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는
모래알이 몇 개나 있을까? 우주에는 수소 원자가 몇 개나 있을까?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런데 그냥 ‘많다’고만 하자니 너무 막연한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도 궁금한 게 있었다. 우주를 모래알로 가득 채우려면 모래알이 몇 개나 필요할까? 그 전에 필요한 게 있다. 큰 수를
표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막연하게 큰 수를 상상할 수는 있지만, 막상 쓰려면 기호가 필요하다. 숫자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면 죽을 때까지도 다
못 쓸 것이다.
여기서
현대의 지수 개념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편리한 지수 표기법은 언제 어떻게 등장했을까?
출처
: GIB
모래알 8×1063개로 우주를 채운다?
곱셈
기호는 똑같은 수를 여러 번 더하는 것을 간단하게 나타낸 기호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수를 여러 번 곱하는 것을 간단하게 나타내는 표기법이 바로
지수다. 2를 열 번 곱하는 연산이 있다면 2×2×2×2×2×2×2×2×2×2라고 쓴다. 결과는 10,7374,1824로, 길어서 쓰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한눈에 읽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이 정도는 별로 큰 수가 아니다. 오랜 예전에도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큰 수를 상상하고, 그 수를 나타낼 방법을 궁리했다. 고대 그리스 당시에는
큰 수를 만 단위로 끊어 ‘미리아드’라고 읽었다. 예를 들어, 1억을 읽으려면 ‘미리아드 미리아드’라고 읽어야 했다.
아르키메데스는
1억에 해당하는 미리아드 미리아드를 ‘첫 번째 수’로 하고, 첫 번째 수를 두 번 곱한 수를 ‘두 번째 수’, 그리고 첫 번째 수와 두 번째
수를 곱한 수를 ‘세 번째 수’로 정했다. 같은 방식으로 계속 큰 수를 구하면 ‘여덟 번째 수’를 구할 수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이런 과정으로 당시 천문학자 아리스타코스가 주장한 우주의 반지름(현재 거리로 약 2광년에 해당)을 바탕으로 ‘양귀비 씨앗 한 개의 크기에
해당하는 모래알의 수는?’, ‘손가락 크기에 해당하는 양귀비 씨앗 개수는?’, ‘육상 경기장 한 개를 가득 채우는 데 필요한 손가락의
개수는?’과 같은 어림 계산 과정을 순차적으로 반복했다.
그
결과 우주를 모래알로 채울 경우 그 개수가 여덟 번째 수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실 이 수는 모래알로 우주를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이런
수를 나타낼 때 지수는 필수다. 지수는 어떤 수나 문자의 오른쪽 어깨 위에 붙어서 거듭제곱을 나타낸다. 2×2×2×2×2×2×2×2×2×2은
210으로
쓸 수 있다. 아르키메데스가 생각한 첫 번째 수(1억)는 108이
된다. 두 번째 수는 1016,
세 번째 수는 1024,…,
여덟 번째 수는 1064가
된다.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의 개수를 계산했던 아르키메데스. 출처 : 위키피디아
어떻게 하면 같은 수의 곱을 편리하게 나타낼까?
오늘날
우리는 23,
an,
(x+y)2 처럼
다양하게 지수를 활용한다. 지수 표기의 기원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세기경 이슬람의 수학자 알콰리즈미는 제곱에 ‘mal’, 세제곱에
‘kab’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알콰리즈미가 썼던 mal과 kab는 이후 m과 k로 줄어들어 15세기까지 이슬람 수학자들에 의해
사용됐다.
이후
1586년 네덜란드의 수학자 사이먼 스테빈은 1제곱은 ‘①’, 2제곱은 ‘②’로 표시했다. 예를 들어 2×2×2+3×3은 ‘2③+3②’로
나타냈다. 1634년에는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헤리곤이 자신의 책에서 지수개념을 a, a2, a3 등으로 썼다. 이때만 해도 아직 지수가 어떤
수나 문자의 어깨 위로 올라가지는 못한 상황! 그렇다면 지수는 언제 오늘날 우리가 쓰는 형태와 비슷해진 것일까?
1636년
프랑스의 수학자 제임스 흄은 현대의 방식과 매우 비슷한 지수 표기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는 아라비아 숫자 대신 로마 숫자로 지수를 나타냈다.
즉, ‘A3’을 ‘Aⅲ’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그 뒤 1637년, 프랑스의 수학자 데카르트가 자신의 책 <기하학>에서 처음으로 현대의
지수 표기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종종 a2과 aa를 섞어서 사용하기도 하고, 지수로 음의 정수나 분수는 사용하지 않고 양의 정수만을
사용했다.
자연수는
물론 음수나 분수도 지수로 쓸 수 있음을 보인 아이작 뉴턴은 지수 표기법이 발전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출처 : 아이작
뉴턴
음의
정수와 분수도 지수로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아이작 뉴턴이다. 뉴턴은 1676년 런던왕립협회의 서기였던 헨리 올덴버그에게
자신이 12년 전 발견한 ‘일반화된 이항정리’에 대해 설명하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aa,
aaa, aaaa대신에 a2,
a3,
a4라고
쓰고 √a, √a3 대신에
a1/2,
a3/2이라고
쓰며 1/a, 1/aa, 1/aaa대신에 a-1,
a-2,
a-3이라고
쓴다.”
데카르트와
뉴턴을 거치며 지수 표기법은 오늘날과 같은 편리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만약 아르키메데스가 지수 표기법을 알았더라면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의
개수를 한결 편리하게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이언스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