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폰
소크라테스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그의 발 아래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아테네의 유명한 두 제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바로 플라톤과 크세노폰이다. 크세노폰은 플라톤에 비해 유명하지 않지만 ‘르네상스형 인간’이다. 그는 철학자, 군인, 역사가, 용병,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회고록 집필자 등의 다양한 이력을 가졌다. 승마술에서 세금징수까지 실용적인 분야에 관한 책도 남겼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만나 제자가 된 후 나눈 철학적인 대화를 ‘메모랄리아(Memoralia)’라는 책으로 남겼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생생한 인간적 묘사가 담긴 ‘향연’과 ‘변명’도 저술했다.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인 플라톤도 ‘향연’과 ‘변명’이라는 저술을 남겼는데 그는 여기서 소크라테스를 사려 깊은 철학자로 묘사한다. 그러나 크세노폰에게 소크라테스는 다소 주관적이고 오만한 스승이다.
크세노폰은 아테네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태어났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벌인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년)이 시작된 기원전 430년에 태어났다. 그는 아테네에서 20㎞ 정도 떨어진 비옥한 지역인 에르키아에서 부농이자 기사귀족이었던 그륄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철학, 수사학, 기하학뿐만 아니라 승마술과 원예와 같은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그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의 마지막 부분과 그 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헬레니카(Hellenica)’라는 책을 남겼는데 이 책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후속편에 해당한다.
‘키루스 교육기’의 질문
그의 인생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3세(기원전 424~401년)가 자신의 형이자 페르시아제국의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에 대항하는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용병으로 참전하면서 파란만장한 역정을 시작하였다. 크세노폰은 추상적인 철학에 심취하기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세상에 나가 직접 실험하고자 했다. 즉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상가라 할 수 있다. 그는 키루스 3세의 반란을 돕는 일만용사의 용병으로 참여하여 ‘아나바시스’라는 역사책을 남겼다. 크세노폰은 아테네 시민으로 모든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지만 아테네의 적인 스파르타의 정치와 문화도 흠모하였다. 그는 그리스로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스파르타 장군인 아게실라우스의 일만용사들에 속해 아테네와 테베 연합군에 대항하여 라케다이모니아전투에서 싸웠다. 그는 이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펠로폰네소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엘리스(올림피아 근처)에서 23년간 거주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많은 책을 집필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아테네의 정치에 대한 객관적이면서 심오한 평가를 내린다. 자신이 용병으로 참전해 기록한 ‘아나바시스’ ‘헬레니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상적인 정치와 정치 지도자를 그린 서양 최초의 소설 ‘키루스 교육기’를 집필하였다.
크세노폰은 ‘키루스 교육기’를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참주(僭主)와 정당한 권위를 가진 통치자는 무엇이 다른가?” ‘키루스 교육기’는 정치적인 삶, 특히 리더의 자질에 대한 근본적인 가능성을 포괄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책은 소설 형식을 띠었지만 플라톤의 ‘법률’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비견되는 정치 이론서다. 크세노폰의 전제와 기대는 그의 글 형식만큼이나 플라톤의 이론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접근과는 전혀 다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개인은 도시 아테네라는 큰 기계를 돌리는 기능공인 시민일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대로, 아테네 시민은 ‘도시 안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동물’일 뿐이다. 이에 비해 ‘키루스 교육기’는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리더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키루스 교육기’가 말하는 리더는 재능이 탁월하고 공격적인 리더로 이른바 ‘영웅(아네르·aner)’이다. 그는 자신의 덕과 지혜로 물질적 풍요를 갈망하는 다수의 범인들(앤스로포이·anthropoi)의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 크세노폰은 다른 동시대 철학자들과는 달리 리더의 능력과 야심이 보편적인 정치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크세노폰은 페르시아제국의 창건자인 키루스 대제(기원전 600~530년)를 가장 효율적이며 이상적인 리더로 소개한다. 그는 암묵적으로 실패한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와 키루스 대제를 대비해 비교한다. ‘키루스 교육기’는 키루스 대제의 일대기를 기록한 역사소설이다. 이 책은 키루스 대왕이 어떻게 자신을 교육했는가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이 아니라 리더를 위한 교육은 무엇이며, 키루스 대제의 교육에서 무엇이 결여되었는가를 지적한다. ‘키루스 교육기’는 키루스 대제의 교육뿐만 아니라 그를 관찰하면서 묵상한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담고 있다.
비범한 영웅에 관한 이야기
서양문학사에 등장한 첫 번째 소설인 이 책은 키루스라는 인물을 통해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혼란에 빠진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제시하려는 숨은 목적이 있다. 키루스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제국을 건설한 리더다. 그는 소위 방백제도를 구축하여 자신이 정복한 국가들에 장군들을 보내 통치하였고 페르시아의 파사르가데에서 소아시아의 사르디스를 잇는 도로를 건설하고 곳곳에 역참을 두어 제국 전체를 하나의 소통기관으로 재정비하였다. 그는 개별 국가, 인종, 종교, 언어를 하나로 묶는 중앙행정 제도를 구축하였다.
그의 제국 통치는 고대 그리스·로마뿐만 아니라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 그리고 미국 국부(國父)들의 정치철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미국의 국부이자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키루스 교육기’의 애독가였다. 그는 이 책의 그리스 원본과 라틴어 번역본을 한 면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매일 읽으며 묵상하였고 미국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잡는 길잡이로 삼았다.
크세노폰은 ‘키루스 교육기’에서 페르시아제국과 제국의 야심을 비판하면서도, 이상적인 제국의 유토피아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크세노폰은 가장 높은 수준의 덕망과 지혜를 지닌 개인의 역량이 제도를 능가한다고 믿는다. 그는 ‘키루스 교육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영웅은 놀라움(그리스어 사우마조·thaumazo)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키루스)가 태어날 때 누구였는지, 그가 어떤 본성을 가졌는지, 무슨 교육으로 양육되었는지 조사하였습니다. 그는 일반 범인들을 다스리는 데 탁월합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서 알고 감지한 것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크세노폰은 책의 앞부분에 인간을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고 기록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페르시아 쿠데타 전쟁에 용병으로 참여한 후 달라진다. 키루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인간을 다스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키루스를 통해 인간을 다스리는 본질과 원칙에 대해 실마리를 찾는다. 그에 의하면 리더는 법과 관습에 복종하려는 유순한 피지배자를 다스리는 자다. 참주는 반항하는 피지배자들을 불법으로 다스리는 자인 반면 이성적이며 진정한 왕권은 왕의 절대적인 권력을 보장하는 헌법이 있어야 가능하다. 헌법은 왕이 백성들에게 맞는 적당한 직업을 맡기는 절대적인 권력을 보장해준다.
‘키루스 교육기’는 역대 정권에 대한 대화집이다. 역대 정권을 참고해 정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위험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 이 책은 다양한 정권들에 대한 나열로 시작한다. 많은 민주주의들, 왕조들, 귀족정권들, 참주정권들, 그리고 개인들이 불만족스러운 시민들과 노예들에 의해 전복되었다고 기록한다. 인간은 목동의 지시를 순순히 따르는 가축과는 달리 자신을 다스리려고 하는 리더에게 본능적으로 반기를 든다. 크세노폰은 인간을 본성적으로 다스리기 가장 어려운 동물로 정의한다. 그는 이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정치학)로 정의한다. 그러면 리더는 어떻게 다수 인간을 다스릴 수 있을까.
그는 페르시아제국의 창건자 키루스 대제를 완벽한 목자로 비유한다. 그는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사용하는 수많은 시민과 백성으로부터 자발적인 복종을 얻어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바꿔 복종한 이유는 통치자가 ‘에피스테메(episteme)’, 즉 ‘과학적 지식과 지혜’를 지녔기 때문이다. 고집스러운 범인들은 지식과 숨겨진 공포의 힘을 지닌 통치자의 명령을 따른다. 그는 키루스 대제의 성공을 공포로 보았다. 마치 중세 마키아벨리가 말한 지도자의 전형 같다. 그는 넓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다스릴 때 오는 불안정이 인간이 가진 자유를 향한 열망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들의 자유를 향한 본능적인 열망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는 힘을 키루스 대제의 통치를 통해 파악하였다. 그는 독재자 히에로와 시인 시모니데스의 대화를 수록한 다른 저서 ‘히에로(Hiero)’에서 시모니데스의 입을 빌려 ‘키루스 교육기’의 서문처럼 인간들을 구분한다. “(세상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사는 소수의 진정한 영웅들과 이런 야심이 없이 짐승처럼 육체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사는 많은 인간들이 있다.” ‘키루스 교육기’는 다수 범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범한 한 영웅에 관한 이야기다.
키루스의 자기절제
크세노폰은 정치적 불안정을 제거하는 리더의 ‘지식’을 통해 건설된 보편적인 제국을 설명하기 전에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스스로 온전해진 도시국가를 상징하는 정권을 소개한다. 그는 키루스의 탄생과 교육이 가능했던 페르시아를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사상에 적합한 정치적인 제국으로 각색한다. 키루스는 영웅과 인간들이 지닌 두 가지 본성을 자신의 교육 환경을 통해 어려서부터 확인하고 훈련받았다. 당시 키루스의 고향 시민들은 계급 없이 동등했다. 그들은 자치정부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법을 준수하는 평등과 자유를 누렸고 이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다. 개인적으로 탁월하여 영웅이 될 소질이 있었던 어린 키루스에게 이런 페르시아의 삶은 지루하고 단조로웠다. 영웅이 되고 싶은 키루스를 자극한 사람은 그의 할아버지인 메디아의 왕 아스티아게스다.
키루스는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 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의 나라 메디아를 방문한다. 키루스 어머니는 키루스에게 메디아의 사치스럽고 계급적인 삶을 보여주고 키루스에게 맞는 영웅이 되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메디아는 페르시아제국 창건 전부터 이란 중부에 자리 잡고 있었던 왕국이다. 아스티아게스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손자를 대견하게 여겨 그에게 훌륭한 무기들을 선물하고 승마술을 연마시킨다. 승마술은 자신이 살던 가난한 페르시아에서는 향유할 수 없는 사치였지만 훌륭한 군인으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이었다. 아스티아게스는 메디아의 독재자로서 손자 키루스를 자식보다도 편애하였다. 어린 키루스는 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로부터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많은 메디아인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운다.
당시 페르시아가 공공선과 평등을 강조했다면 메디아는 개인주의를 찬양하였다. 아스티아게스는 메디아를 마치 목자가 가축을 다루듯이 통치하였다. 메디아인들은 아스티아게스의 탐닉하는 삶을 흉내 냈다. 중요한 점은 키루스의 태도다. 키루스는 메디아에서 불평등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맛보았지만 자기 스스로 페르시아적인 평등과 자발적인 정치를 유지했다. 키루스는 아스티아게스가 주는 비싼 음식들을 먹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억제했다. 자신이 받은 선물과 음식을 손님과 종들에게 나눠줬다. 크세노폰은 여기서 키루스의 자기절제를 부각시킨다. 역설적이게도 키루스는 사치에 대한 욕망을 페르시아의 평등주의로 극복한다. 키루스는 성적인 유혹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내적 절제인 소프로시네(sophrosyne)로 이겨낸다. 그는 자기절제를 통해 자신의 명성과 권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를 욕망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금욕적인 목자로 성장시킨다. 그는 말한다. “나는 너희들이 마시는 와인을 마시느니 내 스스로 술을 따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
키루스는 메디아의 쾌락주의와 페르시아의 금욕주의를 통합하여 ‘영웅’으로 거듭난다. 그는 페르시아의 정치적 동물이 소중히 여기는 평등과 자유를 참주만 가지는 ‘지식’과 통합한다. 키루스는 성장하면서 명예를 더욱더 소중히 여긴다. 영웅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저해하는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유혹을 승마기술의 연마로 분쇄한다. 그는 스스로 완벽한 기수가 되도록 수련한다. 당시 페르시아는 많은 첩을 거느릴 수 있었지만 키루스는 완벽한 기수가 되기 위해 승마를 더 ‘사랑(에로스)’한다. 크세노폰은 키루스가 말 위에서 자신에게 느끼는 에로스가 여인에 대한 사랑보다 강했다고 기록한다.
에로스의 노예가 안 된다
크세노폰은 이상적인 국가나 제국의 건설에 다소 회의적이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만족을 위한 갈망이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 통치하려는 리더의 마음과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승화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는 키루스의 부하 아라스파스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라스파스는 페르시아 도시 ‘수사’의 아름답고 고귀한 여왕 판테이아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판테이아는 그녀의 이름이 상징하듯이 압도적인 신적 광채를 지닌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키루스 대제의 부하들은 수사를 점령하면서 그녀를 포로로 잡아 키루스 대제에게 데리고 간다. 키루스는 아라스파스에게 그녀를 지키라고 명령을 내린다. 아라스파스가 그녀를 감금하려 할 때 판테이아는 항거의 표시로 자신의 왕복을 찢어 나체를 드러낸다. 그러자 그는 그녀를 소유하려는 ‘에로스’에 눈이 먼다. 아라스파스는 키루스를 초대하여 키루스도 자신의 소유가 되어버린 판테이아의 아름다움을 탐닉하길 바란다. 그러나 키루스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에로스에 종속시키는 사람은, 그 집착 때문에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한다.”
키루스의 꾸짖음을 들은 아라스파스는 자신이 사랑의 ‘노예’가 되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라스파스는 자신과 같이 ‘탁월하고 선한 사람’은 인생에 세 가지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즉 부와 승마술, 그리고 탁월함이다. 자신은 상관 키루스처럼 부를 추구하고 승마술을 연마하지만 탁월함의 상징인 판테이아를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키루스는 아라스파스가 판테이아로 상징되는 탁월함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라고 판단한다. 키루스는 오리엔트의 참주들처럼 ‘에로스’에 사로잡혀 자신의 첩을 흠모하는 부하를 거세하지는 않는다. 그는 이상적인 정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명예를 위한 자기 훈련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아라스파스는 키루스 대제가 죽고 난 뒤 페르시아제국이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크세노폰에게는 자기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자제력’이 가장 중요한 리더의 덕목이었다. 하지만 크세노폰은 리더가 이끄는 안정적인 정치는 지속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크세노폰은 이상적인 리더를 찾는 여정에서 리더의 ‘지식’을 통해 안정적인 정치를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는 처음에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지향한 철학적인 삶의 대안으로 이상적인 리더를 통한 정치적인 삶을 살펴보았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이런 면에서 ‘키루스 교육기’는 이상적인 리더에 대한 바람이다. 이상적인 정치 리더가 이토록 등장하기 힘든가.
주간조선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