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망해도 괜찮아요. 미련 없어요. 우리 치과는 풍랑 속의 돛단배 같은 존재예요. 전 제 직업을 잃을 각오를 하고 이 문제를 개선해보자고 떠드는 거예요.” 그린서울치과 강창용 원장은 인터넷을 통해 치과에서 벌어지는 과잉진료 행태를 꾸준히 고발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3년 전 과잉진료 심각성 깨닫고
잇따라 방송 출연해 문제 제기
치아 사진 비교 동영상 등으로
유튜브·페이스북에 고발 이어가
‘양심치과’ ‘왕따치과’ 상반된 평가
서울대 치대 출신 개원 11년차
가난 탓에 고등학교 진학 포기
“장기려 박사 같은 사람 되고파…”
27살 검정고시 거쳐 대학 진학
졸업 때까지 스스로 학비 마련
성장 과정에서 겪는 가난과 불행은 한 사람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화인(火印)으로 남는다. 그것은 독성이 든 약재와 같다. 잘 쓰면 약이지만 통제가 안 되면 독이다. 가난과 불행을 떨치고 사회적으로 입신하기 위해서 맹렬히 달려온 이들 가운데 일부는 성공한다. 경제적 안정, 번듯한 직함과 사회적 명예를 얻지만, 과거의 아픈 기억은 말끔히 지워지는 법이 없고 결핍에 대한 욕망은 무한하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명예, 더 높은 지위에 대한 갈망과 허기는 쉽게 충족되지 않는다. 전쟁과 빈곤의 상처를 깊이 간직한 중장년세대 가운데 입지전적 인물로 불리는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성공한 이들이 우리 시대의 주류 질서를 만들고 사회적 좌표를 규정해왔다.
다행히 세상에는 이와 다른 부류들이 있다. 가난의 비참함을 알면서 가난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 사회적 질시와 배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고립된 싸움을 멈추지 않는 이들, 애틋하게 움켜잡아온 것들을 어느 순간 미련 없이 내려놓을 줄 아는 이들…. 이들은 자신에게 결핍되었던 것을 병적으로 채우는 데 연연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처럼 불행한 사람들에 대해 남다른 연민과 진한 공감으로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기꺼이 그들의 편에 선다. 소수지만 이런 이들이 있어 우리가 숨 쉬고 살 수 있다.
강창용(46)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개원 11년차 치과의사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입학해 다닐 때, 그는 중졸 학력으로 자장면 배달과 신문 배달을 했다. 27살에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대학 졸업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조달했다. 1970~80년대 고도성장과 유례없는 경기호황 시대에 그에겐 의지할 가족도, 도와줄 어른도 없었다. 궁핍하고 외로웠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돈 못 버는 의사로 산다. 그가 운영하는 병원은 ‘양심치과’ 혹은 ‘왕따치과’로 불린다. 그는 여전히 곤궁하고 외롭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대체 왜? 성직자도 사회운동가도 아닌 평범한 직업인으로 왜 그렇게 사는지, 뭘 위해 그렇게 사는지 묻고 싶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2017년 12월, 시류에 떠밀리는 부표가 아니라 온전한 자신만의 좌표를 찾아 시간을 설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하루 19명만 진료하는 이상한 치과
그를 섭외하기 위해 여러 차례 병원으로 전화했지만 통화는 불가능했다. 진료시간을 안내하는 짧은 녹음 메시지만 반복되고 전화는 자동으로 끊겼다. 달리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어 서울 마포에 있는 그의 치과를 찾아갔다. 평일 오후 3시30분인데 그의 병원문은 닫혀 있었다. 굳게 닫힌 철문 위에 “오늘 진료는 종료되었습니다”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무작정 철문을 두드렸지만 기척이 없었다. 20여분을 기다리다가 쪽지를 써놓고 돌아서려 할 무렵, 육중하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계단참에 서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그가 “추운데 들어가서 얘기하자”며 나를 병원 안으로 안내했다. 두어 시간 동안, 그는 속사포처럼 많은 얘길 쏟아냈다. 그와의 공식 인터뷰는 그로부터 이틀 뒤로 잡혔다. 지난 6일 오후 4시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밤 11시까지 길게 이어졌다.
―건물 1층 입구부터 안내문이 붙어 있더군요. “7시40분 접수, 19명 선착순”이라고. 왜 이렇게 일찍 시작하고 일찍 닫으세요?
“환자들이 너무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잖아요. 새벽 3시에도 오시고 얼마 전엔 2시에 온 분도 있었어요. 최대한 일찍 당겨야 하는데 이 건물 자체가 오전 7시40분에 문을 여니까 더 일찍 시작하긴 어렵고…. 7시40분에 와서 진료 순서랑 시간 적힌 대기표를 열아홉분께 선착순으로 드리고 8시부터 진료 시작해요.”
―왜 그렇게 불편하게 하죠?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받으면 안 돼요?
“지금 이 상황에서 예약을 받으면 순식간에 앞으로 3~4개월분은 바로 다 차버릴 거예요. 그럼 꼭 진료받아야 할 분들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환자가 많이 오길 바라지 않아요. 최대한 불편하고 힘들게 해서, 정말 꼭 필요하고 절실한 환자들만 오길 바라는 거예요.”
―근데 왜 하필 19명으로 못박아둔 거죠?
“이게 여러 번 시행착오 거쳐서 조정된 시간표인데, 한 사람당 15분씩 네명 이어서 보고 30분간 여유시간 두고…. 그렇게 하면 오후 3시15분까지 딱 19명이 돼요. 네 명 진료하고 30분씩 시간을 두는 건 앞의 환자들 보다가 길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자꾸 밀리면 뒷사람이 많이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면 3시 반이나 4시께면 진료가 끝나죠.”
―왜 그렇게 일찍 닫아요? 직장인들은 못 오겠네.
“죄송한 말씀인데, 제가 배가 고파서요.(웃음) 거의 2년 동안 점심을 못 먹었어요. 요즘엔 그래도 습관이 되어서 중간에 잠깐씩 뭘 좀 먹긴 해요. 나가서 먹을 시간은 없고 (원장실 창가의 백팩을 가리키며) 그 뒤에 보이시죠?”
―아, 이게 원장님 도시락 가방이에요?
“아니에요. 아유! 그 큰 게 도시락 가방이면…. 제가 코끼리게요?(웃음) 그 가방 뒤에 비닐봉지 보이세요? 거기 빵이나 삼각김밥 같은 거 미리 준비해 둬요. 그런 건 잠깐씩 먹을 수 있으니까.”
백팩을 치우자, 먹다 만 식빵 부스러기가 담긴 작은 비닐봉지가 보였다. 예전엔 환자들이 대기실을 꽉 채운 채 종일 진을 치고 있어서 물 마실 틈도, 화장실 갈 짬도 내지 못해 방광염까지 걸렸다고 한다. “이젠 요령이 생겨 살 만해요”라고 말할 때 그의 얼굴엔 스스로 기특하다는 듯 개구쟁이 소년 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문득 그의 책상 앞에 놓인 탁상용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날짜별로 ‘40(7), 23(5)…’와 같은 숫자와 세모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이 숫자는 무슨 의미죠?
“아이고 이거… 저희 치과 매출액이에요.(웃음) 괄호 안의 숫자는 환자한테 받은 돈, 전액 카드로만 받아요. 앞의 숫자는 보험청구액 포함한 총수입액.”
―그럼 오늘은 환자들한테 총 5만원 본인부담금 받았고 보험수가 포함하면 23만원 수입이라고요? (놀라며) 그래서 병원 유지가 되나요?
“제가 잡은 기준치가 하루 70(만원)이에요. 그래야 고정지출 빼고 병원이 유지가 되니까. 근데 그게 안 되는 날은… 세모 표시 보이시죠?”
그가 보여주는 12월 달력엔 거의 모든 날에 세모가 있었다. 지난 8월 이후 달력의 세모 표시는 점점 늘어나서 이젠 한 달 내내 세모가 이어진다. 그가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치과의 과잉진료에 대한 고발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이후, 그를 찾는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적자 폭은 도리어 늘고 있다.
왕따가 되고 망해도 좋아요
―유튜브에 치과의 과잉진료 행태를 고발하는 영상을 꾸준히 올리고 계시죠? ‘치과 환자 눈탱이 치는 수법과 대응 매뉴얼’이란 제목으로 올린 영상을 봤어요.
“제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이런 거 하나도 모르던 사람입니다. 페이스북 시작하고 나서도 ‘페친’ ‘페북’이란 용어가 뭔지 몰랐어요.(웃음) 누가 저더러 ‘밴드 좀 해보시죠’ 할 때도 ‘전 노래 못하는데요’ 했을 만큼(웃음) 에스엔에스(SNS)에 통 무식하던 사람인데 올해 6월 무렵부터 유튜브에 영상 올리는 법을 배워서 시작했고 그렇게 해도 한달 내내 조회 수가 몇십건에 불과해서 낙담해 있으니까 누가 페이스북이랑 같이 연동해서 하라고 알려주더라고요. 페이스북은 7월 무렵에 시작했죠. 제가 2014년에 <불만제로>란 티브이 프로그램에 치과 과잉진료에 대해 제보해서 방송하고 2015년에 <에스비에스(SBS)스페셜>에도 출연했는데, 제가 아무리 과잉진료 문제에 대해 얘길 해도 사람들이 안 믿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치아 사진을 찍어서 비교해서 보여줘야겠구나 싶어서 시작한 일이죠.”
―일부 치과가 환자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충치 치료나 금니 보철을 진행한 사례들을 열거하고 환자 입장에서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시해주셨죠. 우선 치과 2~3군데에서 검진을 받고 진단서를 뽑아서 비교해보고 결정하라고요. 그래서 언론에선 원장님 치과를 ‘양심치과’ 혹은 ‘왕따치과’라고 부릅니다. 이런 표현에 동의하세요?
“둘 다 맞아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양심치과’란 표현은 제가 만든 말이 아녜요. 치과의사들이 하도 ‘너만 양심 있냐?’고 욕을 해서, 저도 오기로 ‘양심치과 강창용입니다’ 하는 거죠. ‘너 그렇게 잘났냐?’ 하면 ‘그래, 나 잘났다’ 하듯이.(웃음) ‘왕따치과’인 것도 맞아요. 치과에선 절 싫어하는 게 당연하죠. 아파트 기둥에 철근이 적게 들어갔다고 누가 꼰질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아파트 주민들이 그럴 거 아녜요? ‘야, 너 때문에 집값 떨어지잖아. 너 살기 싫으면 조용히 팔고 나가지 왜 방송에 나가서 떠들어?’ 하겠죠. 너나 양심 있게 진료하면 되지, 왜 떠들고 다니느냐고요.”
―그런 비난 받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주변에 선후배 관계가 다 끊어지다시피 했어요. 댓글에 쌍욕 하는 사람도 많고, 제 부모님 욕하는 사람까지 있죠. 그렇다고 저에게 무슨 소송을 걸거나 하진 못해요. 증거가 명확하고 제가 틀린 말 하는 거 아니니까.”
―지속적으로 음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직접 법적 대응을 할 생각은 없으세요?
“제가 지금 하는 일이 옳다면 그 일에 집중해야지, 이 사람 저 사람 덤빈다고 제가 고발하고 그러면 논점이 흐려질 거예요. 과잉진료의 문제가 아니라 ‘강 원장 대 치과의사들 싸움’으로 비칠 테니까요.”
―언론이나 환자들로부터 ‘양심치과’로 호명되는 걸 병원 홍보에 전혀 이용하지 않으시더군요. 강남의 한 치과는 <불만제로>에 양심치과로 소개되었다는 걸 홍보 영상으로 퍼뜨리던데. 음식점들도 식당 입구에 ‘착한 식당’ 팻말 같은 거 붙여놓잖아요.
“전 싫어요. 낯부끄러운 짓은 안 합니다. 내가 진정성을 가지고 과잉진료의 현황을 전달하는 데 주력해야지, 이걸 사적으로 홍보하는 데나 쓰고 그러면 오래갈 수 있겠어요? 지금도 환자들이 많이 오니 ‘조인트’로 치과 차리자는 제안도 받아요. 근데 제가 여기서 돈 벌면 더 욕먹어요. 돈을 못 버는 게 제가 사는 길이죠.”
―그럼 이렇게 병원 재정이 악화되는데 다른 수익 전략이 있나요?
“….”
―대책이 없어요?
“(한숨) 없어요. 어차피 제 병원은 ‘비정상치과’예요. 주로 오는 환자들이 ‘이거 보철해요, 말아요?’ ‘임플란트 하라는데 해야 해요?’ 이런 거 물으러 오죠. 저는 검진만 주로 하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치료만 해요. 안 그러면 하루에 이 정도 인원을 볼 수가 없어요. 저한테 매일 19명이 오지만 다 신환(초진환자)들이에요. 보통 병원은 신환 4~5명에 나머지가 신경치료나 보철, 임플란트처럼 보험 안 되는 치료 받으러 지속적으로 오는 환자들이거든요. 그래야 수익이 나니까. 근데 전 그럴 수 없어요. 환자들한테도 말해요. 여긴 치과가 아니라 치과 검찰청이라고.(웃음) 잘못된 치과 진단 찾아내는 데지 여기서 다 치료할 수 있는 데가 아니라고 해요.”
―공공기관도 아니고, 자선사업하는 데도 아닌데.
“난 망해도 괜찮아요. 미련 없어요. 우리 치과는 풍랑 속의 돛단배 같은 존재예요. 치과 잘되고 내가 이익을 보려고 하면 지금처럼 하면 절대 안 되죠. 병원 전화도 안 받고 금니 할 사람들은 다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이게 무슨 짓이에요? 전 제 직업을 잃을 각오를 하고 이 문제를 개선해보자고 떠드는 거예요.”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가 감정을 추스르는 동안 나도 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선후배 관계 거의 끊어지고
댓글 통해 쌍욕까지 들어
병원 찾는 환자들 늘었지만
병원 유지에 필요한 한달 수익
채우지 못하는 날도 수두룩
“문재인 케어 실행되려면
과잉진료 막는 것이 중요
암 환자 외과 진료처럼
치과 치료에도 매뉴얼 필요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
충치에 대해서 당신이 모르고 있는 것?
―언제부터 치과의 과잉진료 문제에 이렇게 몰입하게 된 거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도 처음 개원할 땐 아무것도 몰랐어요. 2006년에 직원 둘 데리고 개원했는데 열심히 일하는데도 매출이 별로인 거예요. 다른 치과들 보면 하루에 금니를 열 개는 파는데, 난 일주일에 인레이(금속으로 때우는 것) 두세 개 해요. ‘아, 진짜 복도 지지리도 없지. 대체 이 동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치아가 좋은 거야? 병원 자리가 나쁜가?’ 생각했어요.(웃음) 결국 2011년 6월에 병원 문 닫을 생각을 하고, 직원들 다 내보냈어요. 병원 정리하는 차원에서 잠시 동안 1인 치과를 하는데, 그 몇 달 동안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을 해보자 생각했어요. 다시 개업을 하더라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야 하니까.”
―근데 알고 보니 장삿속 밝은 병원들이 문제였다?
“어느 날 여자 환자분이 검진을 받으러 왔는데, 교정을 최근 2년 동안 받았고 3~4개월 전 검진 때까지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들었대요. 근데 어느 치과에 갔더니 충치가 열 개라고 다 금니를 해야 한다고 했다는 거예요. 검사해보니 깨끗했어요. 아니, 2년 동안 교정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치과에 갔을 텐데, 충치가 열 개가 되도록 못 봤겠어요?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그래서 ‘이걸 어디다 고발하지?’ 하다가 엠비시(MBC) <불만제로>에 제보했어요. 거기서 취재해서 같은 환자의 검진과 치료비에 치과마다 5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는 걸 보여줬죠. 전 그런 방송 나가고 나면, 치과계에서 ‘아, 이거 문제가 심각하구나. 고쳐야겠다’ 할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었나요?
“그런 환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정작 썩은 이뿌리는 찾지 못하고 전혀 다른 멀쩡한 어금니에 금니를 4개나 하게 한 곳도 있고, 6개월 전에 다른 병원에서 한 금니 열 개가 잘못되었다고 다 뜯고 다시 하라고 한 치과도 있고요. 근데 그런 얘기를 하니까 제가 친하게 지내던 선배조차도 ‘그건 환자가 진상이라 그런 걸 거야. 네가 오버하는 거야’ 하더라고요. 치과협회나 치과신문에서도 절 비난했어요. ‘진료는 주관적 소견이니 의사마다 다를 수 있다’고요. ‘과잉진료도 문제지만 과소진료도 문제’라고 저를 과소진료로 규정했죠.”
―원장님은 자기 이를 최대한 보전하는 보전적 치료를 권하시는데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미리 손봐서 나쁜 것 없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해요. 치료 시기나 범위에 대해서 의사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암 환자의 경우를 봅시다. 종양 크기가 얼마가 되면 수술로 떼어내야 할지 의사들이 고민하겠죠. 종양이 1㎝ 정도일 땐 수술 안 하고 지켜볼 때도 있잖아요. 다른 치료 우선하면서. ‘종양이 작아도 어차피 커질 테니 배 엽시다’ 그러나요? 종양을 제거하는 것보다 배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의 위험이 더 크면 안 하고 지켜보는 거예요. 치과도 마찬가지죠. 사람들이 충치 치료라고 하면 충치만 제거하고 덮어씌우는 줄 아는데 보철 재료가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충치보다 몇 배로 파내야 하거든요.”
―아, 그렇군요. 치아에 ‘뭘 씌운다’는 표현이 원래 치아는 그대로 두고 갑옷처럼 방패를 입힌다는 말로 들려서 오해했어요.
“금니 할 때 대개 신경치료를 하는데 그것도 실은 신경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제거’하는 거예요. 신경을 제거하면 치아에 영양분이 잘 공급되지 않아서 까만 고목나무처럼 치아의 수명이 단축돼요.”
―그래도 더 썩기 전에 치료해야 덜 아픈 거 아녜요?
“20대 이상 성인에게서는 충치 진행 속도가 느립니다. 60대 남자 환자가 오셨는데 다른 병원에서 금니 4개를 하라고 했대요. 이분이 30~40년간 충치가 있었는데 그동안 그만큼만 썩은 거예요. 그럼 앞으로 50년 더 기다려도 그 정도 썩는다는 거니까 안 해도 되죠. 게다가 이분 잇몸이 안 좋아요. ‘할아버지, 금니 하더라도 잇몸 때문에 먼저 빼게 될 겁니다. 충치 걱정 마시고 잇몸 관리 잘하세요’ 그랬죠.”
―그런 걸 다른 의사들이 모를 리 없는데 왜 과잉진료 행태가 나오는 거죠?
“치과 치료에도 암 환자들 외과 진료처럼 일정한 매뉴얼이 필요해요. 이 정도 충치면 냅두자, 깎자 하는…. 에나멜층의 손상 정도를 기준으로 해서 그 기준 같은 걸 만들 수 있죠. 제 나름대로도 만들어봤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치과계에서 만들 수 있어요. 근데 왜 못 만들까? 의지가 없는 거죠. 충치 치료는 주관적이어서는 안 돼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벌어야 되니까 사람에 따라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잖아요. 심지어 어떤 치과에선 피부병도 고치고 불임도 고친다 하고, 뇌졸중을 고친다고 버젓이 광고하는 곳도 있어요.”
왜 포기 안 하느냐고요?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도 뭔가 기준안이 만들어져야 하겠어요.
“‘문재인 케어’가 되려면 과잉진료를 막는 게 더더욱 중요하죠. 문재인 케어를 해서 본인부담금이 줄어들면 ‘이것도 하세요, 저것도 하세요’ 하는 치과가 더 늘어날 테니까요. 지금 환자가 30만원씩 내는 것도 ‘안 하면 큰일납니다’ 해서 하게 하는데. 과잉진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대로 간다면 고양이한테 생선 주는 격이죠. 그동안 가격 저항감 때문에 환자가 못 하던 것도 있는데, 과잉진료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치과가 떼돈 벌 수도 있어요. 자칫하면 치아 건강을 지키는 게 아니라, 차라리 치과에 안 가느니만 못한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고요.”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원장님 혼자 그걸 감당할 순 없잖아요.
“보건소에 치과의를 확충하면 돼요. 뭐 돈 많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나라 예산으로 보건소마다 치과의사 두세 명 뽑는다고 죽어요? 100% 과잉진료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국민보건을 위해서 비영리적 관점에서 매뉴얼에 따라서 검사하고 진단해주는 보건소가 있다면 치과계의 경찰서 같은 역할이 되겠죠.”
―지금 보건소에도 치과의사들이 군대를 대신해서 공중보건의 같은 걸 하잖아요? 보건소에 상주하는 치과의사를 더 늘릴 수 있나요?
“치과의사들도 여러 부류가 있잖아요. 육아를 위해서 계약직으로 들어올 의향이 있는 의사도 있을 거고요. 60대 이상으로 일반 치과에 근무하기 힘들어하는 의사도 있어요. 그런 분들이 근무기간을 정해놓고 계약직으로 할 수도 있을 거고요. 의사들에게도 괜찮은 기회죠.”
―지난 4~5년간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오셨는데 치과의사들 사이에서 격려나 지원을 받기는커녕 왕따가 되다시피 하셨어요. 그간 들었던 비난 가운데 가장 상처가 된 얘긴 뭡니까?
“절 똥이라고 불러도 좋아요. ‘똥파리가 똥에 꼬인다’는 비난 댓글이 있었거든요. 내가 똥이고 날 찾는 환자들이 똥파리라는 거죠. 뭐 거기까지도 괜찮아요. 제일 가슴에 꽂힌 말은… ‘돈도 하나 없는 거지새끼들’이라고 환자들한테 그렇게 말한 거…(울먹거리며) 아 정말 그 얘기 읽고 원장실에 들어가 울었어요. 나를 똥 취급 하는 건 괜찮아요. 근데 환자를 ‘거지새끼’라고 하니까 열이 확 받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크고 무서운 말인지 모르나 봐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돈을 기준으로 환자를 평가하는 거죠. 돈 없는 게 죄인가요? 사람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해요?”
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눈물을 쏟아냈다. 그에게도 ‘거지새끼’ 취급을 받던 시절의 쓰라린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밖에서 노숙을 하고 일주일씩 밥을 굶던 시절” 차디찬 냉대와 사회적 멸시가 ‘없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쓰라린 아픔인지 그는 안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1년 동안, 학원에서 도강(盜講)을 하다가 배고픈 서러움에 모의고사 시험지가 다 젖도록 운 적도 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는 거의 매일 새벽 두시까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같이 껴안고 갈 아픔이란 삶의 교훈을 그는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그렇게 힘들게 버텨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 돈 벌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단 생각은 안 했어요?
“장기려 박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의사를 지망했어요. 내가 잘 먹고 잘살고 잃을 게 많은 사람이라면, 지금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돈 가지고 해외여행 다니기도 바쁠 텐데. 신이 있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런 일을 하라고 그간 여러 가지로 힘든 시련을 줬던 걸지도 몰라요.”
―욕먹고, 돈 못 벌고, 동조해주는 신실한 동료도 없는데 왜 포기 안 하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틀렸으니까요! 틀린 걸 틀렸다고 하는 건데, 그걸 ‘왜 포기 안 하느냐?’는 말이 합당한가요? 잘못된 걸 제가 봤어요. 그걸 제가 고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잘못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는 건데 그걸 포기한다? 거기서 포기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요?”
―그럴 때 사람들은 말하죠. ‘네가 옳아. 근데 너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냐. 혼자 나서지 마’라고요.
“결국 자신하고의 싸움이죠. 내가 단기간에 과잉진료 모든 걸 바꿀 거라고 생각하는 게 욕심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나는 갈 거야. 그러고 나면 누군가는 또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겠어요? 근데요… 전 되든 안 되든 이거 계속할 거예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창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치과 안은 난방장치가 꺼진 지 오래인데,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포기하지 않고…’ 심장에 뜨거운 물이라도 끼얹는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그린서울치과에서 강창용 원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서울 마포구 그린서울치과에서 강창용 원장이 진료를 하고 있다. 검진과 간단한 치료만 하다 보니 병원 재정은 악화되고 있는 상태다
한겨레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