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나 도르래, 구슬길, 톱니바퀴 등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연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장치를 본적이 있나요? 과학관에서 주로 만나는 이런 설계 장치를 ‘골드버그 장치’라고 합니다. ‘골드버그 장치’는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에 기반한 복잡한 장치를 의미합니다.
사실 공학 설계는 주어진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합니다.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복잡성을 최소화합니다. 그런데 골드버그 장치는 정 반대입니다. 간단한 것을 일부러 복잡하게 꼬아 만듭니다. 오늘은 공학 설계의 기본인 ‘단순 설계’ 방식과 그와 반대되는 개념인 ‘골드버그 장치’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자연은 단순하다.
자연에서 생명체는 단순 형태에서 시작해 군더더기 없는 최적의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나뭇잎은 가장 효과적인 물질 전달을 위한 패턴을 갖고 있으며, 나뭇가지는 자체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의 진리는 단순함 속에 존재합니다.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저서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이 단순한 형태로 이루어진 이유는 신의 작품이 완벽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이나, 달이 지구주위를 도는 현상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처럼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 중 위대한 것일수록 단순 명료합니다.
오랜 시간 강조되어온 미니멀리즘
▲ 애플의 iMac 과 iPod Nano 2(출처: 애플)
스티브 잡스는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더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외형 디자인뿐만 아니라 버튼, 포트, 화면 등을 모두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구성함으로써 전 세계를 열광시켰습니다. 단순화 작업은 단지 기능을 제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한 기능을 조직화하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능을 적절히 숨기거나 이동시켜 진정한 단순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단순한 공학설계’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다.
▲ 자동차 회전반경
역사적으로 복잡한 공학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 경우는 많습니다. 자동차의 차동장치를 예로 들어볼까요?
커브 길을 주행할 때 자동차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고 원활하게 회전하려면 좌우 바퀴를 다른 속도로 구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전반경에 맞춰 구동 속도를 조절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200년 전 프랑스 엔지니어 페쾨르는 이 문제를 톱니바퀴 몇 개를 써서 기구학적으로 간단히 해결했습니다.
▲ 차동장치 작동 원리와 차동 유형(출처: allegroracing)
바로 디퍼렌셜 기어(differential gear)라고 하는 차동장치입니다. 바퀴에 걸리는 저항에 따라 트랜스미션에서 전달되는 구동력을 나누어 좌우 바퀴의 회전을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한쪽 바퀴가 빙판이나 웅덩이에 빠졌을 때, 한쪽 바퀴만 열심히 헛도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차동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공학 설계는 부품 설계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 설계를 포함합니다. 생산 공정을 단순화한다는 것은 제조 공정수를 줄이고 작업을 조직화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20세기 초 헨리 포드는 가장 복잡한 기계 중 하나인 자동차의 부품을 표준화하고 생산 공정을 단순화함으로써 일반 노동자들 누구나 쉽게 작업할 수 있는 컨베이어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당시 인기 모델이던 모델 T의 생산단가를 현저하게 낮춤으로써 자동차의 대중화를 앞당겼습니다. 또한, 조립 라인을 통한 생산 방식은 전 제조업 분야로 퍼지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시대를 여는 역할을 했습니다.
‘복잡한 설계’를 추구하는 골드버그 장치
이와는 반대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복잡하게 설계한 기계를 일명 ‘골드버그 장치(Goldberg Machine)’라 합니다. ‘골드버그 장치’는 루브 골드버그의 만화에 등장하는 복잡한 장치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공대를 졸업한 그는 ‘최소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이라고 비꼬는 풍자 만화를 그렸습니다. 루브 골드버그에 등장하느 ‘골드버그 장치’를 한번 보겠습니다.
▲ 미끄러짐 방지 장치 (출처: Rube Goldberg)
이 장치는 길에서 미끄러져 뒤로 넘어질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입니다.
넘어지면서 발로 레버(A)를 건드리면 먹이(B)가 움직이게 되는데, 이를 먹기 위해 거북이(C)가 앞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면 거북이에 매달려있던 줄이 당겨지면서 집게(D)가 열리고 쿠션(E)이 떨어져 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것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골프공을 티에 올려놓는 장치,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면 냅킨으로 입을 닦아주는 장치 등 황당하고 복잡한 기계들이 많이 있습니다.
▲ 입을 닦아주는 자동 냅킨 장치 (출처: Travis Sheflin)
다른 예를 볼까요? 숟가락에 연결된 줄이 당겨지면 국자 위에 놓여있던 크래커가 던져집니다. 이것을 먹으려고 앵무새가 날면 레버가 기울면서 씨앗이 양동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양동이 줄이 당겨지면서 라이터가 켜지고 로켓이 점화되어 날아가면서 낫이 줄을 끊게되고, 진자에 연결된 냅킨이 좌우로 움직이게 됩니다.
냅킨을 한번 쓰기 위해 13단계나 되는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죠.
▲ 자동물시계 자격루의 작동원리 (출처: SANGHYUN YLM)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도 골드버그 장치와 비슷합니다. 자격루(自擊漏)는 물시계에 복잡한 기계 장치를 붙여 스스로 시간을 알려주도록 한 일종의 자명종입니다. 물론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 것은 아니고 꼭 필요한 메카니즘을 이용해 자동으로 종과 북이 울리도록 했습니다.
큰 물항아리에 보관된 물은 작은 항아리로 흘러내리고 수면이 유지되면서 아래 물받이통으로 흘러갑니다. 자격루 부분은 물받이통에 떠있는 나무 막대의 움직임에서 시작됩니다. 나무 막대가 물받이통 수면과 함께 올라가면서 일정 시간 간격으로 숟가락 모양의 레버를 건드려 구슬을 굴러가게 합니다. 구슬은 여러 통로를 통해서 굴러가면서 지렛대 작용으로 2시간(경) 간격으로 종을 치고, 24분(점) 간격으로 북과 징을 치도록 했습니다. 소리뿐만 아니라 시각적 효과를 위해 12간지 글자를 새긴 인형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 Google 로고가 있는 Rube Goldberg 장치
단순함에 역행하는 골드버그 장치가 역설적으로 공학교육에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장치를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면서 설계의 목적을 분명히하고, 단순한 설계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의 퍼듀대학을 비롯해 전 세계 여러 대학에서 골드버그 장치 콘테스트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누가 더 황당하면서 복잡한 기계를 만드느냐를 겨루는 대회로서 학생들이 즐기면서 공학적 창의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 2018년 퍼듀대학 골드버그 장치 콘테스트(출처: Purdue University Mechanical Engineering)
그렇다해도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은 공학의 전통입니다.
기본적인 과학법칙을 써서 단순화된 모델을 만들고 개략적인 어림계산을 수행합니다. 최소의 자원을 써서 가급적 단순한 구조와 형상으로 설계하고, 이를 표준화된 공정을 통해 제작합니다. 설계와 제작뿐만 아니라 시험, 설치, 작동 및 유지관리 등 공학 전 과정에 걸쳐서 단순함을 추구합니다. 사실 단순한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복잡한 과정을 줄이려면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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