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닦을 때 입 안에 화한 느낌이 나는 건 치약에 들어 있는 ‘멘톨’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멘톨은 탄소 10개로 이뤄진 분자다. 계피를 우려낸 물에 곶감을 넣고 잣을 띄워 먹는 겨울철 별미 수정과가 제 맛을 내려면 생강이 꼭 들어가야 한다. 생강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매운 맛은 ‘진지베렌’이라는 분자에서 온다. 진지베렌은 탄소 15개로 이뤄진 분자다.
‘비타민A’가 결핍되면 밤에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야맹증에 걸린다. 비타민A는 탄소 20개로 구성돼 있다. 피부에 바르면 10년은 젊어진다는 상어기름의 주성분 ‘스쿠알렌’은 탄소 30개가 모여 만든 분자다. 이들 분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분자를 이루는 탄소의 개수가 5를 공약수로 갖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향기분자의 대다수는 탄소가 10개 아니면 15개인 분자다. 탄소 개수가 11개나 14개, 21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럴까.
식물이나 동물의 세포에서 이런 분자를 만들 때 탄소 5개를 한 단위로 쓰기 때문이다. 이처럼 탄소 5개짜리 단위체를 ‘아이소프렌’이라고 부르고 아이소프렌으로 이뤄진 분자들을 ‘터펜’이라고 부른다. 앞에 소개한 멘톨, 진지베렌, 비타민A, 스쿠알렌은 모두 터펜에 속한다.
요즘 같은 웰빙시대에는 통닭도 올리브기름에 튀긴다. 올리브기름의 주성분은 ‘올레이산’인데, 탄소 18개로 이뤄져 있다. 안에 들어 있는 시원한 수액을 마시는 야자열매의 하얀 과육에는 ‘팔미톨레산’이 많이 포함돼 있다. 팔미톨레산은 탄소 16개로 이뤄져 있다. 등푸른 생선에 풍부한 머리를 좋게 하는 영양성분 ‘DHA’는 탄소 22개로 이뤄진 분자다. 이들 지방산 분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번에는 분자를 이루는 탄소의 개수가 2를 공약수로 갖는다. 세포 안에서 지방산을만들 때 탄소 2개로 이뤄진 ‘아세틸기’를 단위로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올레이산은 탄소 몇 개로 이뤄져 있나?”라는 객관식 문제가 나왔을 때 홀수(예를 들어 17개)는 무조건 정답이 아니다.
분자의 약수를 찾아라
집합을 알면 분자가 보인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분자 가운데 2차원 정다각형 모양을 한 유일한 분자가 바로 벤젠이다. 벤젠은 정육각형의 꼭짓점에 탄소가 놓여 있는, 즉 탄소 6개가 고리를 이루고 있는 분자다. 향긋하지만 톡 쏘는 냄새가 나는 벤젠은 강력한 발암물질로 먹는 것은 물론 냄새도 오래 맡으면 안 된다.
벤젠
옷장 속에 넣어두는 좀약(방충제)의 주성분인 ‘나프탈렌’은 냄새는 별로지만 벤젠 정도로 유독한 물질은 아니다. 그런데 나프탈렌의 구조를 보면 벤젠고리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형태다. 그렇다면 나프탈렌은 탄소 12개로 이뤄져 있을까. 잘 세어보면 12개가 아니라 10개임을 알 수 있다. 가운데 탄소 두 개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나프탈렌을 이루는 탄소의 개수는 일일이 세어보지 않아도 ‘집합’의 원리를 쓰면 금방 알 수 있다. 나프탈렌의 왼쪽 벤젠고리 탄소를 원소로 하는 집합을 A, 오른쪽 벤젠고리 탄소를 원소로 하는 집합을 B라고 하면 나프탈렌의 탄소 개수는 합집합의 원소 개수 n(A∪B)가 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법칙을 쓰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집합을 알면 분자가 보인다!
여기서 A와 B의 교집합은 왼쪽과 오른쪽 벤젠고리에 공통으로 참여하는 탄소를 원소로 하는 집합이다. 교집합의 원소 개수가 2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벤젠고리 3개가 나란히 놓이는 분자는 없을까. 물론 있다. 석탄의 추출물인 콜타르에서 발견된 안트라센으로 나무를 갉아 먹는 흰개미가 싫어해 목재 보존제로 쓰이는 분자다.안트라센의 탄소 개수는? 각각의 벤젠고리 집합을 A, B, C라고 하면 아래 식으로 금방 구할 수 있다.
안트라센의 탄소 개수는?
그런데 세 번째 고리가 나프탈렌 위에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화학적인 이유 때문에 벤젠고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탄소 6개로 이뤄진 고리다. 이 분자의 한 가운데에 있는 탄소는 세 고리 모두에 포함되므로 전체 탄소 개수를 구할 때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세 번째 고리가 나프탈렌 위에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고리형 분자의 '경우의 수'
고리형 분자의
화학의 묘미는 분자나 원자를 붙여 끊임없이 새로운 분자를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벤젠에 메틸기(탄소 하나와 수소 세 개로 이뤄진 구조)를 하나 붙이면 톨루엔이 된다. 톨루엔은 석유를 정제할 때 얻어지는 분자다.
벤젠은 탄소 6개로 이뤄져 있으므로 각각에 메틸기가 붙을 수 있다. 그렇다면 톨루엔은 6가지가 존재할까. 아니다. 톨루엔은 한 가지뿐이다. 벤젠의 탄소들은 서로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메틸기가 어디에 결합해도 똑같은 톨루엔이 나온다.
이제 톨루엔에 메틸기를 하나 더 붙여보자. 벤젠으로 생각하면 메틸기가 두 개 붙어 있는 셈이다. 이런 분자가 있을까? 물론 있다. 자일렌이란 분자로 역시 석유에 존재하는데, 정제해 안료 같은 물질을 녹이는 용매로 쓴다. 벤젠고리의 탄소는 다 똑같다고 했으니까 자일렌도 한 가지 구조만 있을 것 같다. 이번엔 아니다. 자일렌은 3가지가 있다.
톨루엔의 메틸기가 붙어 있는 탄소를 기준으로 했을 때 바로 옆 탄소에 메틸기가 붙으면 오르토(o)-자일렌이고 하나 건너 탄소에 붙으면 메타(m)-자일렌, 둘 건너 반대편 탄소에 붙으면 파라(p)-자일렌이라고 부른다.이들 분자를 이루는 원자의 종류와 개수는 똑같지만 밀도나 녹는점 같은 물리적 특징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녹는점은 o-자일렌이 -25℃, m-자일렌이 -48℃, p-자일렌이 13℃다. p-자일렌의 녹는점이 유달리 높은 이유는 벤젠고리 양쪽 끝에 메틸기가 붙어 있어 분자의 대칭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칭적인 분자일수록 고체(결정)는 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상태이므로 결정이 안정해 좀처럼 녹지 않는다.
선형 분자의 ‘경우의 수’
벤젠처럼 고리형 분자가 아니라 헥세인 같이 탄소 6개가 일직선으로 연결된 분자에 메틸기를 붙이면 어떻게 될까. 벤젠의 여섯 탄소가 서로 구분이 안 되는 것과는 달리 헥세인의 탄소는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왼쪽 탄소부터 번호를 매기면 맨 바깥쪽에 있는 탄소(❶, ❻), 바깥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탄소(❷,❺), 맨 안쪽에 있는 탄소(❸, ❹)다. 따라서 메틸기 하나를 붙일 경우 3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메틸기 두개를 붙이는 방법은 9가지나 된다.
똑같이 탄소 6개로 이뤄진 분자이지만 서로 구분할 수 없는 고리형이냐, 구분할 수 있는 선형이냐에 따라 이처럼 메틸기를 더할 때 만들어지는 분자의 개수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탄소 10개로 이뤄진 선형분자(데케인)에 메틸기 2개를 붙일 경우 몇 가지 분자가 만들어질까. 너무 복잡하다고? 헥세인에서 쓴 방법대로 해보면 25가지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헥세인에 메틸기 2개를 붙이는 9가지 방법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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