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현준, ‘커넥톰, 뇌의 지도’에서
1985년 아인슈타인의 뇌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해 유명해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신경해부학자 매리언 다이아몬드. 지난 7월 25일 91세로 타계했다. - 버클리대 제공
1955년 아인슈타인이 76세로 사망하자 부검을 맡은 프린스턴병원의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는 뇌를 적출했다. 그는 뇌의 무게를 재고(1230g으로 남자 뇌의 평균보다 약간 가벼웠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은 뒤 240 조각으로 나눠 일부는 자신이 보관하고 나머지는 저명한 병리학자들에게 보냈다. 이런 사실은 1978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1984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신경해부학자 매리언 다이아몬드의 수중에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 네 점이 들어왔다. 다이아몬드 교수팀은 이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를 이듬해 학술지 ‘실험신경학’에 발표했는데 논문의 제목은 ‘한 과학자의 뇌에 대하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다이아몬드 교수팀이 성공적으로 분석한 부위는 상측 전전두엽(구역 9)과 하측 두정엽(구역 39)으로, 대조군인 성인 남성 11명의 뇌의 평균값과 비교했을 때 아인슈타인 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교세포 대 뉴런(신경세포)의 비율이 높다는 뜻밖의 사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교세포는 뉴런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를 계기로 신경과학자들은 교세포에 주목하게 됐고 지금은 뇌에서 뉴런만큼이나 중요한 세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살아서는 머리(뇌)를 써 물리학을 혁신했고 죽어서는 뇌 구조로 뇌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꿨으니 아인슈타인이 정말 대단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뇌의 극히 일부분을 그것도 이미 작동을 멈춘 상태에서 해부학적 구조만 본 것이라는 한계는 있다. 만일 아인슈타인이 지금 살아있다면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같은 장비로 뇌의 활동 양상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고 그 결과는 뇌과학에 또 다른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 네트워크 활발하다고 다 좋은 건 아냐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11월 22일자에는 똑똑한, 즉 지능지수(IQ)가 높은 사람들의 뇌가 어디가 다른지를 보여준 논문이 실렸다. 독일 괴테대의 연구자들은 ‘1000 기능커넥톰프로젝트’에서 신경영상 이미지 데이터가 충분한 309명의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능이 뇌의 네트워크 구조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커넥톰(connectome)은 2005년 미국 인디애나대의 신경과학자 올라프 스폰즈 교수와 동료들이 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뉴런의 전체 연결망 지도다. 사람의 뇌에는 뉴런이 860억 개 정도 있고 뉴런 하나당 평균 수천 개의 시냅스가 있어서 다른 뉴런들과 연결돼 있으므로 인간 뇌의 커넥톰은 수백 조 개의 연결망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2012년 미국 MIT의 뇌과학자 승현준 교수가 ‘커넥톰, 뇌의 지도’라는 책을 펴내면서 이제는 대중에게 익숙한 용어가 됐다.
최근 네크워크 모형인 그래프 이론으로 뇌를 분석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이에 따르면 뇌는 기능단위인 노드로 구성된 몇 개의 모듈로 볼 수 있다. 처리하는 인지 과제에 따라 노드 사이의 네트워크의 활동 패턴이 바뀐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한편 지능(intelligence)이란 합리적인 추론과 추상적인 사고,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한 지표가 지능지수(IQ)로 이의 타당성에 대한 반론도 있고(지능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그 결과 예전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아무튼 인간의 추상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데는 유용한 도구다.
우리는 보통 지능이 높은 사람을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말을 쓰는데 커넥톰의 관점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이런 사람들은 뉴런 사이의 시냅스가 최적의 구조로 배치돼 효율적으로 정보처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노드 사이의 네트워크 활동 패턴이 다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쉬고 있을 때 찍은 fMRI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모듈의 개수는 평균 3.5개로 나타났다. 보통 대뇌피질을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으로 나누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모듈 하나에 대략 1500개의 노드가 존재했다. 노드는 같은 모듈의 노드들과 상호작용하기도 하고 다른 모듈의 노드들과 상호작용하기도 한다.
노드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결과 IQ가 높은 사람들은 특히 세 부분에서 차이가 뚜렷했다. 먼저 전두엽에 있는 오른쪽 앞뇌섬엽(anterior insula)에 있는 노드들은 같은 모듈의 노드들과 네트워크가 약한 대신 다른 모듈의 노드들과의 네트워크는 활발했다. 반면 역시 전두엽에 있는 오른쪽 상전두회(superior frontal gyrus)와 양쪽 측두-두정 연접부(temporo-parietal junction)의 경우는 같은 모듈의 노드들과는 네트워크가 활발했지만 다른 모듈의 노드들과는 네트워크가 약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네트워크가 전반적으로 활발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과는 다른 결과다.
18~60세 남녀 309명의 fMRI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앞뇌섬엽(AI)의 모듈 간 네트워크가 활발한 반면 상전두회(SFG)와 측두-두정 연접부(TPJ)의 모듈 간 네트워크는 오히려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그렇다면 이런 네트워크 패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다소 뻔한 얘기를 하고 있다. 즉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경험을 통해 뇌의 네트워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뇌가소성의 중요성
매리언 다이아몬드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뇌 연구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뇌과학의 역사에서는 이보다 20년 앞서 1960년대 뇌의 가소성을 처음 실험적으로 규명한 연구자로 기록될 것이다. 즉 다이아몬드는 놀이기구 등 자극이 풍부한 환경에서 생활한 쥐가 자극이 빈약한 환경에서 자란 쥐에 비해 대뇌피질이 더 두껍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는 뇌가 변하지 않는다는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때이므로 충격적인 연구결과였다. ‘뇌가소성’, 즉 뇌는 쓰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교육을 비롯해 많은 영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인슈타인의 뇌를 분석한 뒤 다이아몬드 교수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자극이 풍부한 환경에서 교세포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나이가 든다고 증가하는 건 아니었다. 즉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도 머리를 많이 썼기 때문에 교세포가 많았다는 얘기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의 뇌의 네트워크 패턴이 다르다는 이번 연구결과를 보며 똑똑함은 타고난 것 보다는 평소 꾸준히 머리를 쓴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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