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현중학교에서 영재교육원 운영을 맡고 있는 김수미(43) 교사는 "영재교육이야말로 평등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일반 학교 교육 수준을 뛰어넘은 아이들이 사교육 시장에 내몰리지 않도록 공교육이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형태가 영재교육이란 얘기다. "영재교육기관이 다루는 분야는 수학·과학 말고도 꽤 많아요. '난 그림 못 그려' 하고 지레 포기하던 아이가 미술영재원에서 교차 수업을 받은 후 '나한테 이런 소질이 있었네!' 하고 깨닫는 경우도 있죠. 그런 과정을 거쳐 자기 진로를 스스로 찾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영재교육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역기능|10년간 양적 성장에 치우쳐
2011년 현재 전국에 있는 영재교육기관은 총 3049곳이다(한국교육개발원 집계). 10년 전 69곳이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이 중 대학 영재교육원(71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재교육은 현직 중·고교 교사가 담당한다. 소정의 연수 프로그램(60~90시간)을 이수한 교사는 누구나 영재교육을 맡을 수 있어 대학 영재교육원에 비하면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이와 관련, 김수미 교사는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갈증을 느껴 관련 분야를 좀 더 공부하고 싶어도 마땅한 교사 재교육기관이 없어 막막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아쉬워했다.
김선희씨의 딸은 초등 4학년 때 영재학급에 발탁된 데 이어 초등 6학년 때부터는 대진대 영재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은 김씨의 딸과 달리 중복 지원이 금지된 탓에 영재교육에서 아예 소외되는 학생도 부지기수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영재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은 영재학교·영재학급·영재교육원 가운데 하나만 골라 지원할 수 있다. 좀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싶어 대학 영재교육원에 진학했다가 떨어지면 학교에서 이뤄지는 영재교육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김수미 교사는 "이곳저곳에서 중구난방으로 영재교육을 실시할 게 아니라 일단 영재학급에서 점검을 받은 후 우수한 학생은 대학 영재교육원에 보내는 식으로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망|스펙·입시수단 취급은 '금물'
박규영씨는 "영재학교 동기들끼리 '우린 로열 로드(royal road)를 탔다'는 우스갯소리를 곧잘 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영재학교 출신'이란 이름표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학 입시나 대학원 진학에서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그는 "동기 부모님 중엔 '영재학교에 반드시 입학해야 한다'며 자녀를 압박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부모와 불화를 겪는 친구도 꽤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동기생 150여 명 중 10명가량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퇴했다.
영재학교가 양적으로 급성장하면서 일부에선 영재학교를 '고급 스펙'이나 '상위권 대학 진학용 티켓' 정도로 여기는 게 현실이다. 김수미 교사는 "영재교육원을 찾는 학생도 고학년일수록 수업 자체를 즐기기보다 수료 여부 등에만 관심을 보이곤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영재교육이 극소수 학생만을 위한 특수교육이 아닌 상황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추가하겠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그릇된 욕심이 빚은 결과다.
박규영씨는 지난해 카이스트를 달군 재학생 연쇄 자살 사건을 거론하며 "영재교육 이수자에게 과도한 기대를 보내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부하는 걸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영재교육을 억지로 받게 하는 건 엄청난 불행입니다. 본격적 영재교육을 받기 전,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공부하는 게 정말 행복한가'부터 자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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