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생명의 설계도'에 새 염기 추가… 신종 단백질 만들어내요

유전 정보 전달하는 30억 개의 DNA, 아미노산 만들어 생체작용 일으키죠
최근 美서 DNA에 인공 염기 추가… 유전자 변형하는 '합성 생물학' 주목


얼마 전 미국의 한 연구팀이 유전 물질인 DNA에 '새로운 글자'를 추가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어요. DNA는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 이렇게 네 가지 염기로 구성되는데, 연구팀이 인위적으로 새로운 염기(X·Y)를 만들어 대장균의 DNA 안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는 거예요.

DNA는 '생명 설계도'라고 불리는 유전 물체예요. 과학계에선 DNA에 새로운 염기가 생기면 더 많은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네 글자로 만들어진 생명 설계도

우리는 왜 부모님을 닮았을까요? 부모님의 특징은 어떻게 세대를 넘어 우리에게 전달된 걸까요?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문제에 답하고자 여러 가설(假說)을 세웠어요. 19세기에는 남성의 정자나 여성의 난자에 아주 작은 인간이 들어 있고 그것이 점점 커져서 유전(부모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20세기 중반 이에 대한 고민이 해결됩니다. DNA가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물질이며, 이를 통해 유전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에요. 인간은 정자와 난자에 들어 있는 DNA가 절반씩 자식에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유전이 이뤄져요. 1953년엔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二重螺旋)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내면서 DNA 복제 과정이 규명됐답니다.

▲ 그래픽=안병현
DNA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사람 몸은 수많은 세포로 구성돼 있어요. 이 세포 하나하나에는 제각각 '핵'이 들어 있지요. 핵 속에는 염색체가 23쌍(46개) 들어 있는데, 여기엔 마치 사다리를 꼬아 놓은 듯이 생긴 DNA가 30억 개나 들어 있어요. DNA는 우리 코가 어떻게 생겼는지, 눈은 무슨 색깔인지 같은 모든 정보를 담아내고 있지요. 이 정보는 우리 몸 어디든 모든 세포에 똑같이 들어 있기 때문에, 혈액이나 피부 조각 같은 아주 작은 단서만으로도 그 사람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거예요.

DNA의 네 가지 염기는 AGC·AGT·ATC·ACG처럼 반드시 3개씩 짝을 지어 그에 맞는 아미노산으로 바뀌어요. 이 아미노산들이 연결돼 특정한 단백질을 만들지요. DNA가 만들어내는 아미노산은 총 20여 종인데, 이 아미노산들이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만들 수 있는 단백질 종류가 매우 다양하답니다. 이렇게 만든 단백질이 사람 몸을 구성하면서 온갖 생체 작용을 일으켜 유전 효과를 나타내는 거지요.



◇새로운 설계도를 만들 수 없을까

과학자들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요. 자연계에는 이미 수백 가지 아미노산이 존재하는데, DNA가 만들어내는 아미노산 20여 종 말고 다른 단백질을 만들 수는 없는 걸까?

과학자들은 이 질문에 답하고자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출발점인 DNA부터 손보기로 결정했어요. A·G·C·T 염기 외에 인위적으로 만든 새로운 염기를 DNA에 넣으면 더 많은 아미노산과 단백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지요. 이때 인공적으로 만드는 DNA 염기를 X와 Y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2014년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플로이드 로메스버그 박사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인공 염기인 X와 Y를 대장균의 DNA에 추가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연구팀은 X와 Y를 어느 생물의 대장균 속 DNA에 집어넣은 뒤 그 변화를 관찰했어요. 그랬더니 염기가 6개(A·G·C·T·X·Y)가 된 대장균 유전자는 99%가 넘는 정확도로 자기 DNA를 복제해냈어요. 자기 DNA를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하는 유전이 가능하다는 얘기예요.

최근 연구팀은 후속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염기 A와 C 사이에 인공 염기 X를 넣어 'AXC'라는 조합을 만들었더니 PrK라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아미노산이 생긴 거예요. 또 G와 C 사이에 X를 집어넣어 'GXC' 조합을 만들었더니 pAzF라는 신종 아미노산도 얻을 수 있었어요. 기존 아미노산 외에 새로운 아미노산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거예요.

새로운 아미노산을 만들었다는 건 앞으로 더 다양한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에요. DNA의 염기가 6개로 늘어나면 이론적으로는 총 216가지 아미노산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아미노산 216종은 서로 결합해 그보다 더 다양한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지요. 연구팀은 이를 통해 주사를 놓거나 약을 먹지 않아도 몸속에서 스스로 적혈구 수를 조절하는 신종 단백질을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답니다.

이처럼 인간이 인위적으로 DNA를 변형해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연구 분야를 '합성 생물학'이라고 해요. 현재 많은 과학자가 관심을 쏟고 있지요. 이를 통해 새로운 치료약을 개발할 수도 있지만, 종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에 생명 윤리나 그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합성 생물학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발전할 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답니다.
☞DNA의 발견
DNA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1869년 스위스 과학자 프리드리히 미셰르예요. 상처에서 생기는 고름을 연구하다가 백혈구의 핵에서 DNA를 추출했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DNA가 유전 물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답니다. 대신 단백질 자체가 유전 물질이라고 생각했지요. 이후 1952년 박테리아 실험을 통해 DNA가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물질임이 밝혀졌고,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확인하면서 DNA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답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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