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한파 반복되는 이유는 ‘양력’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24절기의 시작이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입춘(立春)을 맞이하면 집집마다 입춘첩을 써서 대문에 붙이는 풍습이 있다. 그러나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는 속담이 있듯 올해 입춘에도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가 닥쳤다.
24절기를 지날 때마다 매년 비슷한 날씨가 반복되는 이유는 태양의 위치 때문이다. 흔히들 24절기는 음력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태양의 움직임을 반영한 양력의 산물이다.우리나라는 중국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음력을 사용해온 문화권에 속한다. 설날과 추석을 비롯해 단오, 한식 등 ‘4대 명절’을 계산할 때도 음력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 달력은 달의 움직임만을 기준으로 사용해 달력을 만드는 ‘순태음력’이 아닌 태양의 움직임까지 반영한 ‘태양태음력’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24절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달은 대략 29.5일을 주기로 차오름과 이지러짐을 반복한다. 열두 달을 계속하면 354일이 되기 때문에 365일을 한 해로 삼는 양력과는 11일의 차이가 벌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력과의 차이는 점점 커진다.
태양은 계절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계절은 농사와 직결되어 있다. 꽃이 피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고 잎이 떨어지는 것은 태양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농경사회에서는 음력이 아닌 양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입춘에서 시작해 대한까지 이어지는 24절기는 음력을 사용하던 우리나라가 농사를 위해 양력의 요소를 도입했다는 증거다.
동지와 하지는 태양의 위치 반영한 구분법
근대 과학혁명을 촉발시킨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속해 있는 우주 체계의 중심이 태양이라고 주장했다. 그 주위를 지구가 움직이며 돈다는 ‘지동설’은 이제 천문학의 기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고대에는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며 아침마다 떠오르고 저녁마다 진다고 생각했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두고 해와 달과 별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이다.
천동설은 단순한 관찰만으로도 천체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땅에 막대기를 꽂아두고 낮 시간의 그림자 끝이 매 시간 또는 매일 얼마나 달라지는지 기록할 때는 관찰자가 위치한 지구 중심의 사고방식이 편리하다.
계절의 변화를 관측할 때도 천동설의 관점이 더 유용하다. 하루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르는 남중 고도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시 한 번 남중 고도에 도달할 때까지를 구분하면 ‘하루’ 또는 ‘1일’이 된다.
태양은 대략 12시 30분 경에 남중 고도에 도달하지만 그 위치는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이루 인해 계절이 생겨난다. 12월 중순을 지나면서 남중 고도가 가장 낮아지는 기간에는 낮의 길이가 짧아 한겨울을 통과한다. 절기로는 ‘동지(冬至, winter solstice)’라 한다.
반면에 6월 중순을 지나면 남중 고도가 가장 높아 낮의 길이가 길어서 한여름을 통과한다. 절기로는 ‘하지(夏至, summer solstice)’다. 365일을 주기로 동지와 하지를 오가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 양력 체계다.
양력은 계절의 변화를 알아내는 데 유용하다. 동지 이후 남중 고도가 점점 높아지다 하지와의 중간 지점을 지나는데 이때가 ‘춘분(春分, vernal equinox)’이다. 반대로 하지 이후 남중 고도가 낮아지다가 중간 지점을 통과할 때는 ‘추분(秋分, autumnal equinox)’이 된다.
태양을 중심으로 여기는 지동설에 의하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 그러나 관측자의 입장을 중요시하는 천동설에서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뜨고 진다. 관점의 차이에 의한 구분법이다.
천동설에서는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남쪽에서 최고 고도를 지나 서쪽으로 지는 곡선을 연장시켜 커다란 원을 만든다. 관측자의 입장에서는 태양이 반복적으로 지나가는 길이 생기는 셈이다. 이를 ‘황도(ecliptic)’라 한다.
지동설의 입장에서 보면 천구라는 가상의 공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지구에서 바라본 태양의 위치를 천구에 투영시킨 가상의 경로다.
태양의 남중 고도는 때마다 바뀌기 때문에 황도는 하나의 선이 아닌 넓은 띠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한 부분을 기준점으로 삼아서 황도의 360도를 여러 칸으로 나눈 것이 절기 구분법이다.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를 넘어서기 시작하는 ‘춘분’은 봄이 시작되는 기준점이다. 춘분은 황도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360도를 결정하는 ‘황경’이 0도다. 이후 90도에는 하지가 되고 180도는 추분이며 270도는 동지다.
양력을 사용하는 문화권에서는 춘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로마 시대에는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를 넘어서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춘분을 한 해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춘분은 대략 3월 21일에서 22일 사이이므로 춘분이 들어 있는 3월이 첫째 달인 것이다. 이후 1월과 2월이 추가되어 현재의 양력 체계가 되었다.
태양력을 사용하는 문화권에서는 이렇듯 동지, 하지, 춘분, 추분을 기준점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음력을 사용해온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구분법을 받아들였다. 흔히들 음력이라 생각하는 24절기도 사실은 태양의 움직임을 반영한 ‘태양태음력’의 달력 체계다.
24절기의 시작인 입춘은 계절 상의 봄이 아니다
24절기는 양력이므로 설날, 추석, 단오, 한식과는 달리 매년 비슷한 날짜가 된다. 춘분은 3월 21~22일, 하지는 6월 21~11일, 추분은 9월 22~23일, 동지는 12월 21~22일 즈음이다. 이 4개의 절기를 각각 3등분하면 12절기가 된다.
황도면을 12등분한 12절기는 서양 전통의 중심축이 되어왔다. 흔히들 생일에 따라 별자리를 나누는 구분법은 황도면을 12등분한 절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태양이 춘분점에 접어드는 날부터 30도를 움직이는 기간에 태어나면 양자리라 불리고, 그 다음 기간에 태어나면 황소자리라 부른다.
태양력 체계에서 춘분점은 1년의 시작이고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이므로 서양 전통에서는 양자리에 태어난 사람이 활기차고, 진취적이고, 도전정신이 강하며, 언제나 맨 앞에 서고 싶어하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한다.
태양이 특정 절기에 접어드는 시간은 ‘절입시각’이라 부르며 매년 달라진다. 정확한 춘분점은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천문연구원에서 측정해 발표한다. 올해 춘분은 3월 21일 오전 1시 48분이다. 이 때부터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지기 시작한다.
12절기를 다시 반씩 나누면 24절기가 된다. 서양의 양자리는 동양의 춘분부터 곡우까지를 가리키며, 황소자리는 곡우부터 소만까지의 기간이다. 서양에서 쓰인 12절기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24절기로 세분화되어 기후의 변화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24절기의 출발점을 ‘입춘’으로 본다. 올해 입춘의 절입시각은 2월 4일 오전 6시 50분이다. 그러나 24절기는 중국에서 시작된 개념이므로 우리나라의 기후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입춘은 황경이 315도이므로 진정한 봄이라 말하기 어렵다.
기상청이 측정한 서울지역 일 평균기온을 살펴보면 1월 25일~31일 즈음이 가장 낮다. 입춘은 그로부터 5~11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이므로 툭하면 한파가 몰아닥치는 것이다. 진정한 봄을 맞이하려면 양력으로 계산한 24절기 중 입춘에서 3개 절기를 더 지나 춘분 정도는 되어야 한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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