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내용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현상은 학생부가 주요 평가요소인 대입 수시모집 선발인원이 늘어나면서 본격화되었다.
학생부를 빽빽이 채우기 위한 ‘스펙 경쟁’이 과열되면서 이런 문제가 생겨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대입 입학사정관전형이 확대된 뒤 학생과 학교 모두 진로 및 체험활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학생부에 기록되는 활동이 다양해진 점은 긍정적 변화”라면서도 “하지만 학생부 내용을 대입 전략에 맞춰 ‘기획’하고 부풀리는 학교가 늘면서 학생부의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정은 한양대 입학사정관은 “1년 전만 해도 학생부 분량은 10장 내외가 보통이었지만 최근에는 20∼25장을 넘는다”면서 “‘수학여행’처럼 사실만 간략히 쓸 내용도 학생의 수학여행 감상문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뒤 이를 교사가 해당 학생에 대해 내린 평가인 양 바꿔 적는 식으로 내용을 부풀린 학생부도 많다”고 말했다.
학생부 분량, 평가에 영향 없어
문제는 과열된 학생부 경쟁이 학생부 내용 전체에 대한 신뢰도 자체를 떨어뜨리면서 학생, 교사, 대학 모두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학생과 학교가 학생부에 기록할 ‘스펙’을 경쟁적으로 늘리면 학생부 기록 업무량이 급격하게 많아진 교사들은 학생들의 활동내용을 검증하지 못하거나 과장해서 작성하는 경우가 생기고 신뢰도가 떨어진 학생부만으론 학생평가가 어렵다고 판단한 대학이 교사추천서, 포트폴리오 등 추가적인 서류를 요구하면서 학생과 교사들이 준비하고 입력할 자료가 이전보다 늘어나 스펙경쟁이 더욱 심화되는 현상이 그것.
게다가 학생부의 분량 자체는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말한다.
입학사정관들은 “교사가 주관적 의견을 쓰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항목을 제외하면 객관적인 팩트(사실) 중심으로만 학생부 내용을 작성해도 평가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부에 언급된 내용의 구체적인 사실과 특정 활동을 통해 학생에게 나타난 변화 등은 자기소개서에서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석록 한국외국어대 책임입학사정관은 “한 고교는 교내대회만 42개에 달했다. 이렇게 대회를 남발하면 해당 학교의 교내활동에 대한 공신력이 떨어져 그 학교의 모든 학생이 평가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 “뜬구름 잡는 내용으로 분량만 늘린 학생부로는 좋은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생부 일부 내용 ‘비공개’로 바꿔야
학생부를 둘러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교사와 대학 입학사정관은 학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학생과 학부모가 볼 수 없도록 비공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대학들이 교사추천서를 따로 요구하는 이유는 학생부 내용을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볼 수 있어 학생에 대한 평가를 교사가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면서 “교사추천서 중 ‘학업능력’ 항목과 ‘인성영역’ 항목은 각각 학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과 같은 내용을 묻는 항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추천서도 100% 믿을 만한 자료가 아닐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에게 “교사추천서 내용을 보여달라”거나 “교사추천서 내용을 이렇게 써달라”며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고교 교내활동 검증 시스템 필요해
학생부에 기록되는 교내대회 및 봉사활동에 대한 정보를 대학들이 공동 관리하며 검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2000개가 넘는 전국 고교가 학교별로 수십 개씩 운영해 총 1만여 개에 달하는 교내활동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정은 입학사정관은 “학생부에 기록된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면접에서 확인하고 의심스러운 합격자의 고교에 현장 실사도 나간다. 하지만 대학당 15명 내외인 입학사정관이 이 모든 내용을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대학들이 공동으로 교내활동을 검증해 평가에 반영하기 시작하면 과열된 스펙 경쟁도 점차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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