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그리스 신화에서 1백개의 눈을 가진 괴물 아르고스는 여신 헤라의 황금사과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헤르쿨레스는 아르고스를 죽이고 황금사과를 훔쳐냄으로써 그에게 떨어진 12가지 벌 중 하나를 해결한다. 아르고스를 총애했던 헤라는 그 1백개의 눈을 가장 아름다운 새 중 하나인 공작새에게 달아 주었다. 수컷 공작새의 펼쳐진 꼬리깃털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단지 이런 슬픈 사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나비의 날개가 아름다운 것은 왜일까.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1915년 다음과 같은 방정식을 만들었다.
Rab -$\frac{1}{2}$ gabR = $\frac{8πG}{{c}^{3}}$Tab
그는
“이 방정식의 왼쪽은 대리석 건물처럼 아름다운데, 오른쪽은 헛간처럼 엉망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은 10개의
거리함수에 대한 연립 편미분방정식으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방정식 중 하나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이를 보고 왜 ‘아름답다’고 말했을까.
공작 꼬리는 기하학적 대칭성을 이룬다.그러나 물리학에서의 대칭성은
아름다움의 기준은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서시는 모든 사람의 넋을 나가게 하는 빼어난 미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까지 서시, 양귀비, 클레오파트라가 천하의 미인일 수 있을까. 시대와 사회를 초월한 아름다움의 보편적 기준이 과연 있을까. 적어도 물리학적으로는 언제 어디에서나 통하는 보편적 기준을 말할 수 있다. 대칭성이 그 중 하나이다. 일상용어에서 대칭성이란 대개 ‘좌우대칭’이나 ‘방사대칭’과 같은 식으로 거울상 대칭 또는 회전대칭성을 가리키곤 한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다루는 대칭성은 ‘어떤 변화’(공간상의 위치, 전기전하의 양음, 좌우, 시간의 방향 따위)에 대해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성질로 정의된다.
물리학을
대략 정의하면, 우리가 실험실에서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들을 찾아서 이 물리량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밝히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이 물리량들은 어떤 조건 아래에서 변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밀폐된 그릇 안에 기체분자들이 있으면, 이 기체분자들에 특정의 온도,
압력, 부피를 대응시킬 수 있다. 27℃, 1기압, 20L와 같은 식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온도를 바꾸면 적당한 방식으로 다른 물리량들도
변한다. 당구대에서 굴러다니는 빨간 공과 흰 공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변하는 것은 당구공의 위치와 당구공의 속도, 그리고 당구공이
회전하는 방식이다. 이것들이 역학이라는 물리학의 분야에서 밝히고 싶어하는 내용이다.
이것과
아름다움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밑바탕에 ‘대칭성’이 깔려 있다면, 물리학 이론도 정말
기막히게 아름다운 면이 있다.
대칭성이
보존되는 물리방정식들
당구대
위의 당구공의 문제에서 일일이 당구공에 대한 모든 정보를 추적하고자 한다면 엄청난 메모리를 가진 슈퍼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구공의
움직임을 쉽게 예측하게 해주는 도구가 있으니, 그것이 곧 운동량 보존의 법칙, 각운동량 보존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회전하면서 부딪힌
당구공들의 움직임은 대단히 복잡하게 변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체 운동량, 전체 각운동량, 전체
에너지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손쉽게 당구공들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보존법칙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친 사람 중 하나가 아멜리아 에미 뇌터(Amelia Emmy Noether,
1882-1935)라는 수학자였다. 그는 여성만 아니었더라면 대 수학자 힐버트의 후계자가 됐을지도 모를 만큼 뛰어났다. 그는 에너지 보존법칙,
운동량 보존법칙, 각운동량 보존법칙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특수한 성질 때문에 나타나는 것임을 밝혀냈다.
우리는
1백m 달리기 시합을 할 때, 아무 때나 편한 시각을 출발시각, 즉 0초로 선택한다. 아무도 출발시각을 측정하기 위해 우주 태초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자를 써서 물체의 길이를 잴 때에도 길이의 출발점 또는 원점을 내 맘대로 정할 수 있다. 적기의
출현을 알리는 비상경보에서 적기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한 원점의 선택은 내 마음이며, 심지어 방향의 기준도 내 마음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시간적, 공간적, 방향적으로 기준점을 바꾸더라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이를 전문용어로 시간의 균질성(homogeneity of time),
공간의 균질성(homogeneity of space), 공간의 등방성(isotropy of space)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시간이나 공간의 원점을 바꾸거나 공간축의 방향을 바꾸더라도 그 모양이 달라지지 않는다. 즉 어느 시간, 어느 곳, 어느 방향에서든
뉴턴의 방정식이 동일하게 성립한다는 것이다.
당구공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운동방정식은 뉴턴의 운동방정식이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시간이나 공간의 원점을 바꾸거나 공간축의 방향을 바꾸더라도 그 모양이
달라지지 않는다. 세 종류의 보존법칙은 결국 이렇게 뉴턴방정식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대칭성’의 결과이다. 에미 뇌터는 에너지 보존법칙은
시간의 균질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며, 운동량 보존법칙은 공간의 균질성, 각운동량 보존법칙은 공간의 등방성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밝혀냈다. 물리학에서
대칭성은 그 방정식을 써서 물리현상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그 사람이 어떤 입장에 있든지 물리법칙이 달라지지 않음을 보장해준다.
그래서 이 아름다움은 영원하고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뉴턴의 방정식에는 시간과 공간의 균질성이나 공간의 등방성 말고도 아주 흥미로운 대칭성이 하나 더 있다. 이는 갈릴레이 대칭성 또는 갈릴레이
상대성이라고 부른다. 갈릴레이는 배 안에 있는 여러 물체들의 운동을 가정하면서, 배가 ‘등속직선운동’하고 있는 한, 역학법칙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시속 7백km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이라고 하더라도 여승무원은 지상에 있는 레스토랑에서처럼 우아하게 포도주를 따를 수 있다.
물론 이륙할 때나 착륙할 때, 즉 속도가 변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달라진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얻게 된 것은 전기와 자기와 빛과 관련된 현상을 기술하는 맥스웰 방정식에서 볼 수 있는 대칭성의 아름다움을 끈질기게 고집한
결과이다. 멈춰 있는 전하는 전기장을 만들지만, 움직이는 전하, 즉 전류는 자기장을 만든다. 그런데 멈춰 있는 전하를 ‘등속직선운동’하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대속도
때문에 기차 밖에 멈춰 있는 전하는 기차 안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그 사람은 자기장을 느낄
것이다. 기차 밖에 있는 사람에게 전기장인 것이 어떻게 기차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장이 될 수 있을까. 이는 기차 안과 밖에서 대칭성이
깨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19세기부터 전기와 자기는 같은 것의 다른 측면일 뿐이라는 사실이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전기와 자기에 대한 대칭성을
주장하는 것은 뉴턴역학과는 잘 맞지 않는다. 결국 대칭성을 유지하려면 갈릴레이 대칭성 대신에 전기장과 자기장이 같은 것의 다른 측면이라는 로렌츠
대칭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갈릴레이
대칭성과 로렌츠 대칭성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아인슈타인은 갈릴레이 대칭성을 포기하고 로렌츠 대칭성을 받아들였다. 전기와 자기와 빛과
관련된 대칭성을 고집하려다 보니, 아인슈타인으로서는 뉴턴역학을 수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시의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이 이 생각에 반발한
것은 너무 당연했다.
로렌츠 대칭성을 고집해 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아인슈타인.
넓혀진 대칭성, 일반상대성이론
그런데 왜 하필 ‘등속직선운동’을 하는 기차에 대해서만 그렇게 될까 하는 것이 그 다음 아인슈타인의 머리를 맴돌았던 문제였다. 그렇게 특수한 경우에만 대칭성의 아름다움이 존중되는 이론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이라 불렀다. 10년의 연구 끝에, 아인슈타인은 좌표를 정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더라도 물리법칙이 모두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만들어진 이론이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이 이론에서는 기차나 배가 가속운동을 하건, 어딘가의 주변을 도는 회전운동을 하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낙하운동을 하건, 어떠한 경우에도 물리방정식에 대칭성이 있다고 가정한다. 놀랍게도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현상을 기술하는 데 아주 딱 맞는 이론이었다. 1919년에 에딩턴과 크로멜린이 이끄는 원정대는 각각 남부 브라질의 소브랄과 서아프리카의 프린시페 섬에서 일식 관측을 통해 태양의 중력이 별빛을 휘게 만든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을 성공적으로 확인했다. 자연은 일반적인 대칭성의 아름다움을 존중한다는 증거가 하나 확보된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에서 왼편은 시간과 공간에서 좌표를 바꾸었을 때 달라질 수 있는 성질을 가리키며, 흔히 시간과 공간의 휘어짐을
나타낸다(실제로 기하학적으로 볼 때 곡면과 같은 휘어진 모양을 다룰 때 이 식들이 사용된다). 아름다움의 근원이 대칭성에 있다고 할 때,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왼편은 지극히 아름다운 표현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는 신의 영역을 표현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완벽한 대칭성과
조화만이 그 왼편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오른편은 물질의 존재를 나타내며, 형식적으로는 그런 대칭성에 걸맞게 고쳐 쓸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변하기 쉽고 ‘유한한’ 보잘것없는 형태를 띠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아름다운 대리석건물과 헛간으로 대비한 것은 바로
그런 뜻이었다.
양자역학에서의
대칭성
입자가속기 내에서의 입자의 충돌.자연이 대칭성을 좋아한다는 증거를 찾고자 하는 실험이다.
흔히 물리학 방정식들에 나타나는 대칭성은 항상 뭔가 통일적이고 세련된 정돈을 원하는 물리학자들의 지적 추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렇게 대칭성(아름다움)에 대해서만 진지하게 고민하더라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세계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모든 물질은 전자나 중성미자와 같은 여섯 종류의 렙톤(lepton, 가벼운 입자)과 세 가지 색깔과 여섯 가지 향기를 가진 쿼크를 궁극 구성물질로 해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근에 여섯번째 향기의 쿼크를 실험실에서 검출함으로써, 이 이론은 실험적으로 확증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물질의 궁극 구성입자를 기술하는 이론을 상대론적 게이지(gauge) 장이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칭성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추구함으로써 얻어낸 멋진 개가였다.
1950년대에는
방사성원소의 베타붕괴와 관련된 몇가지 현상에서 이상한 수수께끼가 있었다. 타우(τ)라고 부르는 입자와 테타( θ)라고 부르는 입자는 다른 모든
것은 같은데 하나는 ‘좌’이고 다른 하나는 ‘우’여서 과연 이들을 같은 것이라고 봐야 하는지가 당시 물리학자들의 큰 관심이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1956년 리 쭝따오와 양 첸닝은 약한상호작용에 관한 실험 중에 패리티 대칭성(좌와 우의 정의를 서로 바꾸어도 물리법칙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 그 때까지 없었음을 지적했다. 또다른 중국인 물리학자였던 우는 실험을 통해 약한상호작용은 실제로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함을
확인했다. 최소한 약한 상호작용에 관한 한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는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예로 통일장이론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네 가지의 힘 중 중력을 제외한 전자기력, 약한상호작용, 강한상호작용의 세 힘이
모두 게이지 대칭성(gauge symmetry)이라는 아름다움에 바탕을 둔 이론으로 기술된다는 것을 이론과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이것이 이른바
SU(3)×SU(2)×U(1) 이론인데, 이 셋을 단 하나의 대칭성을 써서 기술하려는 것이 통일장이론(GUT, grand unified
theory)이다. 여기에 중력까지를 넣어 모든 물리법칙을 대칭성의 원리 아래 설명하려는 이론을 통틀어 대통일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 한다. 아직 누구나 동의할 만한 대통일이론은 정립되어 있지 않지만, 어떤 물리학자들은 언젠가 기본적인 물리학 법칙들이
단 하나의 대칭성 원리에 바탕을 두고 기술되리라 믿고 있다. 아마도 자연은 ‘대칭성이라는 아름다움’을 사랑할 테니까.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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