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형(50)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이자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초빙 석좌교수. 그는 세계적 석학 앤드루 와일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옥스퍼드대 정교수로 추천할 정도로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수학자다. 아버지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한 그는 서울대 개교 이후 처음으로 조기졸업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 책을 펴냈다는 소식에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2005년 미국에 가족을 두고 그가 유럽으로 연구하러 떠났을 때 아들에게 쓴 편지를 묶은 책이 ‘아빠의 수학여행’이다. 그해 5월 15일부터 6월 29일까지 쓴 스무 통의 편지는 당시 일곱 살 오신 군과 세 살 나일 군에게 배달됐다. 편지에는 안부 외에도 낯선 곳의 풍광, 새롭게 만난 사람,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 집안 어른들의 안부, 수학자 이야기, 건축과 예술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그가 ‘젖은 미소(동화 ‘피터 팬’에서 어른이 된 웬디와 피터가 만났을 때 지은 표정)’를 지으며 쓴 편지의 마무리는 늘 ‘Good night, Mr. O’였다. 끊임없이 질문 던지는 대화 방식 그에게 “당시 일곱 살 아이가 읽기에 너무 어려운 내용 아니냐”고 묻자 그는 “제 편지는 아버지가 쓰셨던 심각한 테마의 편지보다 훨씬 가볍다”며 “평소 아들과 나누던 대화의 연속”이라고 했다. 편지에는 ‘질문’도 많았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 같은 아버지. 그가 추천하는 자녀와의 대화 방식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끝없이 쏟아지는 부모의 질문에 당황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대화가 끝날 즈음 아이는 스스로 답을 구하게 된다. 이런 교육법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된 것이다. 김우창 교수 역시 1980년대 중반 미국 예일대로 유학을 떠난 김민형 교수에게 정성스런 편지를 띄운 것. 아들과 소통할 매개체로 편지를 택한 이유는 뭐였을까. 그는 자녀에게 편지 쓰기를 권장하며 책에 이렇게 적었다. ‘이메일이라도 괜찮다. 종이에 쓸 필요는 없지만 공들여서 쓰는 습관은 중요하다. 어차피 허비하기 쉬운 저녁 시간에 글짓기 연습을 하게 될 뿐더러 가련한 마음을 건설적으로 위로하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따로 없다.’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았고 사진 보내기에도 좋았거든요. 지금은 이메일 파일 첨부가 훨씬 쉬워졌지만 당시에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편지를 쓰면 말로 하는 것에 비해 정신도 맑아지고 침착해져요.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죠.”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받아들고 기뻐하던 큰아들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고등학교 1학년이 됐다. 어떤 아버지인지 묻자 “감정을 드러내는 부모가 많이 사랑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경우에는 많이 표현하는 편”이라고 했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라 감성적인 이야기는 싫어해서 과학이나 수학 이야기를 주로 나누죠. 아내는 저보다 엄한 편이에요. 스타일이 확실히 다르죠.”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정확히 이야기하기 어렵다”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화내는 건 쉽지만, 적당한 대상에게 알맞은 정도로 적당한 때 화내기 위해서는 수양이 필요하다”며 “아이를 다룰 때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엄한 부모인지 엄하지 않은 부모인지 물어보셨는데, 부모로서 아이를 야단치거나 하기 싫어하는 걸 시켜야 할 때가 있잖아요. 자식을 위해 그렇게 행동한다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위하는 마음과 권력 행사에 대한 마음이 섞일 수 있어 될 수 있으면 자제해야겠다고 늘 생각해요.”
뛰어난 학생 만드는 한국 교육의 장점 영국 옥스퍼드대와 서울대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김 교수. 양국 학생과 교육 환경을 겪었으니 국내 교육 시스템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이 질문에도 신중했다. 한두 사례나 단면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다는 거였다. “어느 교육 시스템이나 장단점이 있어요. 우리나라 교육 환경의 장점은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거예요. 서양 학생들은 잘 안 될 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학습에 대한 감은 우리 학생들이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약점은 임기응변에 약하다는 거죠. 영국 학생들은 순발력 트레이닝이 잘돼 있거든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시스템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는 게, 요즘 학생들은 제 학창 시절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넓어요. 그만큼 잘되는 부분이 많다는 거겠죠.” 그는 “아이에 대한 걱정은 국가가 다르다고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며 “영국에서도 가정교사를 채용하는 열성적인 부모가 있는 반면 방임하는 부모가 있는 등 각자의 스타일이 다르다”고 했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적극적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미국 뉴욕시의 유명 대학 아이들은 우리나라 학생들과 별 차이 없이 공부해요. 예전에 ‘뉴욕타임스’에서 한국의 유명 고등학교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의 학업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써서 놀랐어요. 그곳에서 가르치는 미국인 교사 인터뷰도 있었는데 ‘뭘 가르쳐도 관심 없어 하는 학생만 보다 여기서 새벽 2시에 질문 이메일이 오고 답신하면 새벽 4시에 다시 질문할 정도로 열심인 학생들에게 감격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부모들의 우려가 너무 커서 우려된다”며 웃었다. “아까 인터뷰하며 ‘호랑이 엄마’라는 말을 쓰셨는데, 그게 서양에서 흔히 생각하는 동양 부모의 이미지로 굳어진 것 같아요. 책을 낸 동기 중 하나가 교육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더라도 ‘호랑이’일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우리 부모들은 굉장히 잘하고 있으면서 걱정이 많아서, 장점을 너무 모르고 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세요.” 앞으로 수학 필요성 더 커질 것 2012년부터 수학 콘서트 ‘KAOS(Knowledge Awake On Stage)’를 열며 수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에게 일반인에게도 수학이 필요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길게 대답해도 되겠느냐”며 눈을 빛냈다. “첫째로 수학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깨졌어요. 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수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건 눈에 보이거든요. MIT 언어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수학 수업 이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 그런 경향이 강해질 거예요. 옥스퍼드대에서도 수학과 학생들이 채용이 잘되는 이유도 사회에서 수학을 잘하면 장점이 되는 분야가 늘었기 때문이에요. 엑셀 쓰는 것만 해도 수학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잖아요. 수학은 문학, 언어학 등을 공부할 때도 큰 힘이 될 거예요. 또 하나는 역사적인 조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초등학생도 나눗셈을 할 줄 알지만, 아르키메데스나 유클리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눗셈은 학자들만 할 수 있는 첨단 학문이었어요. 뉴턴이 미적분학을 개발한 게 3백50여 년 전인데, 지금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걸 보면 5백여 년 후에는 양상이 더 달라지겠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상식이 되는 거고, 지금 우리는 그런 과정에 가담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수학적인 사고는 마음의 틀을 강하게 해줄 수 있어요. 세계를 보는 양상, 20세기 구조주의 사상, 사회 계급 제도를 추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수학적인 구조가 깔렸어요. 물리학자는 우주를 수학이라고 생각하고요. 수학을 배워두면 세상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마음의 양식이 되죠. 더 얘기할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만 할게요(웃음).” “아이 교육은 나보다 잘하는 부모가 많다”며 “아이보다 어른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김 교수는 앞으로도 수학책을 집필하고 수학 콘서트 활동을 확산해나갈 예정이다. “인문학 강좌는 백화점 문화센터부터 강의의 수요도 공급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자연과학이나 수학 강좌는 적더라고요. 과거에 ‘수포자(수학포기자)’ 소리 듣던 사람들에게도 자신 없던 분야를 스스로 알아가면서 얻는 치유 효과를 누리게 해주고 싶어요.” ■ 참고도서·아빠의 수학여행(은행나무)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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