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인사들, 기념 추모문집 발간
"요즘 여성 리더들은 좀 '치레기(찌꺼기)' 같은 데가 있어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어디 붙어서
살아남으려고만 하고요. 우리 가부장적 문화가 여성들을 그렇게 만들어놓은 측면도 있지만, 이제는 '겨레적 어른의 리더십' '대형 리더십'을 가진
여성들이 좀 나와서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켜야 해요. 그 어른처럼."
윤후정 전 이화여대 총장이 '그 어른'이라고 칭한 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고(故) 이태영(1914~1998) 선생이다. 18일 서울 여의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열리는 '이태영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는, 어느 때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지만 '여성계 큰어른'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황소 같고 태산 같은 스승"으로 존경받았던 이태영을 추모하는 자리다. 기념식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박영선 국회의원, 장명수 이화여대 이사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다.
윤후정 전 이화여대 총장이 '그 어른'이라고 칭한 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고(故) 이태영(1914~1998) 선생이다. 18일 서울 여의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열리는 '이태영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는, 어느 때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지만 '여성계 큰어른'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황소 같고 태산 같은 스승"으로 존경받았던 이태영을 추모하는 자리다. 기념식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박영선 국회의원, 장명수 이화여대 이사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다.
- 여성을 울리는 가족법 개정운동을 시작해 호주제 폐지의 단초를 마련한 이태영 선생의 생전 모습.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공
◇벽을
뚫어서라도 나아가라
이태영 선생이 가족법 개정운동의 요람으로 삼았던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추모문집도 발간했다. 여성계, 법조계 등 명사 30명은 '이태영 리더십'의 첫째 덕목으로 거침없는 도전 정신을 꼽았다. 생전 인터뷰에서 이태영은 "저 바닥에 있는 인생들에게, 아버지도 없는 내가 어떻게 서울까지 와서 땅끝까지 돌아다니며 배웠는가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부군 정일형 박사의 형무소 옥바라지를 위해 누비이불 장사, 보따리 행상까지 했던 여인이다.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등 4남매를 키우면서 32세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고등고시에 합격한 건 38세다. 윤후정 전 총장은 "야당 정치인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이 거부돼 변호사가 되었지만, 이태영 선생은 이를 악법에서 여성을 해방하라는 사명으로 여기고 거침없이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학교 제자였던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은 "강의 시간에 선생님은 '가다가 벽에 부딪히면 벽을 뚫어서라도 길을 내어라'고 가르치셨다"고 전했다.
◇진심으로 헌신하라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던 부(富)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던지고 소외되고 짓눌린 서민들, 여성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것은 이태영 리더십의 진수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일반 법조인들이 소홀히 했던 법률 상담 등 여러 가지 구조 활동을 펼치면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온몸을 던져 고난을 무릅쓴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장명수 이화여대 이사장은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자원봉사의 강물을 만드신 선생은 어디서 여자들이 차별받지 않나, 구박 받으며 눈물 흘리는 건 아닌가 하시며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지켜봤다"고 추억했다. 이태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해온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은 "노는 건 죄악이라고 여겼던 선생님 때문에 일은 원 없이 배웠다"며 웃었다. 그는 "리더십은 헌신에서 비롯되는데 요즘 여성 지도자들, 엘리트들에게서는 공적인 사명감보다는 개인의 출세, 욕심이 더 앞서 있는 듯 보여 아쉽다"고 덧붙였다.
◇엄하고도 자상했던 어머니 리더십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땅의 아녀자들을 엄연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태영 선생의 행장이 빛나는 것은 법을 업으로 삼아 여성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해나갔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여성 대통령 시대의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선생은 약한 자를 보듬고 감싸 안는 여성의 미덕을 구현했다. 국민 누님, 국민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태영의 삶은 더욱 빛난다." 윤후정 전 총장은 "가족법 개정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퍼붓던 폭언과 행패에 미동도 안 했던 장대인이면서도, 섬세하고 자상한 한국의 어머니였다"고 전했다.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이태영은 "돈이나 권력으로 지탱하는 사업은 결코 장수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웃과 함께 오로지 사랑으로 지탱해온 사업은 그 생명이 영원하다"는 유언을 남겼다. 곽배희 소장은 "어디에 머리를 두고 나아가야 할지 모를 때 이태영 선생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새긴다"고 했다.
이태영 선생이 가족법 개정운동의 요람으로 삼았던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추모문집도 발간했다. 여성계, 법조계 등 명사 30명은 '이태영 리더십'의 첫째 덕목으로 거침없는 도전 정신을 꼽았다. 생전 인터뷰에서 이태영은 "저 바닥에 있는 인생들에게, 아버지도 없는 내가 어떻게 서울까지 와서 땅끝까지 돌아다니며 배웠는가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부군 정일형 박사의 형무소 옥바라지를 위해 누비이불 장사, 보따리 행상까지 했던 여인이다.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등 4남매를 키우면서 32세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고등고시에 합격한 건 38세다. 윤후정 전 총장은 "야당 정치인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이 거부돼 변호사가 되었지만, 이태영 선생은 이를 악법에서 여성을 해방하라는 사명으로 여기고 거침없이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학교 제자였던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은 "강의 시간에 선생님은 '가다가 벽에 부딪히면 벽을 뚫어서라도 길을 내어라'고 가르치셨다"고 전했다.
◇진심으로 헌신하라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던 부(富)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던지고 소외되고 짓눌린 서민들, 여성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것은 이태영 리더십의 진수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일반 법조인들이 소홀히 했던 법률 상담 등 여러 가지 구조 활동을 펼치면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온몸을 던져 고난을 무릅쓴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장명수 이화여대 이사장은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자원봉사의 강물을 만드신 선생은 어디서 여자들이 차별받지 않나, 구박 받으며 눈물 흘리는 건 아닌가 하시며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지켜봤다"고 추억했다. 이태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해온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은 "노는 건 죄악이라고 여겼던 선생님 때문에 일은 원 없이 배웠다"며 웃었다. 그는 "리더십은 헌신에서 비롯되는데 요즘 여성 지도자들, 엘리트들에게서는 공적인 사명감보다는 개인의 출세, 욕심이 더 앞서 있는 듯 보여 아쉽다"고 덧붙였다.
◇엄하고도 자상했던 어머니 리더십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땅의 아녀자들을 엄연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태영 선생의 행장이 빛나는 것은 법을 업으로 삼아 여성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해나갔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여성 대통령 시대의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선생은 약한 자를 보듬고 감싸 안는 여성의 미덕을 구현했다. 국민 누님, 국민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태영의 삶은 더욱 빛난다." 윤후정 전 총장은 "가족법 개정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퍼붓던 폭언과 행패에 미동도 안 했던 장대인이면서도, 섬세하고 자상한 한국의 어머니였다"고 전했다.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이태영은 "돈이나 권력으로 지탱하는 사업은 결코 장수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웃과 함께 오로지 사랑으로 지탱해온 사업은 그 생명이 영원하다"는 유언을 남겼다. 곽배희 소장은 "어디에 머리를 두고 나아가야 할지 모를 때 이태영 선생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새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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