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7일 월요일

경주 최 부잣집 … 제가의 가훈 ‘육훈’과 수신의 가훈 ‘육연’

한국의 대표적 명문가는 조선 최고의 부자로 통했던 경주 최 부잣집이다.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시조인 경주 최씨 가문은 조선 중기(1600년 초반)부터 후기(1900년 중반)까지 12대에 걸쳐 300년 동안 막대한 부를 유지했다. 부를 유지하면서도 이웃의 존경을 받았다. 최 부잣집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훈 때문이다. 최 부잣집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집안을 다스리는 제가(齊家)의 가훈 ‘육훈(六訓)’과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修身)의 가훈 ‘육연(六然)’이었다.

권력을 탐하지 말고 이웃을 생각하며 검소하게 살라는 내용의 육훈은 조선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높은 도덕적 의무)’다. 육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1년에 1만 섬 이상 재산은 모으지 말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 말라 ▶집에 온 손님은 융숭하게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가문에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도록 하라 등을 담고 있다.

육연은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담고 있다. ▶자처초연(自處超然·스스로 초연하게 지낸다) ▶대인애연(對人靄然·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한다) ▶무사징연(無事澄然·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진다) ▶유사감연(有事敢然·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한다) ▶득의담연(得意淡然·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한다) ▶실의태연(失意泰然·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한다) 등이다. 최씨 가문은 이 가훈을 몸소 실천했다.

흉년에는 곳간 문을 열어 이웃을 구제했다. 1950년에는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에 모든 재산을 기증했다. 최씨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1884~1970)의 결단은 최 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최종판’이었다. 그는 못다 푼 신학문의 열망으로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와 청구대를 세웠고, 백산상회를 세워 일제시대에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그는 한 노스님에게서 받은 금언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한다. “재물은 분뇨와 같아 한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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