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수많은 수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두 사람만 꼽으라면 필자는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와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 1777-1855)라고 답할 것이다. 가우스는 ‘수학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일러 역시 대단히 많은 업적을 남겨서 수학과 물리학의 교과서에 ‘오일러의 정리’ 또는 ‘오일러의 공식’으로 이름 붙은 것들이 너무도
많아서 혼동이 생길 정도이다.
오일러는 유명한 난문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 n이 3 이상일 경우에는 이 식을 만족하는 x, y, z의 세 자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는 정리에서 n이 3인 경우에 대하여 일찍이 증명한 바 있다. 또한 아직까지도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는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골드바흐의 추측(Goldbach’s conjecture) 역시 골드바흐(Christian Goldbach; 1690-1764)와 오일러의 편지 왕래에서 시작되었다.
이처럼 오일러는 수학사의 중요한 대목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등장하는데, 그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쾨니히스베르크의 7다리 건너기’ 문제이다.
18세기 무렵 유럽의 동프로이센에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러시아의 영토인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이다. 이 도시를 가로 질러서 큰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는데, 모두 7개의 다리가 강 위에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이 도시의 시민 하나가 “한 다리를 두 번 건너지 않고, 단 한 번씩으로 7개의 다리를 모두 건널 수 있을까?” 라는 문제를 내었다. 재미있는 문제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 방법을 알면 외지인의 관광 안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여 앞 다투어 풀이에 도전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제대로 풀었다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이 문제는 널리 소문이 나서, 독일 전역에서도 아주 유명한 문제가 되기에 이르렀다.
마침 그 무렵, 당대의 대 수학자 오일러가 쾨니히스베르크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시민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일러에게 이 문제를 물어 보기로 하였다. 자신들이 못 푼 문제를 오일러 같은 대 수학자가 속 시원히 해결해 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받아 본 오일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뜻밖에도 “이런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풀리지 않는다.”고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오일러는 자신의 말뜻이 잘못 전달되었음을 깨닫고, “내가 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능력이 부족해서 풀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 문제는 어느 누구도 풀 수 없는, 다시 말하면 원래부터 답이 없는 문제” 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그토록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느냐고 어리둥절해 하는 시민들에게, 오일러는 그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7개의 다리를 한 번에 건너는 문제를 도형으로 표시해 보면, 결국 아래와 같은 도형을 같은 곳을 두 번 지나지 않으면서 붓을 떼지 않고 한 번에 그리는 문제, 즉 ‘한붓그리기’ 문제로 귀착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한붓그리기가 가능한 도형은 홀수 점의 개수가 0이거나, 2인 경우에만 해당될 뿐, 홀수점이 그보다 많으면 한 번에 떼지 않고 그리기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쾨니히스베르크의 7다리 문제와 같은 도형은 홀수 점의 개수가 4개이므로, 원천적으로 한붓그리기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오일러는 한붓그리기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2개의 정리를 제시하였다.
첫 번째 정리는 ‘모든 도형의 홀수 점의 개수는 짝수 개이다’라는 것이고, 두 번째 정리는 ‘도형의 모든 꼭짓점이 짝수 개이든가, 즉 홀수 점의 개수가 0이든가 또는 단 두 개의 홀수 점을 가지는 경우에만 한붓그리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정리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1) 짝수점만으로 된 도형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그려도 마지막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한붓그리기가 가능하고, 2) 홀수점이 2개인 도형은 한쪽 홀수점에서 출발하여 나머지 홀수점에서 끝나는 한붓그리기가 가능한데, 홀수점 이외의 지점에서 출발하면 한붓그리기는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다.
수학자 오일러는 1707년 4월15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인 그는 베르누이(Jean Bernoulli; 1667-1748)에게서 수학을 배웠으며, 나중에는 수학뿐만 아니라 천문학, 물리학, 의학 등도 폭넓게 연구하여 많은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천부적인 재능에 엄청난 노력을 겸비한 그의 연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탄을 자아내었으나, 지나치게 눈을 혹사한 나머지 말년에는 실명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에도 더욱 정력적으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방대한 양의 저술과 논문을 남겼다. 1783년 9월7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천왕성의 궤도 계산과 관련된 연구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오일러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전집을 발간하려 했으나 너무 양이 방대하고 많은 자금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미뤄지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특수출판사가 설립되어 45책에 이르는 오일러 대전집이 발간되었다.
오일러는 유명한 난문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 n이 3 이상일 경우에는 이 식을 만족하는 x, y, z의 세 자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는 정리에서 n이 3인 경우에 대하여 일찍이 증명한 바 있다. 또한 아직까지도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는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골드바흐의 추측(Goldbach’s conjecture) 역시 골드바흐(Christian Goldbach; 1690-1764)와 오일러의 편지 왕래에서 시작되었다.
이처럼 오일러는 수학사의 중요한 대목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등장하는데, 그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쾨니히스베르크의 7다리 건너기’ 문제이다.
18세기 무렵 유럽의 동프로이센에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러시아의 영토인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이다. 이 도시를 가로 질러서 큰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는데, 모두 7개의 다리가 강 위에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이 도시의 시민 하나가 “한 다리를 두 번 건너지 않고, 단 한 번씩으로 7개의 다리를 모두 건널 수 있을까?” 라는 문제를 내었다. 재미있는 문제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 방법을 알면 외지인의 관광 안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여 앞 다투어 풀이에 도전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제대로 풀었다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이 문제는 널리 소문이 나서, 독일 전역에서도 아주 유명한 문제가 되기에 이르렀다.
마침 그 무렵, 당대의 대 수학자 오일러가 쾨니히스베르크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시민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일러에게 이 문제를 물어 보기로 하였다. 자신들이 못 푼 문제를 오일러 같은 대 수학자가 속 시원히 해결해 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받아 본 오일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뜻밖에도 “이런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풀리지 않는다.”고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오일러는 자신의 말뜻이 잘못 전달되었음을 깨닫고, “내가 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능력이 부족해서 풀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 문제는 어느 누구도 풀 수 없는, 다시 말하면 원래부터 답이 없는 문제” 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그토록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느냐고 어리둥절해 하는 시민들에게, 오일러는 그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7개의 다리를 한 번에 건너는 문제를 도형으로 표시해 보면, 결국 아래와 같은 도형을 같은 곳을 두 번 지나지 않으면서 붓을 떼지 않고 한 번에 그리는 문제, 즉 ‘한붓그리기’ 문제로 귀착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한붓그리기가 가능한 도형은 홀수 점의 개수가 0이거나, 2인 경우에만 해당될 뿐, 홀수점이 그보다 많으면 한 번에 떼지 않고 그리기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쾨니히스베르크의 7다리 문제와 같은 도형은 홀수 점의 개수가 4개이므로, 원천적으로 한붓그리기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오일러는 한붓그리기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2개의 정리를 제시하였다.
첫 번째 정리는 ‘모든 도형의 홀수 점의 개수는 짝수 개이다’라는 것이고, 두 번째 정리는 ‘도형의 모든 꼭짓점이 짝수 개이든가, 즉 홀수 점의 개수가 0이든가 또는 단 두 개의 홀수 점을 가지는 경우에만 한붓그리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정리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1) 짝수점만으로 된 도형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그려도 마지막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한붓그리기가 가능하고, 2) 홀수점이 2개인 도형은 한쪽 홀수점에서 출발하여 나머지 홀수점에서 끝나는 한붓그리기가 가능한데, 홀수점 이외의 지점에서 출발하면 한붓그리기는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다.
수학자 오일러는 1707년 4월15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인 그는 베르누이(Jean Bernoulli; 1667-1748)에게서 수학을 배웠으며, 나중에는 수학뿐만 아니라 천문학, 물리학, 의학 등도 폭넓게 연구하여 많은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천부적인 재능에 엄청난 노력을 겸비한 그의 연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탄을 자아내었으나, 지나치게 눈을 혹사한 나머지 말년에는 실명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에도 더욱 정력적으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방대한 양의 저술과 논문을 남겼다. 1783년 9월7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천왕성의 궤도 계산과 관련된 연구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오일러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전집을 발간하려 했으나 너무 양이 방대하고 많은 자금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미뤄지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특수출판사가 설립되어 45책에 이르는 오일러 대전집이 발간되었다.
ScienceTime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