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접착제 붙는 힘 어디서 나오나?


분자 극성에 따라 물질 특성 달라져


‘아얏!’ 칼로 종이를 자르다 그만 손가락 끝을 베고 말았다. 큰 상처가 아니라 소독약을 바르고 1회용 밴드를 붙였다. 손가락 끝에 착 붙어 상처를 보호해주는 밴드. 밴드를 피부에 붙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밴드와 피부가 서로 끌어당기고 있으니 혹시 만유인력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밴드와 피부도 질량을 가진 물질이니 만유인력은 작용하겠지만 그 크기는 매우 작다. 가장 간단한 기체인 수소분자(${H}_{2}$) 두 개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을 계산해 이를 확인해 보자.

수소분자는 수소원자 2개로 이뤄져 있다. 또 수소원자는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로 이뤄져 있으므로 수소분자 1개의 질량은 3.3X${10}^{-27}$ kg이다. 수소분자 두 개가 0.1nm(나노미터, 1nm=${10}^{-9}$m) 떨어져 있다고 가정하고 만유인력을 구하는 식에 대입하면 7.2X1${10}^{-44}$ N 정도의 힘이 나온다. 언뜻 봐도 무시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힘이다.

접착제 붙는 힘 어디서 나오나?접착제 붙는 힘 어디서 나오나?

분자 하나에도 +, - 극 갈려

밴드의 접착력이 만유인력이 아니라면 분자와 분자사이에 작용하는 힘인 ‘쿨롱의 힘’이 강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분자 사이에 쿨롱의 힘이 작용하려면 전자가 남거나 모자란 이온처럼 전하를 띠어야할텐데, 모든 분자는 중성이 아닌가.

하지만 분자 사이에도 전기적인 힘이 생길 수 있다. 이 힘이 물질의 점성이나 상태를 결정한다. 물의 상태 변화는 좋은 예다.

물분자(${H}_{2}$O)는 수소원자(H) 두 개와 산소원자(O) 한 개의 공유결합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물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적인 힘의 크기에 따라 얼음(고체), 물(액체), 그리고 수증기(기체)가 된다. 물분자 사이에는 어떤 힘이 작용할까.

물분자는 수소원자 두 개가 산소원자 양쪽에 공유결합을 하고 있는 구조(H-O-H)를 이루며 산소를 중심으로 104.5°의 각으로 꺾여 있어 마치 부메랑처럼 생겼다. 그런데 물분자 안에 들어 있는 전자는 산소와 수소의 전기음성도 차에 의해 한쪽으로 치우친다.

전기음성도는 특정 원자가 화학결합을 이루고 있는 전자를 끌어당기는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값으로 산소원자의 전기음성도(3.5)는 수소원자의 전기음성도(2.1)보다 크다(전기음성도는 2006년 12월호 참고). 따라서 산소원자와 수소원자 사이의 공유결합은 대칭적이지 않고 전자가 산소원자 쪽으로 쏠려 산소 부근에는 음전하가, 수소 부근에는 양전하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공유결합에서 전자가 한쪽으로 쏠려 분자 하나가 양전하와 음전하로 갈려있는 상태를 ‘쌍극자’(dipole)라고 한다. 두 개의 반대되는 성질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분자 안에서 양전하와 음전하가 생기는 정도를 ‘쌍극자모멘트’(dipolemoment)라고 한다.

쌍극자모멘트는 크기와 방향을 모두 갖는 벡터량이다. 따라서 각 쌍극자가 만드는 쌍극자모멘트의 벡터합을 구하면 분자 전체의 극성을 결정할 수 있다. 부메랑 구조를 가진 물분자의 쌍극자모멘트 합을 구해보면 산소원자 쪽이 음전하를 띤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물분자처럼 쌍극자모멘트의 합에 의해 극성이 생기는 분자를 ‘극성분자’라고 한다.

눈 결정이 육각형인 이유^물분자를 이루는 수소원자와 산소원자의 전기음성도가 서로 달라 수소원자 쪽에 +극이, 산소원자 쪽에 -극이 생긴다. 온도가 내려가면 +극을 띠는 수소가 다른 물분자의 -극을 띠는 산소와 결합해 물분자 6개가 고리를 만든다. 이 구조에서 다양한 육각형의 눈 결정이 만들어진다.눈 결정이 육각형인 이유^물분자를 이루는 수소원자와 산소원자의 전기음성도가 서로 달라 수소원자 쪽에 +극이, 산소원자 쪽에 -극이 생긴다. 온도가 내려가면 +극을 띠는 수소가 다른 물분자의 -극을 띠는 산소와 결합해 물분자 6개가 고리를 만든다. 이 구조에서 다양한 육각형의 눈 결정이 만들어진다.

극성분자 결정하는 쌍극자모멘트

수소(H)와 염소(Cl)원자가 공유결합하고 있는 염산분자(HCI)도 극성분자다. 수소와 염소의 전기음성도 차이 때문에 염산분자 속 전자는 염소원자 쪽으로 치우쳐 있다. 따라서 염산분자도 쌍극자모멘트가 생긴다. 전기음성도가 다른 탄소(C)와 산소(O)로 이뤄져 있는 일산화탄소(CO)도 극성분자다.

하지만 전기음성도가 다른 원자가 만난 분자라고 해 다 극성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탄소원자 1개와 산소원자 2개로 이뤄진 이산화탄소(${CO}_{2}$)는 가운데 탄소가 있고 양쪽으로 두 개의 산소원자가 공유결합하고 있다.

산소원자의 전기음성도가 탄소원자의 전기음성도보다 커 산소 쪽으로 전자가 쏠려있지만, 물분자와 다르게 일직선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두 개의 쌍극자모멘트가 상쇄된다. 따라서 이산화탄소분자는 극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처럼 극성이 나타나지 않는 분자를 ‘무극성 분자’라고 한다. 극성분자냐 무극성분자냐를 따질 때는 분자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분자에 극성이 생겼으니 이제 쿨롱의 힘을 얘기할 수 있다. 극성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쿨롱의 힘은 막대자석 사이에 작용하는 힘에 비유해 설명할 수 있다. 막대자석은 N극과 S극으로 이뤄져 있다. 두 개의 반대되는 성질이 양쪽으로 나눠져 있으니 극성분자처럼 쌍극자가 있는 셈이다.

막대자석 여러 개를 이어 붙여 큰 구조물을 만든다고 해보자. 같은 극끼리는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는 끌어당기므로 N극과 S극을 이어 붙여야 한다. 극성분자인 물도 마찬가지다. 쿨롱의 힘에 의해 양전하를 띠는 수소원자는 다른 물분자의 음전하를 띠는 산소원자 쪽에 가까워지려고 한다.

분자는 원자들의 공유결합으로 만들어진다. 공유결합의 힘보다는 약하지만 극성분자는 쌍극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분자들을 적절히 배치하면 분자들 사이에 쿨롱의 힘이 작용한다. 이처럼 극성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쿨롱의 힘을 ‘쌍극자-쌍극자 힘’ 또는 ‘쌍극자간 힘’이라고 부른다.

예컨데 쌍극자간 힘으로 촘촘히 결합돼 있는 얼음에에너지(열)를 가하면 쌍극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느슨해져 물이 된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가하면 물분자 사이의 결합이 끊어지며 수증기가 된다.

극성분자는 쌍극자·쌍극자 힘이 작용하지만, 이산화탄소나(${CO}_{2}$) 질소(${N}_{2}$) 같은 무극성분자는 쌍극자모멘트가 없다. 따라서 분자 사이에 쌍극자간 힘보다 약한 ‘유발쌍극자 힘’이나 ‘분산력’같은 힘이 작용한다.

분자모양에 따라 달라지는 극성^분자 안에서 원자의 전기음성도에 따라 양전하와 음전하가 갈리는 정도를 쌍극자모멘트라고 한다. 쌍극자모멘트의 합을 구하면 분자 전체의 극성을 알 수 있다.분자모양에 따라 달라지는 극성^분자 안에서 원자의 전기음성도에 따라 양전하와 음전하가 갈리는 정도를 쌍극자모멘트라고 한다. 쌍극자모멘트의 합을 구하면 분자 전체의 극성을 알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분자간 힘

밴드의 접착력도 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쿨롱의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밴드의 접착면은 극성을 강하게 띠는 고분자물질로 처리돼 있어 피부에 잘 붙는다. 밴드가 떨어지는 이유는 밴드와 피부를 이루는 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다른 힘에 비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분자간 힘이 작용하는 현상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순간 접착제로 깨진 그릇을 붙일 수 있는 이유도 순간접착제와 그릇의 분자간 힘이 손으로 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분자간 힘이 극히 작은 테플론이라는 물질로 코팅한 프라이팬에는 음식이 들러붙지 않는다.

물질을 이루는 기본단위인 분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유결합이 중요하지만, 공유결합을 통해 만들어진 분자가 고유의 역할과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분자간의 힘이 더 중요하다.

분자간 힘이 작은 테플론^탄소원자와 불소원자로 이뤄진 테플론은 무극성으로 분자간 힘이 매우 작다. 테플론으로 코팅한 프라이팬은 음식물이 잘 붙지 않는다. 테플론은 방수소재나 마찰을 줄이는 윤활유에 도 쓰인다.분자간 힘이 작은 테플론^탄소원자와 불소원자로 이뤄진 테플론은 무극성으로 분자간 힘이 매우 작다. 테플론으로 코팅한 프라이팬은 음식물이 잘 붙지 않는다. 테플론은 방수소재나 마찰을 줄이는 윤활유에 도 쓰인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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