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국내의 한 고교 2학년 교실. 이 학급 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독서활동란에 기입할 1년 치 독서기록을 담임교사가 배부한 기록용지에 작성했다. 이 학급 A 양은 입학사정관전형에 대비하려면 좀 ‘있어 보이는’ 책을 기재해야 한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는 실제로 읽은 적이 없는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의 책과 역사학자의 책을 제시하며 독서후기를 기록했다.
이 학급 B 양은 “고3 선배 중에는 수시모집 면접고사에서 자신이 읽지 않은 독서기록에 대해 질문 받을 것을 뒤늦게 걱정해 수시 지원 직전 담임선생님에게 의뢰해 학생부에서 해당 내용을 삭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전했다.
학생부 정리를 마감하는 이 시기, 전국 고교의 학생과 교사는 학생부를 붙들고 요란한 전쟁을 치른다. 입학사정관전형 등 대입 수시모집에서 학생부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평가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학생부에 한 가지라도 더 넣기 위해 학생과 교사가 열과 성을 다하는 것.
교사들은 한편에선 ‘우리 학교 학생부에는 타 학교보다 더 많이 서술하라’는 학교 운영진의 독려를 받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선 ‘기재된 문구가 마음에 안 드니 다시 써달라’는 학생, 학부모의 요구를 받기도 하며 골머리를 앓는다. 보통 1주일이면 끝나는 학생부 정리 작업도 최근에는 2∼3주 걸린다는 게 교사들의 전언. 이런 현상이 만연하면서 ‘과잉포장’된 학생부의 신뢰도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후죽순’ 교내대회… 논술대회로 7명 중 1명 상 주기도
독서, 봉사활동 기록이 실제와 다르게 부풀려지는 것은 이미 ‘불편한 진실’이 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여러 자체 행사·대회를 열고 학생들에게 상을 나눠주는 일도 늘어나면서 학생부에 적힌 교내대회 수상기록의 권위가 전체적으로 추락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2학년 김모 군은 “전교생 대부분이 참가한 교내 논술대회의 경우 50여 명에게 상을 줬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교 2학년 김모 양은 “지난해 9월 2학년 대상 수능 모의평가에서 영어(A형) 1등급을 얻은 학생들에게 ‘모의고사상’이란 이름으로 상이 수여돼 학생들이 의아해했다”고 말했다.
학생부 ‘페이지 수’ 경쟁… 교사들 “‘붕어빵’ 학생부 불가피”
학생부 기재 과열은 학생부의 ‘페이지 수 경쟁’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보통 고3 학생부가 10쪽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15∼20쪽은 돼야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면서 서로 더 많은 양을 쓰기 위해 학교 간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많은 수의 학생부를 짧은 시간 안에 쓰다 보니 항목과 평가내용이 거의 비슷한 ‘붕어빵 학생부’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과 교사가 최대 300명에 이르는 담당 학생의 학생부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정리하려면 5∼10개 예시문장을 만들어놓고 골라서 기입하는 일명 ‘돌려막기’가 불가피하다는 게 많은 교사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판박이 학생부’로는 입시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만큼 서술내용을 차별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는 과제도 교사의 몫이다. 경기의 한 고교 E 교사는 “학생부를 작성할 때 기존 ‘방과후 보충수업’은 ‘맞춤형 캠프’ 식으로 표현을 바꿔 쓰는 등 아이디어를 내 차별화를 시도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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