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파|"제가 가진 것 나누면서 살래요"
"중 1 때부터 엄마가 제 이름으로 페루에 사는 홀거 세군도 카바카바(9)군에게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공교롭게 그맘때 우리집 형편도 좀 어려워져 '이 판국에 남까지 돕겠다고 나서나' 마뜩찮았죠. 그런데 홀거가 매월 감사 편지를 보내오는 거예요. 홀거가 자라는 걸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감동이 벅차올라요." 이은지(서울 성신여고 2년)양의 목표는 '사회복지학과 진학'이다. 일찌감치 기부를 실천해 온 어머니 덕에 나눔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대학 입시를 치르는 이양은 학교 쉬는 시간을 쪼개어 영단어를 외우는 등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칭 '드라마 마니아'이자 '잠꾸러기'인 박예은(경기 의정부 부용중 2년)양 역시 봉사의 꿈을 실천하기 위해 TV 시청과 취침 시간을 줄일 계획이다. "(기독교 대학인)한동대에 입학해 선교 활동을 펼치고 싶어요.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빈민촌 아이들을 도우려고요. 제 꿈을 이루려면 올해부터 내신 관리에 신경 써야죠. 요즘은 매일 자기주도학습플래너도 쓰고 있답니다."
◇작심파|"나 자신과의 약속, 꼭 지켜야죠"
김영준(서울 흥인초등 6년)군은 겨울방학을 맞아 선행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변호사의 꿈을 이루려면 중학생이 되는 지금부터 공부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 영화 '부러진 화살'(2011)을 본 후 '억울한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는 목표를 세운 김군은 요즘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중학교 영어·수학 공부에 열심이다.
양병일(서울 개봉중 3년)군의 형은 올해 서울대 새내기가 된다. "형과는 달리 공부를 잘 못한다"며 멋쩍어하던 그는 "게임만 시작했다 하면 아무 일도 못하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올해부턴 반드시 시간 계획표를 짜보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흥미를 살린 '프로그래머'의 꿈을 이루는 동시에 채팅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는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이 다부졌다.
박찬빈(서울 단국대사범대학부속고 1년)군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박군에게 아버지는 둘도 없는 롤모델이다. 경영인을 꿈꾸면서도 문과 대신 이과를 택하려는 건 그 때문이다. "문·이과를 아우르는 융합인재가 되고 싶다"는 박군은 올해 '나만의 노트'를 만드는 게 목표다. "학교 수업도 열심히 듣겠지만 틈틈이 경제학 교과서를 혼자 읽고 노트에 정리해두려고요. 제 생각과 느낀 점을 꾸준히 적어나가다 보면 나중에 큰 자산이 되지 않을까요?"
'내년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큰 꿈을 이루겠다'고 벼르는 학생도 있었다. 박희건(서울 경인초등 5년)군의 내년 목표는 전교 학생회장 당선이다. 박군은 아역 배우로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KBS2)에 출연한 적이 있어 이미 교내에선 유명 인사다. "제 선거 공략 포인트는 '반전'이에요. 이번 학기엔 잠시 주춤했지만 평소엔 90점대 시험 점수를 유지하는 모범생이거든요. 절 회장으로 뽑아준다면 친구들은 TV 속 모습 외에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제 모습도 보게 될 거예요."
이창한(경기 안산 선부초등 2년)군의 꿈은 세계 무대에서 뛰는 야구 선수다. 요즘은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로 진출하게 된 류현진(26)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다. "올해부터 영어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요. 3학년부터 영어 과목이 생기는 데다 제가 언제 외국으로 진출할지 모르니까요.(웃음) 물론 학교 야구부에 입단해 투수 훈련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게 먼저겠죠?"
◇실속파ㅣ"공부도 좋지만 취미 즐길 거예요"
지난해 몸이 불편해 수술대에 올랐던 김상윤(서울 대곡초등 3년)군은 "공부 욕심을 줄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안 좋아 병원 신세를 자주 졌어요. 엄마는 제게 친구 엄마들과는 정 반대로 '성적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신신당부하셨죠. 하지만 지난해 기말고사 수학 과목에서 96점을 받곤 '하나만 더 맞힐 걸' 하며 속상해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내년엔 시험 문제 하나 틀리는 것쯤은 지나칠 수 있는 건강과 여유를 되찾고 싶어요."
김동건(서울 연희초등 4년)군은 틈틈이 부모님에게 마술 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김군의 희망은 번번이 좌절됐다. "엄마가 '영어 성적이 오르면 학원에 보내주겠다'고 하셨어요. 내년엔 영어 시험 100점을 맞아 꼭 마술 학원에 갈 거예요. 언젠간 신체 분리 마술같은 화려한 마술도 배워볼 거고요."
◇걱정파ㅣ"내년 공부요? '걱정 반 기대 반'"
표예원(7)양은 내년이 유독 걱정되는 예비 초등생이다. 표양에게 내년 소원을 묻자 "이웃 언니들이 말하는 걸 들으니 초등학교에선 숙제를 많이 내준다더라"는 푸념이 돌아왔다. "학교에 가면 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야 하는 데다 유치원 재즈댄스 선생님과도 헤어져 무척 슬퍼요. 하지만 새 친구도 많이 사귀고 숙제도 같이 하면 훨씬 힘이 나겠죠?"
한현승(서울 대곡초등 1년)군은 터울이 제법 있는 중 1 형을 볼 때마다 수학 공부에 대한 염려가 늘어난다. "수학 우등생인 형은 초등생인 저한테까지 '수학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당부를 입에 달고 살아요. 하지만 전 과학 공부가 더 좋아요. 얼마 전 소금을 물에 섞는 실험을 해봤는데 눈 앞에서 소금이 사라지니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내년엔 형이 좋아하는 수학과 제게 흥미로운 과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요."
“화학과 경제학,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죠? 전 두 분야에 두루 흥미가 있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 관련 분야 책을 찾아 읽고 있어요. 내용과 감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독서교육지원시스템(reading.go.kr)에 그때그때 기록해두는 건 물론이고요. 이런 경험이 쌓이니 저만의 진로가 보이기 시 작해요. 꿈을 찾는 학생이라면 다양한 책을 읽는 습관부터 길러보세요.”(박찬빈)
“대학 들어갈 때 논술이 중요하다고들 말하잖아요. 문제는 논술 실력은 어느 날 갑자기 느는 게 아니란 사실이에요. 제 경우 쉬운 단어 위주로 기사가 작성되는 어린이 신문을 꼼꼼히 읽은 후 스크랩해둬요. 필독 도서 중에선 제 취향에 맞는 책만 골라봐요. 일단 흥미가 붙으면 자연스레 다른 책도 읽고 싶어지거든요. 전 고전문학을 좋아하는 편이라 ‘장발장’ ‘제인에어’ 같은 책에 손이 가더라고요.”(조아영)
초등생의 이색 새해 소원 이모저모
“설악산 정상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싶어요. 제 방에 붙어 있는 전국지도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 중 하나인 설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답니다.”(김동건)
“지난해 고양이를 입양했어요. 이름은 ‘아푼’, 페르시아어로 ‘왕자’란 뜻이에요. 사람으로 치면 벌써 나이가 열 살 정도래요. 내년에도 아푼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김상윤)
“키가 많이 컸으면 좋겠어요. 사실 지금 전 키로 치면 반에서 작은 순서로 5등 안에 들 정도죠. 올해는 우유 많이 마시고 배추처럼 몸에 좋은 채소를 많이 먹어 쑥쑥 크고 싶어요.”(한현승)
촬영 현장 뒷이야기
한 해 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조선일보사 편집동 7층 스튜디오엔 후끈한 열기가 감돌았다. 열두 학생 중 첫눈에 시선을 잡아끈 건 단연 박희건군이었다. 최고참 이은지양은 박군을 보자마자 “국수(‘오작교 형제들’ 속 박군이 맡았던 역할명)다!”라며 반가워했다.
열두 학생은 이날 처음 얼굴을 마주했지만 특유의 유연함으로 금세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양병일군은 앞줄 초등생 후배들의 어깨에 손을 얹는 ‘스킨십’ 이후 누구보다 활짝 웃으며 촬영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던 김상윤군은 어려운 자세를 유지하느라 다리가 쥐가 나기도 했다. 표예원양은 촬영장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카메라 렌즈에 좀체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다. 한 시간여에 걸친 촬영 중간중간 눈을 마주치며 소소한 얘길 나누는 사이, 긴장이 풀린 열두 명의 표정이 한꺼번에 밝아졌다. 기사에 곁들여진 사진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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