전국대회 상을 받더라”고 귀띔했다.
◆영재 ‘입시 벨트’의 첫 관문=과학탐구대회가 인기를 끄는 것은 ‘영재학급-영재교육원-과학영재학교’로 이어지는 입시 벨트에 올라타는 첫 관문이어서다.
과학탐구대회 수상 여부는 교사가 영재교육 선발 대상자를 추천할 때 우선 고려하는 사안이다. 학교별로 운영되는 영재학급이나 시·도교육청 영재교육원에 들어가기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영재교육원에 다니면 그동안 영재학교나 과학고에 들어가기도 수월했다. 이투스청솔 오종운 평가이사는 “서울대 합격자 실적을 보면 영재학교나 과학고가 상위권을 휩쓴다”며 “이과를 염두에 둔 학생과 학부모가 매우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과학고 등 전국 7개 과학영재학교의 올해 입학 경쟁률은 평균 18.41대 1로, 지난해(16.09대 1)보다 높아졌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과학영재학교는 과학고나 외고와 달리 선행학습 금지법 적용 대상도 아니어서 심화·선행학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교육부는 외고·국제고·자사고·과학고의 입학전형에서 자기소개서나 교사추천서에 영재교육원 이수 여부를 기록하면 0점 처리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과학영재학교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이 같은 제약을 받지 않는다. 과학고 입시에서도 여전히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영재교육 이수 여부가 기재된 학교생활기록부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과학창의재단 홈페이지에는 “사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방 학생들이 불리하다” “전공 교사도 가르치기 어려운 문제를 내고 있다”는 불만의 글이 올라와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윤지희 대표는 “초등학교에서 실험·실습할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데 사교육까지 동원해 입시 스펙을 쌓는 대회라면 과학에 소질 있는 학생을 발굴하자는 취지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 S초등학교 교감은 “과학탐구대회와 영재교육원 모두 공교육 과정인데 거꾸로 사교육을 부추기는 어이없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려면 문제 난도를 낮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학창의재단 측은 “출제위원들에게 되도록이면 교과 과정 이내로 조정하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중앙일보
올해 초등학교 탐구토론 주제는 ‘미세먼지의 발생 이유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피해를 줄일 방안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라’다. 한씨는 “컴퓨터로 작성한 자료의 발표와 토론을 대비 중인데 너무 힘들다”며 “다른 팀 학부모는 전문기관 연구실에서 쓰는 공기 질 측정장비를 빌려 오는가 하면 전공 교수나 대학원생의 도움까지 받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직장맘 이모(47·경기도 고양시)씨도 미세먼지 토론대회 때문에 고민이다. 매일 퇴근 후 서너 시간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과학서적을 뒤진다. 장래 희망이 과학자인 5학년 딸의 팀은 20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야 한다. 이씨는 “미세먼지가 건강에 왜 나쁜지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지만 피해를 줄일 방안은 실험한 뒤 보고서에 사진을 담아야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더라”며 “공대에 다니는 조카에게 도움을 청하려는데, 학생이 아니라 부모가 참가하는 대회 같다”고 했다.
미래부 주최 과학탐구 토론대회가 초등학생 사이에 필수 코스로 인식되면서 과열현상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주제가 초등학생이 스스로 하기에 버거운 수준이어서 학부모들이 골치를 썩는다.
이번 미세먼지 주제는 지난해 방송통신대 한 교양과목의 중간고사 과제와 거의 같다. 과제는 ‘중국의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나라에서 실현 가능한 대처방안에 대해 서술하라’는 것이었다. 과학교사 출신인 서울 S고 교감은 “지난해 초등학교 기계공학 종목에선 ‘제한시간 내에 친환경에너지를 활용한 환경보존용 기계장치 만들기’가 나왔는데 교사도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꼬집었다.
난도가 높다 보니 사교육기관에 의지하는 학부모가 많다. 서울 강남 일대 과학전문학원에선 2월께부터 학교별 대회를 겨냥해 ‘과학탐구토론대회 특강반’을 운영한다. 수강료가 팀당(3명) 120만~150만원이다. 강사가 네 차례 두 시간씩 수업하고 보고서와 발표자료 작성을 도와준다. 윤모(42·여·서울 강남구)씨는 “맞벌이라 도와주기 어려워 학원에 문의했더니 ‘늦어도 2월까진 등록해야 수강할 수 있다’며 자리가 없다더라”고 말했다. 학교 대표로 선발돼 교육지원청 대회에 나가면서 학원 도움을 받으려면 수강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지난해 탐구대회에서 입상한 초등팀 지도교사는 “4년 정도 학원에 다닌 학생이 전국대회 상을 받더라”고 귀띔했다.
◆영재 ‘입시 벨트’의 첫 관문=과학탐구대회가 인기를 끄는 것은 ‘영재학급-영재교육원-과학영재학교’로 이어지는 입시 벨트에 올라타는 첫 관문이어서다.
과학탐구대회 수상 여부는 교사가 영재교육 선발 대상자를 추천할 때 우선 고려하는 사안이다. 학교별로 운영되는 영재학급이나 시·도교육청 영재교육원에 들어가기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영재교육원에 다니면 그동안 영재학교나 과학고에 들어가기도 수월했다. 이투스청솔 오종운 평가이사는 “서울대 합격자 실적을 보면 영재학교나 과학고가 상위권을 휩쓴다”며 “이과를 염두에 둔 학생과 학부모가 매우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과학고 등 전국 7개 과학영재학교의 올해 입학 경쟁률은 평균 18.41대 1로, 지난해(16.09대 1)보다 높아졌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과학영재학교는 과학고나 외고와 달리 선행학습 금지법 적용 대상도 아니어서 심화·선행학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교육부는 외고·국제고·자사고·과학고의 입학전형에서 자기소개서나 교사추천서에 영재교육원 이수 여부를 기록하면 0점 처리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과학영재학교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이 같은 제약을 받지 않는다. 과학고 입시에서도 여전히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영재교육 이수 여부가 기재된 학교생활기록부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과학창의재단 홈페이지에는 “사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방 학생들이 불리하다” “전공 교사도 가르치기 어려운 문제를 내고 있다”는 불만의 글이 올라와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윤지희 대표는 “초등학교에서 실험·실습할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데 사교육까지 동원해 입시 스펙을 쌓는 대회라면 과학에 소질 있는 학생을 발굴하자는 취지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 S초등학교 교감은 “과학탐구대회와 영재교육원 모두 공교육 과정인데 거꾸로 사교육을 부추기는 어이없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려면 문제 난도를 낮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학창의재단 측은 “출제위원들에게 되도록이면 교과 과정 이내로 조정하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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