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힘을 기르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 푸는 기술만 가르쳐"
그는 보통 사람 기준으로 보면 천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읽고는 곧바로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이듬해 서울대 물리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서는 물리학의 기초가 수학인 것을 깨닫고는 미국으로 유학가 (U.C.버클리) 수학을 전공했다.
박형주(53) 교수는 귀국후 포항공대 교수와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아주대 석좌교수로 있다. 2014년 우리나라가 4년마다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를 개최했을 때는 조직위원장을 맡아 역대 최대 규모의 대회를 성공시켰다. 지금은 한국인 최초로 10명뿐인 국제수학연맹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여기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4년마다 시상)을 운영한다.
그는 “수학의 내적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에도 열심이다. 활발한 저술과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수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수능시험이 끝난 후 그를 만나 수능시험과 수학 교육의 문제점, 수학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들어 보았다. 그가 언론 기고 등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들도 함께 담았다.
-수능이 끝났다. 수학 문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90분간 30문제는 너무 많다. 아무리 수학적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도 유형별 반복 학습이 안 돼 있으면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다 풀 수가 없다. 창의적 특성이 있는 학생일수록 반복학습을 싫어한다. 그런 아이들은 문제를 보고 생각을 하면서 풀게 되는데 반복 훈련이 덜 돼 있으면 속도가 느리고 계산실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변별력을 위해 문제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런 시험 방식은 분명 문제다.”
-서술형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생각 연습의 과정이어야 할 수학 교육은 현행 교육 과정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기술로 변질됐다. 수학의 본질은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답을 구하는 요령만 익히다 보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집합론의 창시자인 19세기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아는 수학의 본질이 자유로움에 있다고 했다. 공식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보고 해결방안을 찾는다는 뜻이다. 문항수를 줄이고 서술형으로 가야 한다.
200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테오도어 헨슈 교수는 천재성과는 인연이 먼 평범한 학생이었던 자신을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것은 ‘호기심으로 하는 연구’였다고 했다. 호기심의 생산성과 대척점에 있는 게 반복 학습이다. 같은 내용을 반복할수록 흥미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호기심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채점의 공정성 확보라든가, 시험관리의 어려움이 문제 아닌가.
“우리의 수능시험격인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 과목이 서술형이다. 시험 관리에 연간 우리돈 1조원 이상 들어간다. 채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방대한 채점 위원단을 구성하고 예상 유형별로 채점 기준을 정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그래도 나폴레옹시대부터 시작된 바칼로레아는 20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의 SAT 시험에서 최근 서술형 문제를 늘려가며 인공지능 방식의 채점을 실험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도입까지 고려해서 채점 공정성의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2년 전 한 가지 실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수학문제와 프랑스 명문 고등학교 1학년 수학문제를 바꿔서 풀게 해봤다. 한국 학교 시험은 50분에 20문제를 푸는 선다형이었고, 프랑스 학교 시험은 두 시간에 다섯 문제의 서술형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풀이 과정을 쓰지 못한 채 답만 구하려고 했다. 다섯 문제 아래에 소항목들이 있어서 순차적으로 생각을 인도하여 결론에 다다르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데도 활용하지 못했다. 반면 프랑스 학생들은 선다형인데도 풀이과정을 써내려가면서 “평생 이렇게 많은 문제를 풀어 본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양쪽 모두 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이 실험 하나로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프랑스가 미국 다음으로 필즈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반면 한국은 아직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런 교육 내용의 차이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필즈상 수상자인 세드리크 빌라니 교수는 프랑스 수학의 힘은 전적으로 교육제도와 전통에서 나온다고 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핀란드는 전통을 중시하는 프랑스와는 대조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며 분야 간 벽을 허무는 융합교육 쪽으로 강력한 교육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핀란드 현지에서는 이를 ‘현상기반 학습’이라고 부르더라. 자국 기업 노키아의 흥망 경험 때문인지 모르지만 변해야만 살아남는다는 각오가 뚜렷하게 읽혔다.
가령 중학교 학생들에게 바다에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이 쏟아진 상황을 주고 해결책을 찾아가게 한다. 학생들은 유사한 사례를 찾기 위해 역사를 살피고, 기름 제거 방식과 약품을 찾기 위해 화학공부를 한다. 또 유조선의 인양에 필요한 수학 공부를 하고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생물학도 공부한다. 실험과 토론도 병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각 과목의 공부가 왜 필요한지 저절로 알게 되고 스스로 문제 해결 방식을 찾아가게 된다.“
-수학이 어렵다고 포기하는 이른바 ‘수포자’가 늘고 있는데 서술형이 되면 더하지 않겠는가.
“198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 7차례의 교육과정 개편이 있었다. 그때마다 수학은 교과내용이 줄어들었다. 학생들이 어려워 하니 부담을 덜어 준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수학 어지럼증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수학시험을 안보고 대학 갈 수 있는 길도 더 넓어지고 있다.
왜 수학은 어렵게만 느껴질까. 우선은 학생들에게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학문의 역사성과 어디에 쓰이는지에 대한 활용성이 빠져 있어서 생기는 문제다. 몇 년 지나면 다 잊어버릴 수학문제들을 왜 이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터득하는 논리적 사유의 방식에 집중해야 답이 보인다.
학생들은 어떤 수학 개념의 탄생 배경이나 미래 세상에서의 역할은 모른 채 반복해서 문제나 풀어야 한다. 빤한 내용을 끝없이 반복 학습하면서 실수하지 않는 게 중요한 덕목이 되면서 모험은 사치가 되고 말았다. 수학에 스토리를 더하고 의미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오늘날의 수학 교육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나.
“수학의 출발점은 유용성이었다. 원시시대에 사냥감의 수를 세며 수학은 시작됐고, 농사의 절기를 예측하며 정교해졌다. 페르시아 시장의 그 복잡한 다단계 물물교환이 수학 없이 어찌 가능했을까.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은 심미주의 색깔을 띄게 된다. 기하학적 비율은 미술과 건축의 핵심이 됐다. 플라톤은 기하학을 어디에 쓰느냐고 묻는 제자를 고귀한 것의 가치를 모르는 놈이라고 파문했다.
그러다 계몽주의 시대에 수학의 핵심가치는 다시 유용성이 되었다가 19세기 이후 다시 추상화됐다. 정보량 폭증의 21세기에 수학의 유용성이 다시 부각되는 건 아마도 변증법적 필연일 것이다.
세상의 문제를 수학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요즘은 산업수학이라고 부른다. 순수수학의 모든 영역을 활용해 다양한 세상 문제들을 해결해낸다. 빅데이터로 당뇨병을 진단하는 데 위상수학이 돌파구를 만들었고, 인터넷 해킹에 맞서는 주요 무기는 정수론이다. 기후변화 같은 규모와 복잡도가 너무 커서 수학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학은 결코 지적 유희를 위한 학문이 아니다.
21세기는 지식과잉과 무한정보로 요약된다. 방대한 지식과 정보 속에서 우리에게 닥친 문제의 본질을 읽어내고 해결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통찰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지식을 수평적으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계층적으로 분류하는 능력이 통찰이다. 총론과 그에 속한 각론을 여러 단계로 분류할 수 있으면 자기 앞에 닥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상위 가치와 하위 지식의 연계가 보인다. 창의적 사고나 논리적 사고는 통찰력의 핵심 요소다.
교과내용을 줄이고 토론과 개별 활동을 통해 창의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대단한 오해다. 교과 과정은 생각의 재료다. 풍성한 재료가 빠진 토론은 겉만 맴도는 말장난이 되고 만다.“
-인공지능 시대의 수학 교육은?
“1957년 구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지구 궤도에 진입시키자 미국은 엄청난 충격에 빠져 국가개조 수준의 대응책을 추진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항공우주국(NASA)과 국방부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세우고 케네디 대통령은 교육과정의 대수술을 감행해 수학과 과학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국가경쟁력은 이러한 뉴프런티어 개혁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푸트니크는 미국에 축복이었던 것이다.
2016년 3월 서울 한복판에서 알파고가 바둑의 최고수를 꺾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이 충격을 우리는 한국판 스푸트니크의 축복으로 만들고 있는가. 스마트폰 하나면 웬만한 지식은 즉각 얻을 수 있고 데이터만 있으면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식 전수 형 교육은 수명을 다했다. 교육의 키워드는 맞춤형이 아니라 유연함이 되어야 한다.
단조로운 교과내용을 반복하며 ‘실수 안하기 전문가’로 길러진 우리 아이들은 미래의 직장에서 난생 처음 보는 문제들의 해결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이 전혀 안된 무방비 상태에서 말이다.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미래세계로 내모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수학 교육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지금 초등학생의 절반 정도는 사회에 나왔을 때 현재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고 세계경제포럼 보고서가 밝히고 있다. 이들이 어른이 되면 평생 다섯 번 일자리를 바꿀 것이라는 분석 보고서도 있다.
직장에서 자신의 부서나 담당업무, 또는 직장 전체가 당장 없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영역에서 전문성을 터득해 내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연기처럼 사라질 직업과 새로 생겨날 일자리의 종류와 수치에 대한 구체적 추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세대에게 언제까지 죽은 수학을 가르치고 있을건가.”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 푸는 기술만 가르쳐"
그는 보통 사람 기준으로 보면 천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읽고는 곧바로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이듬해 서울대 물리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서는 물리학의 기초가 수학인 것을 깨닫고는 미국으로 유학가 (U.C.버클리) 수학을 전공했다.
박형주(53) 교수는 귀국후 포항공대 교수와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아주대 석좌교수로 있다. 2014년 우리나라가 4년마다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를 개최했을 때는 조직위원장을 맡아 역대 최대 규모의 대회를 성공시켰다. 지금은 한국인 최초로 10명뿐인 국제수학연맹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여기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4년마다 시상)을 운영한다.
그는 “수학의 내적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에도 열심이다. 활발한 저술과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수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수능시험이 끝난 후 그를 만나 수능시험과 수학 교육의 문제점, 수학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들어 보았다. 그가 언론 기고 등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들도 함께 담았다.
-수능이 끝났다. 수학 문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90분간 30문제는 너무 많다. 아무리 수학적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도 유형별 반복 학습이 안 돼 있으면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다 풀 수가 없다. 창의적 특성이 있는 학생일수록 반복학습을 싫어한다. 그런 아이들은 문제를 보고 생각을 하면서 풀게 되는데 반복 훈련이 덜 돼 있으면 속도가 느리고 계산실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변별력을 위해 문제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런 시험 방식은 분명 문제다.”
-서술형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생각 연습의 과정이어야 할 수학 교육은 현행 교육 과정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기술로 변질됐다. 수학의 본질은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답을 구하는 요령만 익히다 보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집합론의 창시자인 19세기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아는 수학의 본질이 자유로움에 있다고 했다. 공식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보고 해결방안을 찾는다는 뜻이다. 문항수를 줄이고 서술형으로 가야 한다.
200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테오도어 헨슈 교수는 천재성과는 인연이 먼 평범한 학생이었던 자신을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것은 ‘호기심으로 하는 연구’였다고 했다. 호기심의 생산성과 대척점에 있는 게 반복 학습이다. 같은 내용을 반복할수록 흥미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호기심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채점의 공정성 확보라든가, 시험관리의 어려움이 문제 아닌가.
“우리의 수능시험격인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 과목이 서술형이다. 시험 관리에 연간 우리돈 1조원 이상 들어간다. 채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방대한 채점 위원단을 구성하고 예상 유형별로 채점 기준을 정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그래도 나폴레옹시대부터 시작된 바칼로레아는 20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의 SAT 시험에서 최근 서술형 문제를 늘려가며 인공지능 방식의 채점을 실험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도입까지 고려해서 채점 공정성의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2년 전 한 가지 실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수학문제와 프랑스 명문 고등학교 1학년 수학문제를 바꿔서 풀게 해봤다. 한국 학교 시험은 50분에 20문제를 푸는 선다형이었고, 프랑스 학교 시험은 두 시간에 다섯 문제의 서술형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풀이 과정을 쓰지 못한 채 답만 구하려고 했다. 다섯 문제 아래에 소항목들이 있어서 순차적으로 생각을 인도하여 결론에 다다르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데도 활용하지 못했다. 반면 프랑스 학생들은 선다형인데도 풀이과정을 써내려가면서 “평생 이렇게 많은 문제를 풀어 본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양쪽 모두 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이 실험 하나로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프랑스가 미국 다음으로 필즈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반면 한국은 아직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런 교육 내용의 차이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필즈상 수상자인 세드리크 빌라니 교수는 프랑스 수학의 힘은 전적으로 교육제도와 전통에서 나온다고 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핀란드는 전통을 중시하는 프랑스와는 대조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며 분야 간 벽을 허무는 융합교육 쪽으로 강력한 교육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핀란드 현지에서는 이를 ‘현상기반 학습’이라고 부르더라. 자국 기업 노키아의 흥망 경험 때문인지 모르지만 변해야만 살아남는다는 각오가 뚜렷하게 읽혔다.
가령 중학교 학생들에게 바다에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이 쏟아진 상황을 주고 해결책을 찾아가게 한다. 학생들은 유사한 사례를 찾기 위해 역사를 살피고, 기름 제거 방식과 약품을 찾기 위해 화학공부를 한다. 또 유조선의 인양에 필요한 수학 공부를 하고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생물학도 공부한다. 실험과 토론도 병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각 과목의 공부가 왜 필요한지 저절로 알게 되고 스스로 문제 해결 방식을 찾아가게 된다.“
【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박형주 교수(오른쪽)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뉴시스 본사에서 김현호 상임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수학이 어렵다고 포기하는 이른바 ‘수포자’가 늘고 있는데 서술형이 되면 더하지 않겠는가.
“198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 7차례의 교육과정 개편이 있었다. 그때마다 수학은 교과내용이 줄어들었다. 학생들이 어려워 하니 부담을 덜어 준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수학 어지럼증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수학시험을 안보고 대학 갈 수 있는 길도 더 넓어지고 있다.
왜 수학은 어렵게만 느껴질까. 우선은 학생들에게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학문의 역사성과 어디에 쓰이는지에 대한 활용성이 빠져 있어서 생기는 문제다. 몇 년 지나면 다 잊어버릴 수학문제들을 왜 이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터득하는 논리적 사유의 방식에 집중해야 답이 보인다.
학생들은 어떤 수학 개념의 탄생 배경이나 미래 세상에서의 역할은 모른 채 반복해서 문제나 풀어야 한다. 빤한 내용을 끝없이 반복 학습하면서 실수하지 않는 게 중요한 덕목이 되면서 모험은 사치가 되고 말았다. 수학에 스토리를 더하고 의미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오늘날의 수학 교육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나.
“수학의 출발점은 유용성이었다. 원시시대에 사냥감의 수를 세며 수학은 시작됐고, 농사의 절기를 예측하며 정교해졌다. 페르시아 시장의 그 복잡한 다단계 물물교환이 수학 없이 어찌 가능했을까.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은 심미주의 색깔을 띄게 된다. 기하학적 비율은 미술과 건축의 핵심이 됐다. 플라톤은 기하학을 어디에 쓰느냐고 묻는 제자를 고귀한 것의 가치를 모르는 놈이라고 파문했다.
그러다 계몽주의 시대에 수학의 핵심가치는 다시 유용성이 되었다가 19세기 이후 다시 추상화됐다. 정보량 폭증의 21세기에 수학의 유용성이 다시 부각되는 건 아마도 변증법적 필연일 것이다.
세상의 문제를 수학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요즘은 산업수학이라고 부른다. 순수수학의 모든 영역을 활용해 다양한 세상 문제들을 해결해낸다. 빅데이터로 당뇨병을 진단하는 데 위상수학이 돌파구를 만들었고, 인터넷 해킹에 맞서는 주요 무기는 정수론이다. 기후변화 같은 규모와 복잡도가 너무 커서 수학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학은 결코 지적 유희를 위한 학문이 아니다.
21세기는 지식과잉과 무한정보로 요약된다. 방대한 지식과 정보 속에서 우리에게 닥친 문제의 본질을 읽어내고 해결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통찰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지식을 수평적으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계층적으로 분류하는 능력이 통찰이다. 총론과 그에 속한 각론을 여러 단계로 분류할 수 있으면 자기 앞에 닥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상위 가치와 하위 지식의 연계가 보인다. 창의적 사고나 논리적 사고는 통찰력의 핵심 요소다.
교과내용을 줄이고 토론과 개별 활동을 통해 창의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대단한 오해다. 교과 과정은 생각의 재료다. 풍성한 재료가 빠진 토론은 겉만 맴도는 말장난이 되고 만다.“
-인공지능 시대의 수학 교육은?
“1957년 구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지구 궤도에 진입시키자 미국은 엄청난 충격에 빠져 국가개조 수준의 대응책을 추진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항공우주국(NASA)과 국방부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세우고 케네디 대통령은 교육과정의 대수술을 감행해 수학과 과학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국가경쟁력은 이러한 뉴프런티어 개혁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푸트니크는 미국에 축복이었던 것이다.
2016년 3월 서울 한복판에서 알파고가 바둑의 최고수를 꺾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이 충격을 우리는 한국판 스푸트니크의 축복으로 만들고 있는가. 스마트폰 하나면 웬만한 지식은 즉각 얻을 수 있고 데이터만 있으면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식 전수 형 교육은 수명을 다했다. 교육의 키워드는 맞춤형이 아니라 유연함이 되어야 한다.
단조로운 교과내용을 반복하며 ‘실수 안하기 전문가’로 길러진 우리 아이들은 미래의 직장에서 난생 처음 보는 문제들의 해결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이 전혀 안된 무방비 상태에서 말이다.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미래세계로 내모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수학 교육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지금 초등학생의 절반 정도는 사회에 나왔을 때 현재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고 세계경제포럼 보고서가 밝히고 있다. 이들이 어른이 되면 평생 다섯 번 일자리를 바꿀 것이라는 분석 보고서도 있다.
직장에서 자신의 부서나 담당업무, 또는 직장 전체가 당장 없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영역에서 전문성을 터득해 내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연기처럼 사라질 직업과 새로 생겨날 일자리의 종류와 수치에 대한 구체적 추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세대에게 언제까지 죽은 수학을 가르치고 있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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