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영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자전적 에세이 내
한국식 성공 원하는 부모와 갈등 - 발레 못하게 해 실의… 문학서 길 찾아
예일대 진학, 英 옥스퍼드서 문학박사… '아이티인 변호' 고홍주에 감명, 법학으로
난 선생님 복이 있었다 - 고비때마다 '너는 할수 있다'고 격려해주고
공부가 놀이처럼 즐겁다는 걸 일깨워줬죠… "이민자 차별 안 당하고 선물처럼 기회얻어
"강의 첫날 '완벽한 실패' - 잘해야지 다짐하며 단상으로 가다 넘어져
오히려 긴장 풀리며 마음 편해지더라… "복도에 걸린 내 초상화… 정말 민망하다"
아이들 교육은 - 난 완벽한 엄마도, 완벽해지기도 안바란다
내가 사랑했던 책 함께 읽고, 여행하고… 아이들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토론할뿐
미국 예일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에서 다시 법을 공부한 뒤 2006년 한국계 최초로 하버드 법대 교수로 임용된다. 2010년에는 하버드 법대 종신 교수로 선출됐다. 아시아 여성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라, 하버드라면 껌벅 죽는 한국에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그가 자전적 에세이를 들고 이달 한국에 왔다.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북하우스)는 영어에 대한 공포와 수치심으로 미국 교실에 앉아 있던 일곱 살 소녀가 전 세계 수재가 모이는 하버드 법대 강단에 서기까지의 성장사다. 석지영은 "나에게 성공이란, 내게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을 찾아 그것을 탐구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지영은 한국말을 대부분 알아들었지만, 답변은 영어로 했다. 나이 마흔에 자서전을 쓰게 된 동기부터 물었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친딸이라는) 수사적 이름표가 나한테 붙었다는 생각에 움찔했다. 이 책을 써서 내 (진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엄친딸' 아니다
―자신을 '엄친딸'이라고 부르는 것에 충격받아 그걸 해명하려고 책을 썼다던데.
"종신 교수가 된 뒤 한국에 왔더니 어딜 가나 나더러 '엄친딸'이란 단어를 아느냐고 묻더라. '재능 많고 총명하며 예쁘기까지 한 엄마 친구의 완벽한 딸'이라는 뜻이라던데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놀랐다. 그 별명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 속엔 '비교'가 들어 있고, 비교의 대상이 자녀이며, 뭣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것 때문이다. 비교는 자녀에게 상처를 준다. 아이들은 부모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아낀다는 걸 느끼며 자라야 한다."
―석지영의 성공비결이 궁금한 부모들은 이 책을 읽고 하버드에 가려면 피아노, 발레, 불어까지 모든 방면에 만능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녀를 더욱 압박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일 뿐 내가 이렇게 성공했으니 당신도 이렇게 해보라는 지침서가 아니다. 한국 문화와 교육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공통의 주제,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음악, 무용, 위대한 문학작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예술적 감수성을 성장기에 꼭 기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예술을 이해하고 즐기는 과정을 통해 내면에 잠재된 열정을 발견하고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석지영이 하버드가 아닌 다른 대학의 교수였다면 화제가 되지 않았을 거다. 한국에선 스님도 하버드를 나와야 인기를 얻는다.
"한국인들에게 하버드대학이 특별한 상징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교육과 배움의 성취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는 한국적 가치관에서 기인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하셨을 때 일면식 없는 나를 알아보셨을 정도다(웃음).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있으면 하버드 투어에 나선 한국 소녀들이 사인을 요청한다.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한국 독자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게 된 것은 기쁘다."
―당신 또한 예일대 법대가 아니라 하버드 법대를 선택했다.
"학부를 예일에서 다녔기 때문에 다른 학교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또 하버드 법대는 미국의 법률 시스템과 깊이 연관돼 있다. 미국 법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소크라테스 교수법도 하버드 법대에서 시작된 것이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해럴드 고(고홍주) 미국 국무부 법률고문 등 한국계 미국인들의 성공이 귀감이 되고 있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과 한국 부모의 교육열이 시너지를 일으켰다는 분석에 동의하는지.
"미국 시스템과 한국 부모의 교육열이 결합(combination)된 것은 맞지만 그들이 조화(harmony)를 이뤘다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충돌(conflict)하고 갈등했던 것이 성공의 에너지 아닐까. 부모가 지닌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미국의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고 이를 헤쳐나가려는 노력이 자녀 세대를 강인하게 만들었다. 저항은 혁신의 에너지다."
교포 1.5세대인 석지영 또한 '한국식' 성공을 원하는 부모와 갈등했다. "춤을 출 때 진정 살아있다"고 느꼈던 그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아메리칸발레학교(SAB)를 그만둔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를 구원한 것이 문학이다. 예이츠, 디킨슨, 브레히트에 빠져든 소녀는 예일대 문학부에 들어갔다가 마셜 장학생에 선발되어 옥스퍼드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어머니의 교육열이 대단했더라.
"공부는 물론 옷 입는 법까지 딸들의 부족한 점을 관찰하고 고치게 하는 어머니와 사는 게 쉽지는 않았다(웃음). 물론 어머니의 열성적인 뒷바라지가 오늘의 나를 있게 했지만, 동시에 '아, 나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겠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가는 진정한 성장의 기회가 사라지겠다'는 깨달음도 함께 얻었다."
―발레를 못 하게 하는 부모에게 맞서 저항할 용기는 없었는가.
"열다섯 살인 내게 힘이 없었다. 지금도 발레의 꿈을 접은 게 가슴 아프다. 그때의 교훈은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열망이 이끄는 길로 가는 게 맞는다."
―그래도 서울대 나온 아버지와 이화여대 나온 어머니의 DNA를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심하게 운이 좋다는 걸 안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여러 다른 요소가 합쳐져서 결과물이 나온다. 부모님 없이 내가 있을 수 없지만 그것이 DNA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스승 복도 많았더라. 고비 때마다 등장하는 선생님들은 '너는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손을 잡아준다.
"내가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교사의 중요성이다. 내 인생을 이끈 가장 중요한 관계(key relation)는 대부분 선생님과 이뤄졌다. 나의 선생님들은 학생 개인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조언해주셨다. 학습은 놀이처럼 재미있다는 걸 일깨워줬고,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소수민족, 이민자, 그리고 여성이어서 차별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경험'이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의 조합으로 형성된다. 내 기억에 차별을 심하게 받은 경험은 없다. 오히려 선물처럼 여러 가지 기회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불가사의한 것은, 발레 하던 소녀가 법대 교수가 됐다는 사실이다. 책에 보니 아메리칸 발레학교 동료였던 발레리노는 무대에서 은퇴한 뒤 하버드에 들어가 공공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더라. 이게 가능한 일인가?
"미국에서는 자신을 재창조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평생 한 가지 직업만 갖고 사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하나의 커리어(career)를 갖고 있다가 새로운 공부를 해서 새로운 커리어를 갖는 것,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 아니다. 나는 종신 교수라 내가 원하는 만큼 대학에 머물 수 있지만 10년 뒤에 내가 어떻게 될지 100% 확신할 수 없다."
영어 이름이 '지니 석'인 그가 개설한 '공연예술과 법' 강의는 하버드 법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 중 하나다. 알렉 볼드윈 같은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유명 발레리나, 작가들을 강사로 초청해 열띤 토론을 펼친다. 형법, 가족법이 전공이지만 석지영은 패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 법의 접목을 시도한다. 하버드 법대 교수 100여명이 만장일치로 그를 종신 교수에 선출한 것도 이런 실험과 학문적 성취 덕분이다.
―하버드 법대에서는 종신 교수가 되면 초상화를 그려 복도에 건다던데.
"매일매일 그 앞을 지나다니는 게 고역이다. 정말 민망하다(웃음)."
―문학에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문학을 읽고 즐기는 건 행복했지만 그걸 해석해 글로 쓰는 작업이 힘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묘사하는 일보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실용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해럴드 고 국무부 법률고문의 영향이 컸다. 그는 1991년 아이티 쿠데타 후 폭력과 박해를 피해 피신한 아이티인들을 대변한 변호사였다. 미국 정부는 난민들을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했다가 아이티로 돌려보냈다. 당시 예일대 법대 교수였던 해럴드 고는 법대 학생들과 함께 아이티 난민을 대표하여 연방법원에서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해럴드 고 자신이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모국을 떠나 미국에 망명한 한국인 부부의 자녀라는 점에서 내가 받은 감명은 더욱 컸다. 해럴드 고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를 바쳐 일하는 사람이다."
―하버드 법대에서 첫 강의를 하던 날, 너무 긴장한 바람에 단상을 향해 걸어가다가 장렬하게 넘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더라.
"하하! 그날 정말 긴장했다. 옷도 완벽하게 입었다.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밖에 없었다. 커피와 함께 강의실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보다 더한 실패는 앞으로 없을 테니까(웃음). 학생들에게 완벽한 교수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지자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긴장도 풀려 우리 강의실은 매우 인간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배우 알렉 볼드윈을 강사로 초청했다. 미국의 가족법이 이혼한 남성이 자녀양육권을 얻는 데 불합리하다는 점을 강조한 토론회였다.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국가가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고 성취도 높았다. 그러나 여기서 파생된 문제점이 있다. 가정 폭력 '혐의자'들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혐의자들의 권리는 대체로 무시된다. '가정 폭력'의 법적인 정의가 매우 넓어지면서 남성에게 더욱 불리해졌다. 특히 이혼은, 남성이 가정 폭력의 혐의를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자녀양육권을 여성에게 빼앗긴다. 이혼 과정을 겪은 볼드윈 또한 아버지도 어머니만큼 자녀를 양육하고 싶은 권리가 있는데 현재의 법은 남성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항의가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여성운동이 일궈온 개혁과 성공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성주의 개혁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의도하지 않은 결과, 부정적인 결과까지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우리 세대 페미니스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단지 여성을 돕는다는 명분만으로 정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사들을 강의에 초청한다. 보수적인 하버드에서 '튄다'는 핀잔을 듣지는 않는지.
"하버드가 젊은 교수들을 뽑는 이유는 혁신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버드는 시간에 갇혀서 변하지 않는 학교가 될 것이다. 내가 아는 하버드는 결코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이 한국에서 인기다. 당신은 책에 '내게 법률 연구와 법학도를 가르치는 일은 법 안에서 위대하게 살기를 갈망하는 방법'이라고 썼더라. '법이 곧 정의'라고 믿고 장발장을 추적하는 자베르 경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법학도를 가르치는 나에게 그 질문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하버드에서는 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단지 법의 언어에 고지식하게 따르는 법률전문가가 아니라 실용적인 지혜와 절제력, 자비심을 가지고 법을 포괄적이고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자베르의 '법은 곧 정의'라는 경직된 사고의 교훈은 법학뿐 아니라 모든 고등교육(elite education)에 적용된다. 세상에는 정확하게 정해진 것보다 애매모호한 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나.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고 완벽해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어린 시절 사랑했던 책들을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 여행을 떠날 때 가능하면 아이들을 데려간다. 학교 개근보다 여행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일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아이들과 토론한다."
―세속적인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부모의 과도한 욕심, 그리고 자신의 꿈 사이에서 씨름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부모와 학생 모두 성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같은 하버드대 교수라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찾아라. 그러면 진정한 성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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